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he story, stupid — 관건은 스토리라고, 바보야
음악과 무대만으로 슈퍼팬을 형성하던 K-POP의 시대는 끝났다. 퍼포먼스와 실력은 이제 기본값에 불과하며, 더 이상 차별화의 기준이 아니다. 이 영역은 이미 레드오션에 진입했고, K-POP은 한 차원 더 진화한 전략으로 접근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장이 되었다. 이는 K-POP이 단기적 유행을 넘어, 글로벌 음악 산업의 주요 축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K-POP이 타 장르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슈퍼팬 비율을 보이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팬서비스, 라이브 스트리밍, 오프라인 이벤트를 통해 쌍방향 소통이 강화되면서, 관계성에 기반한 독보적인 팬덤 구조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이 구조는 단순한 팬심을 넘어, 아이돌이 내는 음원 성적과 매출을 마치 스포츠 팀처럼 응원하고 지지하는 참여형 문화로 확장되었고, 이는 K-POP이 지속 가능성이 높은 음악 산업으로 자리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팬들이 처음 입덕하는 계기는 단순하다. 잘생긴 외모, 멋진 퍼포먼스, 듣기 좋은 노래. 2010년대 초반, EXO를 기점으로 ‘세계관’이라는 요소가 등장하긴 했지만, 당시에는 어디까지나 재미있는 ‘보조 설정’ 정도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세계관’을, 2026년 K-POP 음악 트렌드를 이끄는 핵심 키워드로 보고 있다.
이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엔하이픈(ENHYPEN)이다. 이들은 웹툰〈다크문〉과 협업해 뱀파이어 세계관을 중심으로 방대한 스토리텔링 IP를 구축했다. 음악과 뮤직비디오, 웹툰은 물론,〈다크문〉을 기반으로 한 애니메이션이 일본에서 방영되면서, 성공한 IP가 얼마나 높은 확장성과 사업적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더해, 곧 발매될 신작 앨범에 맞춰 해당 세계관을 확장한 전용 웹사이트까지 새롭게 런칭하며, 서사를 더욱 입체적으로 설계하고 있다. 이러한 다층적 IP 구조는 단순히 팬의 ‘입덕’을 유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한 번 진입한 팬은 데뷔곡부터 다시 찾아보게 되며, 음악의 리텐션을 높이고 결과적으로 생명력을 장기화하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2025년, 엔하이픈은 25개 도시 투어에서 총 67만 6,000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K-POP 산업에서 최상위 매출을 기록한 대표 남자 아이돌 그룹으로 자리매김했다.
지금의 K-POP 아이돌은 음악 그 자체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 결국 살아남는 팀은 어떤 방식으로 서사를 설계하고, 팬을 어떻게 몰입시키느냐에 따라 갈린다. 현재 시장에서 작동하는 스토리텔링 전략은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셀프 프로듀싱형이다. 음악 창작과 서사를 아티스트 스스로 설계하며, ‘성장하는 아티스트’ 그 자체가 하나의 내러티브가 되는 방식이다. BTS, CORTIS, i-dle처럼 창작 주도권을 가진 팀들이 대표적이며, 이 전략은 특히 Gen Z 세대에게 ‘진정성’이라는 가치로 깊은 몰입감을 형성한다.
둘째는 기획형 스토리텔링이다. 여기서 아이돌은 ‘가수’보다는, 세계관 속에서 역할을 소화하는 배우에 가깝다. 완성도 높은 스토리를 기반으로 추후에 방대한 IP 로서 확장할 수 있게 기획사가 직접 설계 및 협업을 주도하고, 아티스트는 그 안에서 캐릭터를 연기하는 형태다. 단편적인 앨범 활동 콘셉트를 고르는 게 아니라, 장기 시리즈물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외모 역시 단순히 잘생긴 것보다 서사에 어울리는 캐릭터성으로 조율될 것으로 예상한다. 필자가 생각할 때 가장 고점이 높은 형태의 방식이 될 것이고 2026년도를 흔들 수 있는 키워드가 될 것으로 판단한다.
셋째는 서바이벌 기반 스토리텔링이다. 데뷔 전부터 팬이 서사의 일부가 되는 구조로, 제작 과정과 투표, 경쟁, 좌절과 성장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 이 방식은 초반의 강한 감정 몰입을 유도하며, 빠른 시점에서 슈퍼팬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현실적으로 셀프 프로듀싱과 기획형 사이의 절충점에 놓인 전략이기도 하다.
결국 핵심은 이거다. “이야기가 얼마나 설득력 있고, 장기적으로 확장 가능한가.” 콘셉트가 억지로 보이면 금방 식는다. 1~2년 쓰고 버리는 세계관은 팬에게 신뢰를 줄 수 없다. 좋은 스토리는 음악과 함께 나이를 먹고, 팬들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어야 한다.
이때 대형 기획사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웹툰·애니메이션 IP 협업과 같은 고차원 콘텐츠 설계는 리소스, 자본, 전략적 연계 능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건 산업적으로 설계된 기획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구조다.
음악은 더 이상 장르 트렌드로 소비되지 않는다. 이제 팬들은 ‘이 아티스트의 음악과 세계관이 내 일상과 얼마나 분리될 수 있을 만큼 몰입을 주는가’를 기준으로 K-POP을 선택한다.
음악 산업의 수익 구조를 봐도 이 변화는 분명히 드러난다. 녹음된 음원의 전체 매출에서 음반 판매는 전체 수익의 약 25%에 불과하다. 나머지 대부분은 싱크로나이제이션, 라이선스, 굿즈(MD), 라이브 공연에서 발생하며, 이는 음반 판매의 3배가 넘는 규모다. 즉, 음악 산업에서의 수익 구조는 예전과 완전히 달라졌고, K-POP 산업도 고스란히 그 문법을 따른다.
K-POP에서 음악은 세계관으로 진입하기 위한 ‘첫 관문’이 되었고, 팬들은 이제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열어주는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소비한다. 그리고 그 안에 오래 머물게 만드는 설계야말로, 지금 K-POP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다.
2026년의 K-POP 그룹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이 두 가지 질문 중 최소 하나에는 반드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첫째, 셀프 프로듀싱을 통해 아티스트로서의 성장 서사를 보여줄 수 있는가.
둘째, 압도적인 기획력으로 구축된 세계관 안에서 캐릭터로 완벽히 몰입하고 소화할 수 있는가.
이 두 가지 중 어느 쪽이든,
아티스트가 가진 강점을 정확히 이해하고 몰입시킬 수 있는 팀만이 슈퍼팬을 만들고,
지속 가능한 브랜드로 살아남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