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할머니 손은 약손

by 나달

초등학교 3학년 무렵부터 배가 자주 아팠다.
수업 중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하면 식은땀이 났고, 몸을 똑바로 세워 의자에 앉아 있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자세를 고쳐 앉아도 소용이 없었고, 칠판의 글씨는 점점 흐려졌다.


선생님은 내가 아무 말도 하기 전에 내 얼굴을 한 번 보고는 양호실에 다녀오라 했다.
양호 선생님이 건네준 알약은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통증이 시작되면 공부고 뭐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아파도 참는 아이였다.

집에서 혼자 끙끙 앓고 있으면, 할머니는 먼저 알아챘다.

말하지 않아도 기척으로, 숨소리로, 얼굴빛으로 아픔을 읽어냈다.

입맛이 없다는 나에게 뭐라도 먹어야 기운이 난다며 흰쌀죽이나 누룽지를 끓여주었다.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그릇을 앞에 두고 나는 숟가락을 힘없이 내려놓았다.


어느 날, 아파서 누워 있는 내 곁으로 할머니가 다가왔다.

할머니는 나를 무릎에 눕히고, 굳은살이 박인 투박한 손으로 배를 천천히 문지르며 조용히 주문을 외웠다.

평생 집안일과 밭일로 단단해진 손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따뜻했다.


“내 손은 약손, 니 배는 똥배.”


그 손길이 오가고, 같은 말이 몇 번쯤 반복되면 나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

손의 온기가 배를 지나 몸 전체로 번지는 동안, 긴장은 서서히 풀렸다.

눈을 뜨고 나면 언제 아팠냐는 듯 통증은 사라져 있었다.


그때는 그저 신기하다고만 생각했다.

배가 아프면 할머니가 곁에 와 손을 얹어 주었고, 그러면 통증이 가라앉는다고 믿었다.

지금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그 주문은 약이 아니라, 나를 향해 온몸과 마음을 기울이던 사랑이었다는 걸.


요즘도 가끔 배가 아플 때면 따뜻한 할머니의 손이 그립다.
그 손이 다시 내 곁에 있다면, 아무 걱정 없이 마음을 내려놓고 편하게 잠들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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