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라는 유기체를 다시 숨 쉬게 할 ‘문화적 수혈’에 대하여
국가는 사람을 보고 있는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을 살릴 공약들을 개발하며 복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지도 위에 선을 긋고, 거대한 공기업 건물을 옮기고, 예산의 숫자를 채워 넣는 일들. 그 차가운 행정 언어들 속에서 정작 그곳에 뿌리 내리고 살아야 할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방 소멸이라는 거대한 공포 앞에 국가가 내놓는 해답은 여전히 낡은 하드웨어에 머물러 있습니다. 저는 오늘 숫자가 아닌 ‘온기’로 지역을 숨 쉬게 할 조금 다른 방식의 공약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굳어가는 모세혈관: ‘유배’가 된 지방 이전의 한계
대한민국의 지도를 펼쳐보면 서울이라는 거대한 심장은 너무 비대해져 터지기 일보 직전이고, 그 심장에 피를 공급하던 지방이라는 모세혈관들은 서서히 굳어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를 ‘지방 소멸’이라 부르며 공포를 말하지만, 국가가 내놓는 해법은 여전히 낡은 하드웨어에 머물러 있습니다. 공기업 건물을 짓고 억지로 사람들을 내려보내는 일은 지방을 살리는 정책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유배’일 뿐입니다.
몸은 내려왔을지언정 마음은 서울의 전셋집과 퇴근길의 기차에 묶여 있는 이들에게 지방은 잠시 머물다 떠날 정거장이지, 삶의 터전이 아닙니다. 임기가 끝나면 약속이라도 한 듯 다시 서울로 향하는 발걸음을 붙잡을 수 없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그곳엔 ‘먹고사는 일’만 있을 뿐, ‘살아가는 재미’와 ‘마음의 충만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드웨어를 넘어 ‘행정의 온기’로
저는 정답이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 즉 ‘행정의 온기’에 있다고 믿습니다. 이미 지방의 광역시들은 수천억 원을 들인 최고급 공연장과 전시장이라는 훌륭한 그릇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텅 빈 그릇을 새로 빚는 대신, 그 그릇에 무엇을 담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제가 꿈꾸는 정책은 아주 단순하고도 강력합니다. 시민이 문화를 향유하기 위해 이동하는 비용을 행정이 되돌려주는 것, 즉 문화와 교통을 하나의 유기체로 묶는 일입니다.
문화와 경제의 선순환: 예술가가 ‘필요한 존재’가 되는 토양
경제가 살아나 지갑이 두터워지면 사람의 마음은 비로소 유해지기 마련입니다. 생존의 날이 무뎌진 자리에 돋아나는 것은 문화를 향유하고 싶다는 고귀한 욕구이기 때문입니다. 그 수요가 늘어날 때 비로소 예술가는 ‘지원 대상’이 아닌 ‘필요한 존재’가 되며, 지역은 청년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정착하는 비옥한 토양이 됩니다. 억지로 밀어 넣은 인구는 빠져나가지만, 매력적인 일상에 매료되어 찾아온 이들은 결코 떠나지 않습니다.
광장의 활기, 영호남의 경계를 지우는 선율
이 선순환의 고리는 광역시라는 엔진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광역시는 주변 위성도시들과 혈관처럼 연결되어 있기에, 광장의 활기는 담장을 넘어 지역 전체로 퍼져나가기 마련입니다. 더 나아가 이 예술의 선율이 영남과 호남의 경계를 넘나들 때, 우리는 수십 년간 정치가 풀지 못한 갈등의 실타래를 비로소 풀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조성진과 임윤찬의 연주 앞에서 우리가 영남과 호남을 묻지 않듯, 예술이라는 공통의 목적 아래에선 누구나 한마음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숨 쉬는 대한민국: 유배지에서 정원으로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삽니다. 하지만 그것은 억지스러운 인구 분산이 아니라, 각 지역이 제각기 다른 빛깔의 인프라를 품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웅장한 건물을 짓지 않아도 좋습니다. 행정의 섬세한 설계로 시민의 삶에 만족이라는 색을 입힐 수 있다면, 사람들은 다시 지역으로 모여들 것입니다.
예술의 아름다움과 경제적 풍요가 만나는 그곳에서의 지방은 더 이상 유배지가 아닌 누구나 머물고 싶은 정원이 됩니다. 저는 그 정원에서 다시 숨 쉬기 시작할 대한민국을 꿈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