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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아저씨

제일 부지런한 건 바로 시간

by 쿤스트캄

동이 튼 푸른 새벽

포근한 오리털 이불을 끌어안는다

그렇게 다른 세계로 끌려들어 간다


그 세계는 고요하고 따뜻했다

등을 감싸안는 햇빛과 재스민 향기

건실하고 안온한 공기 속에

설렘가 편안함이 공존하는 대화를 나눈다


오후 1시 눈을 뜨고 눈동자를 굴린다

현실인가 꿈인가 그 중간 어디쯤인가

다시 손목이 잡힌 채 얼굴을 처박았다


수영장 풀 위에 둥둥 눈을 감자마자 앞이 보인다

새초롬하게 봄기운 뽐내는 초록잎들이 단체로 춤을 춘다


오후 6시 푸른 밤이 다시 찾아온다

어스름한데 눈을 제대로 뜨고 싶지 않다

사물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한 채 밥을 실컷 먹고

소파에 앉아 다가온 어둠에 인사한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혼란한 마음을 틈타 다가온다

이번에는 발목을 잡혀 재우기 위해 눈을 감는다


고요한 밤보다 잠잠하고 달님도 별님도 없다

블랙홀을 바라보고 있는 기분으로

아저씨 손을 잡고 수십억 광년을 달린다


오후 10시 운동을 너무 많이 했나 보다

고구마 한 조각에 우유 한잔을 마시니 다시 힘이 난다

이번에는 더 쉽게 빨려 들어간다


제일 부지런한 낮잠아저씨와 눈을 마주친다

이번엔 어디로 가는 걸까

이제는 보따리를 싸지도 않는다


새벽 6시 손가락 끝에 감각이 느껴진다 바람소리도 들린다

해님이 찾아와 자기 자리를 빼앗았다며 한바탕 소란이다

눈을 감은 채로 사과를 세 조각 씹어 삼킨다


누군가 말을 거는데 잘 들리지 않는다

아저씨가 멀리서 나를 보고 싱긋 웃는다

가까이 다가가야겠는데


오전 9시 소파에 숨어있던 아저씨가 내 눈을 다시 가린다

어여쁜 파도소리처럼 숨을 내 몰아쉬는 내가 보인다

엄마의 검지손가락을 잡고 잠이든 아기가 있다

생각보다 너무 먼 곳까지 왔나 보다


낮잠아저씨의 시간을 따라잡으려면

이제 같이 있으면 안 될 거 같다

세상과 함께 눈꺼풀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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