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엔터테이너 시대의 귀환

Frank Sinatra에서 K-POP까지

by Kurt
1960년 그래미 올해의 앨범 수상작 [Frank Sinatra - Come Dance with Me!]


그래미 올해의 앨범 수상작들을 보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나는 Frank Sinatra를 그냥 음악계의 거물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찾아보니 그는 할리우드에서도 손꼽히던 배우였다.


Judy Garland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당연히 그들이 음악적 전문성을 갖춘 아티스트라고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노래와 연기를 동시에 해냈던 사람들이었고,
그게 업계 초기에 꽤 흔한 일이었다는 점이 더 놀라웠다.


이 지점이 특히 흥미로웠다.
당시 산업은 지금보다 훨씬 열악했을 텐데
어떻게 이런 멀티테이너들이 그래미 같은 무대에서도 중심이 될 수 있었을까.


단순히 재능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 시대의 산업 구조 자체가

‘다재다능함’을 필수 조건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지금의 K-POP 아이돌들이 겹쳐 보였다.
노래와 춤은 기본이고 웹 예능과 OTT에 등장하고,
사람들을 웃기고, 드라마나 영화에도 출연한다.


무대 밖에서도 팬들과 소통하며

하나의 브랜드처럼 자신을 만들어간다.
이걸 보면 옛날 할리우드 시대의 종합 엔터테이너들이

디지털 시대에 활동했다면 딱 이런 모습이었을 것 같다.


1930년대부터 50년대까지의 미국은 음악, 영화, 라디오, 무대 공연이

서로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거대한 문화 생태계였다.


그 시기에는 가수, 배우, 코미디언 같은 직업적 구분이

지금처럼 뚜렷한 의미를 갖지 않았다.
한 명의 스타가 영화에서 노래를 부르고,

라디오에서 토크를 진행하며,
무대에서 쇼를 이어가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Judy Garland는 보드빌 출신의 스타였다


특히 보드빌(vaudeville) 무대에서 활동하던 이들은
노래, 연기, 코미디, 관객과의 호흡을 실전 속에서 단련하며
다재다능한 퍼포머로 성장했다.


이 무대가 훗날 라디오와 TV로 이어지는 버라이어티 쇼의 원형을 만든 셈이다.
그렇기에 Sinatra, Garland, Bing Crosby, Gene Kelly 같은 인물들을
‘가수’나 ‘배우’로 단순히 분류하는 것보다 ‘퍼포머’라고 부르는 게 더 정확해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점점 세분화됐다.

음반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라디오와 영화, TV는 각각 거대한 산업으로 나뉘었다.


대중도 전문성을 기준으로 취향을 나누기 시작했다.
노래를 잘하는 가수, 연기 잘하는 배우, 춤 잘 추는 댄서가 따로 소비되는 구조.
이게 1980년대 이후의 체계였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다시 달라졌다.

유튜브, 틱톡, 스트리밍, 예능, SNS...

매체가 너무 많아졌다.


확산력이 큰 플랫폼이 이렇게 많은데도

새로운 유입과 관심은 더 어려워졌고,
알고리즘 시대의 사람들은 각자 좋아하는 마이크로트렌드 안에 갇혀 버렸다.


결국 음악만으로 승부하는 아티스트가 살아남기 힘든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전문성이 전부가 아니다.
노래, 연기, 춤 같은 다양한 능력도 중요했지만

근본적인 매력이 더 중요해졌다.


멀티스킬이 필요하지만

그 스킬들이 최고점일 필요는 없다.
평균 이상이면 충분하고,

그걸 묶어주는 고유한 매력이 핵심이 된다.


SEVENTEEN 자컨 '고잉세븐틴'


이러한 흐름 속에서 K-POP이 더 분명하게 보인다.
아이돌들은 노래와 춤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예능감, 연기, 비주얼, 퍼포먼스, 팬과의 소통,
팀의 케미스트리까지 모두 보여준다.


다양한 매력과 캐릭터가 동시에 쏟아져 나오는
K-POP의 구조는 과거 할리우드가 만들었던

종합 엔터테이너 모델의 현대적 버전처럼 보인다.


BOYNEXTDOOR의 싱글이자 웹툰 소녀의 세계의 OST


최근 OST 작업이 많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K-POP 소비자를 넘어 K-DRAMA처럼
다른 컬트적인 영역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며
외부 유입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결국 문화산업은 돌고 돈다.
인프라가 약했던 시절에는 멀티 플레이어들이 중심에 섰고,
산업이 커지면 전문성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고,
지금처럼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는
다시 멀티테이너 유형의 인물이 사랑받는다.


음악이든 영화든 라이브 방송이든,
결국 사람을 오래 붙잡는 건
스킬이 아니라 매력이다.


어쩌면 시대가 바뀌어도
사람을 움직이는 건 결국 매력이라는
뻔한 이야기를 다시 확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지금의 아티스트는
음악성에만 기대기 어렵고,
자연스럽게 종합 엔터테이너의 역할을
요구받는 순간에 들어서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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