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생존을 위한 힙합의 진화

Z세대의 현실이 힙합의 진정성을 다시 정의한다

by Kurt


최근 어떤 작곡가와 얘기하다가 후드트랩과 저크가 뜨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처음 들어봤는데 질감 기반의 힙합이었다. 무드 기반 리스닝이 대중음악의 기본값이 된 지금 이런 음악이 뜨는 건 새롭지 않다. 다만 내가 오래 봐온 힙합을 기준으로 보면 꽤 파격적이었다. 그 낯섦에서 변화한 힙합이 보여서 반가웠다.


나는 힙합을 오랫동안 직접 해보고 들어왔기에, 솔직히 한동안은 힙합이 이미 끝까지 소비된 장르라고 생각했다. 할 만큼 다 했고, 뽑을 건 다 뽑은 느낌. 그런데 후드트랩과 저크를 들으면서 이상하게도 힙합이 다시 살아있다고 느꼈다.


예전 힙합과 지금 힙합의 지향점이 달라졌다는 사실이 먼저 다가왔다. 2010년대에 대중음악 산업에 자리 잡은 Trap, Ratchet 같은 힙합 장르들이 2020년대까지 그대로 이어졌고, 힙합의 멋은 스트릿 크레드, 근본, 출신, 자수성가 같은 요소를 증명하는 데 있었다.


드레이크처럼 이미 정상에 선 아티스트조차 힙합적인 이미지를 유지하려다 켄드릭에게 디스를 맞았으니 말 다 했다. 정해진 법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게 이 장르 게임에 참여한 플레이어들이 암묵적으로 지켜야 하는 룰이었다.


하지만 지금 힙합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움직인다. 후드트랩, 저크, 디지코어, 뉴재즈, 레이지, 플러그 같은 장르들은 출발부터 인터넷/디지털 기반의 감각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진정성의 기준도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인종이나 지역 같은 배경이 아니라 Z세대가 실제로 살아가는 디지털 세계가 기준이 되는 시대다.


전성환 에디터의 “Z세대의 새로운 힙합 Jerk”라는 글에서 그 부분이 정확히 설명된다.


“Z세대에게 디지털 공간은 더 이상 현실 도피의 가상이 아닌, 삶의 본질적 영역이 됐다… 과거 힙합의 ‘거리’는 이들에겐 오히려 판타지다.”

이 한 줄이면 지금 힙합의 기준선을 거의 다 설명한다. 그래서 Nettspend가 침대 위에 와인을 뿌리든, Xaviersobased가 게임과 애니메이션을 그대로 끌어오든 그게 진정성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들의 현실이 디지털이고, 그 감각에서 출발한 표현이 힙합이기 때문이다.


예전의 힙합은 힙합이 가졌었던 근본적인 가치를 기반으로 한 공동체였다면, 지금의 힙합은 출신보다 취향, 배경보다 감각이 공동체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었다는 걸 보여준다.


그래서 지금 힙합은 “현재의 감각을 얼마나 솔직하게 드러내는가”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판단된다. 깨지는 음질, 날 것의 질감, 클리핑 작법. 이런 것들은 디지털 세대에게 결함이 아니라 그들의 사고 방식과 일상을 그대로 반영하는 표현이다. 틱톡처럼 파편적으로 흘러가는 감각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 힙합은 디지털 시대에 맞는 '능동적인 정신'이 다시 작동하면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내가 예전에 “힙합은 더 이상 음악 장르가 아니다”라는 글을 썼을 때, 힙합을 ‘능동적인 정신/태도’로 정의할 수 있다고 했는데 지금의 흐름이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한다.


그리고 흥미로운 점은, 지금 힙합이 예전만큼 대중의 중심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변화가 오히려 힙합의 본질을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는 것이다. 정신이 살아 있으니 변화하는 것이고, 이런 과도기를 지나면 다시 새로운 전성기로 넘어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신호라고 생각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JUSTHIS가 7년 만에 꺼낸 ‘L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