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도 해준다는 위로를

일상적 의문 세번째

by 숲속의조르바

< Room in New York, 1932 by Edward Hopper >



"고양이도 해주는 위로를, 왜 사람은 못해주는 걸까?"
- 보통의 존재, 이석원


꽤 유명한 악플러였다는 이야기로 종종 소환되는 밴드 언니네이발관 이석원님의 담담한 수필 중에 저런 글이 있었다.


저 문장을 처음 읽던 순간, 나는 고양이만도 못하게 누군가를 위로도 해주지 못하고 살았는가하는 반성도 들었고, 한편 위로라는 것이 대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종종 격식을 갖췄다는 양반들이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는 표현을 한다. 요즘 문해력의 지표로 삼는다는 심심하다는 표현은 깊고 간절한 위로인데 차분하고 조심스럽다는 느낌이 강하다.


우리는 흔히 위로를 할땐 상대의 감정에 맞춰, 때론 눈치껏 차분하고 덤덤하고 담담하게 위로를 건넨다. 반대로 축하를 할땐 격렬하고 열정적이게 축하를 건넨다.



그런데 기운빠지고 처져있는 이에게는 이런 일반적 방식보다는 오히려 반대가 좋지 않을까?



"심심한 축하를 보낸다."


이 얼마나 우아한가 싶다.



“나는 열정적으로 격렬하게 너를 위로하고싶다“


이 얼마나 갸륵하고 뜨거운가.




순간 위로에 대한 의문들이 쏟아진다.


그런데 고양이는 의도를 가지고 주인을 위로하려던 것이 아니고 그저 자기가 하던 대로 와서 몸을 부비거나 옆에서 식빵을 굽고 있었는데 주인이 그것을 위로로 받아들인 것은 아닐까?


고양이가 외로워서 등을 들이대며 좀 쓰다듬어서 자기를 위로 해달라고 했던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나는 왜 늘 위로 받을 생각만을 하는 것인가?


고양이를, 내 강아지를 위로해 본 적 있던가? 나아가 그들이 그것을 바라던가?

바라지도 않는데 종일 외로웠을 것이라 넘겨짚어 위로한답시고 하진 않았던가?




그리고 저런 문장 한줄 써내지 못하는 나부랭이 입장에서 한때 날리던 악플러 작가에게 소심하게 한줄 댓글을 단다면,


Re: -->[고양이도 해주는 위로를]이라는 표현은 고양이를 인간보다 못한 존재로 단정짓는 인간 우월적인 표현이 아닌것인가요?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