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라 수집 그리고 공간의 장소화
평소에 나는 말한다. 공간의 장소화를 만들기 위한 마음을 늘 품고 있다고. 공간을 가꾸다 보면 어울리는 색과 분위기가 만들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의 공간을 갖게 되면'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꽤 오랜 시간 닮고 싶은 장소와 사람들의 아우라를 수집했다.
오랫동안 경험하고 그것이 나에게 체득된 시간들로 다가오게 한 곳들이 있다. 와플아이스크림가게 사장님의 신메뉴, 와인바사장님의 음악감상 시간, 홍차카페 사장님의 디저트 페어링, 음향카페대표님의 곡선물, 카페 사장님이 처음 알려준 드립커피의 세계 등 수많은 장소에서 채워진 서사들이 나의 미감과 미각을 만들어준 게 분명하다.
지금도 구글캘린더나 오래전 썼던 다이어리에 켜켜이 쓰인 텍스트로 풀이된 일정이 아닌, 심장에 새겨진 고스란히 누워있는 감정들이 훨씬 더 귀중하다. 기억하려고 애쓰면 머릿속 저장장치에 과부하가 올까 봐 되뇌진 않지만 인생의 마지막 플로팅화면에 띄워질 거라는 알 수 없는 확신이 있다.
최근 메시지를 전하는 글을 써달라는 의뢰가 왔다. 필자는 생각보다 긴 호흡 끝에 아는 20대 동생들에게 물었다. 무슨 생각하고 사느냐고. 이 질문을 건네면서 특별한 기대를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떤 키워드, 답변이 돌아올 길 바랐다. 그렇지만 쓰고 싶은 것 쓰고, 하고 싶은 걸 하면 되지 않느냐는 피드백이 다수였다.
애초에 무엇인가 궁금해하고 물어보는 게 잘못이었나. 아니면 나랑 대화하기 싫은가. 별의별 생각을 다하했다. 온통 세상이 하얘졌다. 어떻게 생각할까 눈치를 보는 유형의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속사포로 내 얘기를 쏟아내는 것과도 거리가 먼데. 친구들과 어떤 고민을 나누면서 살아가는지 궁금했던 나는 속이 아팠다. 눈을 보면서 진짜 대화를 하는 친구를 가진 친구가 거의 없었다. 코로나 시대의 대학생의 표본으로 자리한 친구는 그럼에도 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한두 명이 있어 다행이라 했다.
지금은 경험을 하는 것이 아닌 돈을 주고 사는 시대로 흐르는가야 하는 걸까. 자기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것들을 모아서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만 만나면 편한 건 있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결국 나와 코드가 맞고 서로를 그저 이해할 수 있는 벗들이 남는 게 일반적이고 일상적이라 생각했는데, 세상 너무 빠르다. 이런 표현을 벌써 하게 될 줄이야. 이제 십 대, 이십대면 이미 공통분모가 있는 사람을 찾고, 이 케이스는 그나마 다행, 딱히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전혀 없는 게 당연한 것이다.
나만의 유니버스를 만들기 위해서 무한증식되는 경험들이 이제 조금 무섭게 느껴진다. 정제된 것들이 필요하다. 입양된 듯 불편하게 구석에서 쳐다보는 오브제도 하루살이처럼 가득한 이미지로 가득 찬 앨범도 점점 불편하다. 그저 떠가는 하늘 구름 한 조각 바라보고 한 소절, 바람에 부서진 파도에게 한 소절 건넬 수는 없는 걸까.
개인 그리고 모두의 서사가 쓰여질 수 있는 공간, 그래서 오랫동안 이어지는 기억저장소로 만들고 싶다. 다정함과 따뜻함으로 차가운 것들을 녹여내고 눈빛을 바라보고 목소리로 교류하는 그런 시간을 맞이할 수 있게 해야지. 함께 마법을 부릴 사람들도 모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