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LOV가 말하는 ‘젠더리스’는 무엇이 달랐는가
K-POP은 보수적인 도덕관을 지닌 산업이다. 특히 BTS 이후 ‘선한 영향력’이라는 키워드 아래, K-POP 아이돌은 어린 세대의 롤모델이어야 했고, 고정관념과 관습을 크게 거스르지 않는 도덕성과 모범성을 전제로 음악과 퍼포먼스를 제작하는 것이 하나의 문법으로 자리 잡았다. 나는 이러한 구조를 종종 ‘한국판 디즈니’라고 부르곤 했다. 물론 최근 디즈니 역시 스테레오타입을 탈피하기 위해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K-POP은 여전히 기존 관념과 관습에 비교적 보수적인 산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대중적 신뢰를 최우선 가치로 삼고, 논쟁 가능성을 최대한 배제해 온 산업의 기조가 유지 돼왔기 때문이다.
이 맥락에서 젠더리스는 K-POP과 근본적으로 충돌하는 개념이다. 젠더리스는 전통적인 성 역할과 이분법을 흔들고, 사회적 논쟁을 불러오며, 무엇보다 ‘이상적인 롤모델’이라는 K-POP의 핵심 이미지와 쉽게 공존하지 못해 왔다. 그렇기에 K-POP에서 젠더리스를 전면에 내세운다는 것은, 이 산업이 오랫동안 유지해 온 암묵적인 선을 넘는 꽤나 용감한 선택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XLOV의 젠더리스는 놀랍도록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이들이 말하는 젠더리스가 단순한 콘셉트나 전략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메시지는 신념에 가까웠고, 다소 국내에서는 생소할 수 있는 개념임에도 설득력을 얻었다.
사실 젠더리스는 이미 음악 산업과 예술계 전반에서 한 차례 증명된 개념이기도 하다. 이 콘셉트의 가장 큰 무기는 ‘가짜인 척할 수 없는 저항적인 정체성’이라는 점이다. 이만큼 많은 예술적 층위를 함축한 단어도 드물다. 퀴어 혹은 젠더리스는 전통적으로 ‘정상’이라 규정되어 온 성적 관념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자신이 누구를 사랑하는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싶은지를 공개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사회적 관습에 대한 도전이며, 행위 예술에 가까운 가치를 지닌다.
특히 코로나 시기 Sam Smith와 Lil Nas X의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 이 콘셉트는 한동안 메인스트림 팝 시장에서 컬트적인 지지를 받는 동시에 높은 리스크를 동반해 왔다. 그렇기에 K-POP에서 XLOV가 보여준 행보는 더욱 예외적인 사례로 읽힌다.
XLOV의 흥미로운 지점은 해외 팝에서 보아온 레디컬한 젠더리스 미학을 그대로 가져오지 않았다는 데 있다. 대신 K-POP의 미감과 문법을 가미한, 이른바 ‘순한 젠더리스’를 제시했다. 과감함이나 충돌 대신 신념과 미감으로 접근한 이 방식은 대중의 거부감을 효과적으로 낮췄다. 젠더리스에 덧씌워져 있던 논쟁적인 이미지를 중화시키고, 오히려 새로운 긍정적 관점을 형성했다. XLOV는 젠더리스를 소비시킨 팀이 아니라, 젠더리스를 바라보는 대중의 감각 자체를 조정한 사례에 가깝다.
이 설득력은 음악보다 먼저 삶의 태도에서 발생한다. [홍석천의 유익함]에서 리더 우무티는 “내가 되고 싶은 나의 모습과 아름다움은 내가 어떻게 태어났는지와 상관없다”라고 말한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아름다움을 추구할 자유가 있다는 이 답변은, XLOV가 말하는 젠더리스가 성정체성의 자유라기보다 ‘나다운 것을 추구하는 태도’에 가깝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가 과거 여러 회사를 거치며 느꼈던 불안, 즉 ‘이 콘셉트가 진짜 나인가, 연기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당시의 질문은 지금의 XLOV가 왜 연기처럼 보이지 않는지를 설명하는 결정적인 단서다.
XLOV가 젠더리스를 단순한 콘셉트가 아닌,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예술적 장치로 인식하게 된 계기는 최근 컴백 타이틀 〈Biii:-P〉에서 분명해진다. 가사에 이모티콘을 사용하고, 그 기호를 표정과 안무로 확장한 방식은 트렌드와 무관하게 자신들만의 언어를 구축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곡이 데뷔 시점에 이미 완성돼 있었고, 세 번째 컴백으로 확정돼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트렌드를 좇는 제작 방식과는 정반대의 선택이며, 확고한 방향성이 있기에 가능한 기획이다. 이 정도의 방향성을 갖춘 아이돌은 회사 입장에서 단순한 전력이 아니라 분명한 자산이다.
XLOV가 말하는 젠더리스 콘셉트의 핵심을 ‘탈 성정체성’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이들의 메시지를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그들이 반복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성별에 대한 담론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성별은 이들에게 하나의 고정관념일 뿐,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XLOV의 젠더리스는 삶을 대하는 태도로 읽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렇기에 이 메시지는 퀴어 담론보다는 ‘Self-Love’나 ‘Self-Respect’라는 단어로 더 정확히 전달된다. 더 깊게 보면, XLOV가 젠더리스라는 콘셉트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이미 정해진 편견과 관습 속의 ‘나’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벗어나, 스스로 원하는 자신을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그 방향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열정적인 태도다. 이러한 긍정적인 에너지를 담은 XLOV의 음악과 퍼포먼스는 K-POP이라는 보수적인 시스템 안에서 대중을 설득해 냈고, 이는 중소기획사로서는 쉽게 얻기 힘든 유의미한 반응으로 이어졌다.
XLOV는 2025년 K-POP 산업에서 젠더리스 콘셉트로 표현의 범위를 확장한 사례다. 수많은 의심 속에서도 그들은 다소 정체돼 있던 K-POP 시장에 신선함과 밀도 높은 진정성을 동시에 제시했다. 이 팀이 향후 MAMA 또는 MMA에서 연말무대 같은 큰 무대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줄 가능성 역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