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자랑하는 높은 퀄리티의 서비스의 어두운 면
추석이면 가족들과 친구들이 모두 바쁠 것 같아 차라리 덜 더울 때 휴가를 내고 잠깐 들어왔다.
꽤나 여유를 즐기는 P 성향의 나도 꽤 미리 일정들을 잡았다.
그 이유는 한국이 자랑하는 건강검진을 포함한 각종 퀄리티 높은 서비스들을 시간 낭비 없이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지하철을 타고 미용실에 가 얼마 전에 망친 머리를 소생시켰고 건강검진을 받았다.
역시 한국의 서비스 퀄리티는 세계 최고였다. 친절하고 가격도 합리적이고 빠르다.
지하철: 5분에 1대씩 온다.
미용실: 대기 시간에 커피도 주고 아이스크림도 줬다.
건강검진: 검진 하나하나마다 끝내고 나오면 안내원분들이 득달같이 다음 단계를 안내해 주신다.
(싱가포르에서는 더 비싸게 머리를 잘라도 머리도 제대로 안 털어줬는데)
아 이렇게 편한 나라를 왜 떠났을까라고 생각하던 중, 왠지 모를 위화감이 들었다.
좀 더 이 기분을 파고 들어봤더니 이런 생각에 도달했다.
이렇게 편하다는 것은 누군가는 더 고생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이 퀄리티 높은 서비스는 다 인력을 갈아 넣은 결과였던 것이다.
지하철: 기사님들의 더 많은 / 잦은 근무 시간
미용실: 메뉴도 주문받고 아이스크림도 제안하는 매뉴얼을 숙지하는 직원 분들.
건강검진: 채혈실에서 담당자분들이 끊임없이 피를 뽑으시는데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손님은 왕'이라는 서비스 마인드의 어두운 면이다.
솔직히 머리 하러 갔는데 아이스크림과 커피를 주면 '감동'이지만 이게 꼭 필요한가?
나는 메인 서비스인 머리만 잘되었어도 만족했을 것이다. 그게 돈을 낸 이유니까.
근데 굳이 '있으면 좋지'를 인력을 갈아 넣어서 제공하는 것이 진정한 '고객 만족'이 맞는지 생각하게 된다.
노동자들의 스트레스 수치는 알게 모르게 높을 것이다.
그렇다면 저런 분들에게만 해당이 될까?
아니, 우리 모두에게 해당이 된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가치를 제공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흐름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는 서로를 편하게 하기 위해 나를 혹사한다.
그렇다면 다 같이 좀 편해질 수 있을까?
내가 편해진다는 것은 반대로 누군가는 불편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높은 퀄리티의 서비스에 너무 익숙해졌다면 힘들 것이다.
그런 퀄리티를 제공하는 경쟁업체에게 밀릴 테니까.
그리고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인터넷에 후기나 낮은 별점을 남기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앞으로 조금의 불편함은 참아보려고 한다.
좀 더 기다릴 줄 알고 그 시간을 내 시간으로 만들어보려 한다.
그래야 나도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살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에.
한국인의 스트레스를 높이는 것이 '입시', '집 값' 등 큼직한 사회적 이슈는 모두 잘 알고 있지만, 이번에 재밌게도(?) 일상 속 작은 요소에서도 발견했다. 서비스와도 연관이 되어 있더라.
이 부분은 다음 글에서 별도로 정리해 볼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