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힙합이 망했다는 말에 침묵하는 이유

장르 팬의 결집력을 잃은 한국힙합

by Ku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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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힙합은 망했다”라는 말을 들으면 솔직히 안타깝다. 그렇다고 막상 반박할 말이 바로 떠오르지도 않는다. 내가 힙합 장르 팬인데, 굳이 얼굴에 침 뱉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다만 이런 말이 반복해서 나오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핵심은 힙합 장르 팬의 결집력이 무너졌다는 점이다. 기초 공사가 붕괴된 상태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한때 한국힙합은 오프라인 공연을 중심으로 천천히 성장해왔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규모가 엄청 크지는 않았지만 확고한 매니아층이 있었다. 길을 지나가다 싼 입장료로 무명 래퍼들의 공연을 보는 일이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고, 자녹게를 기반으로 인지도를 쌓은 아티스트들이 작은 공연장에서 팬을 직접 만나며 힙합 공연 문화가 분명히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 래퍼들이 설 수 있는 무대는 온라인과 방송, 특히 〈쇼미더머니〉로 급격히 수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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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미더머니〉의 영향력이 커진 시점은 시즌 1이나 2는 아니었다. 그 시기에는 오히려 장르 팬들 사이에서 “자본이 힙합을 이용한다”는 반발이 강했다. 판이 바뀐 건 시즌 3, 일리네어(도끼, 더콰이엇)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면서부터였다. 힙합 장르 팬들의 컬트적인 지지를 받던 인물들이 프로그램에 공식적으로 합류하자, 〈쇼미더머니〉는 '힙합을 이용하는 방송'이 아니라 '힙합 씬에서 공인된 관문'처럼 받아졌다. 이때부터 이 프로그램은 래퍼들에게 국내 수능시험이나 미국의 SAT 같은 시험대가 되었다.


문제는 이 포맷이 래퍼의 랩 실력을 빠르게 증명하는 데에는 효과적이지만, 아티스트로서 오래 살아남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구조는 아니다. 랩을 잘하는 것과 음악을 잘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능력이다. 카피랩과 훈련을 통해 기본기를 갖추고 래퍼가 벌스 몇 개로 주목받는 것은 생각보다 높은 허들이 아니다. 하지만 그 이후,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취향과 방향성, 음악 시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장기적으로 이어질 음악을 만드는 일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쇼미더머니〉는 구조적으로 랩 스킬이 뛰어난 사람들이 돋보일 수밖에 없다. 프로그램 안에서는 프로듀서의 도움으로 완성도 높은 음악을 선보일 수 있지만, 방송이 끝난 뒤에도 지속 가능한 ‘자기 음악’을 갖추지 못한 경우 수명이 3개월에 그친다는 말이 반복해서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랩만 준비된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대중의 관심을 감당할 수 있는 아티스트로서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채 나온 음반은, 오히려 그 래퍼의 음악 수명을 더 짧게 만드는 아이러니한 결과로 이어진다.


또 하나의 변화는 청자의 구성이다. 힙합을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일반 대중의 수가 장르 팬을 압도하면서, 힙합은 점점 팝에 가까운 기준으로 재정의됐다. 그 과정에서 한국힙합이 오랫동안 쌓아왔던 문화와 서사는 희미해졌고, 기존 힙합 장르 팬들은 점점 한국힙합에 흥미를 잃어갔다.


나는 빅나티나 비오처럼 팝 중심의 랩을 하는 아티스트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이런 변화 앞에서 드러나는 래퍼들의 태도다. 자기 강점이 무엇인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조차 보이지 않은 채 그저 잘되는 트렌드를 따라가는 래퍼들이 과도하게 많아졌다. 자기 취향이 드러나지 않는 음악으로는 힙합 장르 팬의 결집을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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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국힙합은 독자적이고 흥미로운 역사와 서사를 가지고 있다. 버벌진트가 현대적인 라이밍 담론을 제기하고, 가짜 래퍼와 리스너를 디스하며 씬 내부의 긴장을 만들어냈던 시절, 그 과정 자체가 장르 팬들을 결집시킨 하나의 큰 서사였다. 새로운 루키들이 등장해 자기 관점을 과감하게 말하고, 커뮤니티에서 팬들끼리 토론하고 논쟁하던 시간들이 한국힙합을 살아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쇼미더머니〉에 참가해 래퍼들과 친해지고 서로를 샤라웃하는 것 외에는 힙합적으로 매력적인 서사가 나오기 어려운 구조가 되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장르 팬들이 다시 결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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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국힙합의 가능성을 여전히 믿고 있다. 피겨스케이팅 불모지에서 김연아가 등장했듯, 한국에도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하는 아티스트들은 계속 등장하고 있다. 최근 피치포크에서 주목받은 Effie, 그리고 레이지 사운드를 기반으로 자신들만의 색을 확고하게 만들어가고 있는 KC 사단처럼, 분명히 자기 영역을 가져가는 유망한 아티스트들이 존재한다.


이 아티스트들의 공통점은 힙합 장르 팬들이 다시 모일 수 있는, 외국 힙합과는 다른 자기들만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아티스트 개인이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서 씬 전체를 책임질 수는 없다. 하지만 한국힙합이 다시 기반을 잡기 위해서는, 이러한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브랜드를 중심으로 소규모 오프라인 공연을 열고, 클럽이나 파티 형태로라도 팬들이 직접 만날 수 있는 장면을 더 자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프라인에서 팬이 다시 만나는 경험이 쌓이지 않는다면 한국힙합은 계속 흩어진 상태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 글은 〈쇼미더머니〉를 욕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시스템의 변화 속에서 무너진 장르 팬들의 결집력을 다시 인식하고, 공연 문화를 다시 만들어야 한국힙합의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재능 있는 아티스트들이 존재하더라도 그들이 자랄 공간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장르 팬의 결집력을 잃은 장르는 결국 팝으로 귀속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흐름이다. 그리고 만약 이 모든 이야기가 상관없다고 느껴진다면, 지금 이 시장에 만족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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