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하바나의 벽화
새로운 첨단기술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못지 않게 많은 것들이 종말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요즘 손글씨로 편지를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거의 모든 소통과 기록의 입력 수단은 휴대폰이나 컴퓨터가 된 지 오래다. 동사무소나 은행등에서 불가피하게 손으로 글씨를 써야 할 경우 매우 어색해하는 경우를 종종 보기도 하고 스스로도 그렇다. 필기조차 태블릿에서 시작하는 젊은 세대는 더욱 그럴 것이다. 손글씨의 종말이다.
예전에는 친구나 지인들의 전화번호를 모조리 외웠었다. 뒤의 네 자리로만 검색이 되는 기능이 추가된 후로는 네 자리만 기억했다. 이제는 그 네 자리를 외울 필요도 없이 음성으로 누구에게 전화해 달라고 말로 명령만 내리면 된다. 기억의 종말인 셈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최적의 검색 결과를 내기 위해 검색어를 고민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냥 대감마님 두리뭉실 명령하듯 하면 줄줄줄 정보가 대령된다. 며칠 밤을 새워 낑낑대며 쓰던 기획서나 프로그래밍 작업, 디자인, 논문 쓰기, 글쓰기 등이 1분 이내에 몇 줄의 명령어로 처리된다. 가게 이름을 무엇으로 지으면 좋을지 사전을 찾고, 사투리를 검색하고 외국어까지 찾으며 몇 날며칠을 궁리했었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귀찮아하지도, 게으르지도 않게 몇 초 만에 수십 개를 제안한다. 생각의 종말인 동시 노력의 종말이다.
AI 시대의 도래로 인류의 종말을 걱정들 한다. 이중에서도 AI로 인해서 사람들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을 가장 걱정한다. 일부는 맞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자동차의 거의 대부분은 자동기어 차량이다. 요즘은 트럭도 대부분 자동기어로 출시된다. 운전을 나름 꽤 오래 했다고 하는 사람 중에도 수동기어 운전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제법 된다. 환경이 바뀌면서 수동기어 운전의 능력이 종말 된 것이다.
최근 자율주행차량의 수준이 꽤나 발전했다. 스마트폰에서 터치 몇 번만으로 주차장에서 차량이 혼자 나와 건물 앞에서 사람을 태우곤 목적지까지 스스로 알아서 최적의 경로를 통해 간다. 초창기 기술이 이 정도인데 10–20년 후면 스마트폰만 다루는 운전면허시험을 볼지도 모른다. 운전 자체를 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이유와 필요조차 없어지는 운전 능력 자체의 종말이다.
이런 능력이나 기능의 종말, 소멸 말고 어떤 것들이 안타까울 수 있을까 하는 상상을 해봤다. 1900년대 초반 세계 평균수명은 40~45세로 추정한다. 100년 동안 인간의 수명은 두 배 가량 늘었고, AI와 양자컴퓨터까지 합세해서 돕는다면 100살은 우습고 그 이상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인간의 수명이 150살 200살이 되면 청춘은 100~150년쯤 될 것 같다. 어쩌면 영원히 청춘일 수도 있다. 푸른 봄처럼 짧은 청춘이, 그래서 아쉽고 애틋한 마음이 종말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춘의 종말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150년간의 청춘이 결코 축복은 아닐 것 같다는 이유에서다.
조금 더 생각해 보니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엘리시움에서처럼 생명연장과 영생에는 많은 돈이 들 것이다. 일부 부자들만 생명이, 청춘이 늘어날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은 여지없이 청춘의 종말을 절대 아쉬워하지 않을 듯 하다.
빈부격차는 꽤나 오랫동안 종말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