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N, 무드 기반 리스닝 그리고 사이키델릭 미학
요즘 나는 아주 간단한 일조차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해야 할 일이 많지 않아도, ‘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피로하다.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이 너무 많아
남들보다 피로함을 더 자주 느껴왔다.
그래서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일은 내게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을 해소하는 작은 피난처였다.
마치 무의식적인 자가 치유처럼.
그러던 중, 우연히 읽은 뇌과학 기사에서
나처럼 생각이 많고 자주 내면 깊숙이 파고드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이하 DMN)가
40% 더 활성화돼 있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그 순간,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피곤했던 거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활성화되는 뇌의 네트워크다.
모셰 바르 박사는 이를 착취적(exploitive)과 탐색적(explorative) 마음 방랑으로 설명한다.
착취적 DMN은
후회, 부끄러움, 자책, 불안 같은 감정에
뇌를 반복적으로 가둔다.
끝없는 반추 속에서 자존감은 점점 깎여나간다.
반면 탐색적 DMN은
상상, 연상, 창의성의 흐름을 따른다.
떠도는 생각의 조각들이 새로운 연결과 의미를 만들어낸다.
문제는,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 자체가
착취적 DMN이 작동하기 딱 좋은 구조라는 점이다.
SNS를 켜는 순간, 우리는 비교당한다.
누군가의 삶, 얼굴, 옷, 커리어, 사랑…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이만큼 잘 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멍하니, 혹은 무력하게 바라본다.
그러면서도 나도 모르게, 나를 비교한다.
2023년 Cybersmile 조사에 따르면
영국 Z세대의 89%가 SNS를 통해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그중 절반 이상이 자존감 저하와 우울, 불안을 경험했다.
그리고 14%는 삶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이 수치는,
현 시스템 안에서 Z세대가 감내하고 있는 정서적 피로가
얼마나 깊고 구조적인지를 새삼 실감하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그 구조 속에서
조용히, 그러나 절실하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도망친다.
누군가는 YouTube 쇼츠를 틀고,
누군가는 영화 속으로 숨는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어폰을 낀다.
최근 음악 소비의 흐름은
분명히 ‘무드 기반 트렌드’로 돌아가고 있다.
이제는 ‘무슨 장르를 듣지?’가 아니라
‘지금 내 기분은 어떤가?’가 음악 선택의 기준이 된다.
AI 큐레이션, 무드 기반 플레이리스트, 감정 맞춤 큐레이션.
우리는 점점 더 ‘내 감정에 딱 맞는 소리’를 찾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취향의 변화가 아니라,
대중 대부분이 뇌가 보내는 생존 신호에 반응하며
형성된 새로운 감정 소비 방식이다.
착취적 DMN에서 벗어나
탐색적 DMN으로 전환하기 위한 정서적 피난처.
음악은, 바로 그것을 제공한다.
‘사이키델릭(Psychedelic)’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누군가에겐 그것은 장르이고,
또 누군가에겐 약물 문화일 수 있겠지만,
나에겐 하나의 미학적 개념으로 다가왔다.
몰입, 의식의 확장, 감각의 이완, 현실의 재구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면의 소음에서 벗어나는 방법.
1960년대 사이키델릭 록은
단지 도망치는 음악이 아니었다.
그것은 현실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감각으로 나아가려는 시도였다.
그리고 지금 우리도,
비슷한 것을 음악에서 찾고 있는 건 아닐까?
K-POP도 변하고 있다.
예전처럼 퍼포먼스 중심,
강렬한 사운드와 비주얼이 중심이던 흐름에서
이제는 점점 더 ‘머물게 하는 음악’,
‘무드를 만들어내는 앨범’으로 바뀌고 있다.
ILLIT의 [BOMB],
CORTIS의 [COLOR OUTSIDE THE LINES].
이 앨범들은 겉으로는 K-POP의 전형을 따르지만,
실제로는 감정적 쉘터를 만들어주는 음악에 가깝다.
그 공간 안에서 우리는
비교하지 않아도 되고,
잘나지 않아도 되며,
무언가를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생각한다.
지금 Z세대가 무드 기반 리스닝에 이토록 끌리는 것은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본능적인 선택이라고.
비교에 대한 피로와 정체성 침식 속에서
최소한의 ‘나’를 유지할 수 있는 공간이
음악이라는 형식으로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질문하게 된다.
"우리는 왜 무드에 끌리는가?"
아마도 그것은,
“나는 나답게 살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조용하고도 절박한 응답일지 모른다.
음악은 지금,
좋은 사운드이기 이전에
내면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조금 덜 비교당하고,
조금 더 나다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