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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unst Yul Jan 08. 2018

29. 후임, 그러나 동료

일단 생각하다. 

''이제 너네가 알려줘야지 후임 들어오면 너네가 잘 가르쳐''


'멀 가르쳐주지?' 

'내가 누군가에게 알려줄 정도인가'


에이전시 생활에서 1년쯤 지났을 때였다. 회의실에서는 면접이 한창이었다. 그쯤 우리는 '지금 같이 일할 사람이 필요해, 진짜 일은 많은데 우리가 너무 힘들어' 이런 이야기를 서로 마주칠 때마다 했었다. 그 당시에 사실 우리는 우리보다 더 연차가 있는 선배 디자이너가 왔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었다. 아 생각을 넘어서 기도를 했었다. (머 그런 인사 문제는 내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속으로 생각할 수밖에)  면접 보러 온 몇몇 친구들의 이야기가 들렸다. 그리고 선임들은 누굴 채용할지 고민도 함께 한창이었다. 그리고 간간히 우리에게 물어보는 '면접 보러 온 애들 봤어?' '어땠어?'라는 질문으로 우리 이외 다른 친구가 진짜 오긴 오나보다 하고 기대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하면서 커트머리에 아직은 학생 같아 보이는 앳된 여자 친구가 들어왔다. (첫인상은 음.. 귀여웠다. 똘똘해 보이기도 하고, 사실 그때 너무 바빠서 그 친구에 대해서 관심을 줄 여유가 없었다. 식사를 할 때나 잠깐 일어나는 신상파악 정도 했었다.) 첫 회사라 얼빠져있던 그 친구의 첫자리는 우리 옆이 아니라 완전 왕선임 옆자리가 되었다. 잊혀지지 않는다. 그 옆자리에 앉아 얼빠져있던 얼이 더 빠져있던 모습이. 안타깝게도 몇 달 동안 그 친구와 함께 하는 프로젝트가 없어서 소통도 많지 않았다. 그러다가 드디어 메가박스 프로모션 디자인 시안 작업을 같이 하게 되었다. 나도 후임이랑 같이 하는 작업은 처음이고, 그 친구도 시안 작업이 처음이었다. 그 친구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하겠지만 나는 더 했다. 디자인 시안 작업을 후임이랑 같이 하는 방법을 잘 몰랐다. 어떻게 디렉션하면서 해야 하는지를. 서로 성격도 모르고 스타일도 모르는 상태였고 시안은 클라이언트에 전달되어야 하는 시간은 정해져 있고 지금 생각해도 답답했다. 그런 멘붕상태로 반나절이 흐르고 둘 다 나간 정신을 잡아와서 어렵게 손발을 맞춰가면서 작업을 마무리했다. 처음 같이 하는 작업이었고, 그 친구에게는 첫 프로모션인데 디자인이였기 때문에 결과가 안 좋으면 어쩌나 결과가 좋아야할 텐데 하는 불안했다. 


다행이다. 결과는 좋았다.

 

프로모션이 마무리가 되고 둘이 같이 처음으로 커피 한 잔을 했다. 어땠는지, 작업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다 알게 되었다. 나는 감정이나 의견을 표현하는 것에 어렵지만 그래도 곧잘 하는 편인데 그 친구는 나와 반대로 감정을 표현하는 게 어려운 친구였다. 사실 그날 나와 후임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많이 기억나진 않는다. 그러나 그 날 우리는 일 이야기보단 서로에 대해서 서로 성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던 거 같다. 그 후 우리는 나름 잘 맞은 선후임이 되었고 알게 되었다. 누군가와 일을 같이 하는데 상대방의 성향을 서로 알는 것이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 것인지를, 일만 단순히 잘하면 되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서로에 대해서 알게 되는 과정을 갖게 되면 혹여 프로젝트 결과가 좋지 않더라고 서로에 대한 믿음, 사람을 얻게 되고 다음 프로젝트를 기대하게 되는 거 같다. 이제 친구는 나에게 그런 친구가 되었다. 



처음엔 내가 몇 년 더 했기 때문에 내리사랑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부담감과 책임감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후임보단 동료이고 내가 오히려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나에게 후임은 그렇다. 같이 가야 할 친구라고. 

보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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