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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씀 Aug 03. 2024

바나나마저 저를 아프게 할 줄은 몰랐습니다

좋아하던 바나나에게 배신당했습니다

저는 크론병을 앓고 있는데요. 크론병으로 인해 몸이 아플 때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게 빨리 나아지는 길이더라고요. 담당 교수님께서도 아플 땐 물도 마시지 않는 게 소화기를 쉬게 해 주고, 얼른 나을 수 있는 방법이라 알려주신 기억이 있고요.



크론병 처음 걸렸을 때 말이에요. 네이버에 검색하면 크론병에 좋다고 추천하는 다양한 음식과 병원 그리고 출처 모를 정보들이 쏟아져요. 조금 자극적인 글들은 읽다 보면, "여기 가면 나도 금방 치료되나?"란 생각을 하게 되고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그렇게 나을 병이면 난치병도 아니고 다 그 병원 가서 치료하겠죠?



주변에서도 마찬가지예요. 크론병이란 걸 처음 알렸을 때, 아무래도 부모님들이 걱정이 많으시잖아요. "이게 몸에 좋다던데", "이게 소화기에 좋다던데"하며 음식을 강요하는 부모님도 계시고, 병원에 가지 말고 다른 형태로 고치자는 부모님도 계신 것 같더라고요. 저희 부모님은 강요하시는 분들은 아니셨지만, 당신들께 좋은 경험을 줬던 것들은 제게 먹어보라 권하기도 하셨어요.



한 번은 아빠가 명절에 귀한 산삼을 받았다고 천천히 씹어 먹으라고 하신 적이 있어요. 딱 보기에도 질겨서 '이거 잘못 먹으면 명절에 큰 이벤트 치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저는 어떤 채소도 소화시키지 못하는 때라서 명절 음식은 물론이고 일반적인 식사도 잘 못할 때였거든요. 저도 모르게 버럭 화를 냈고, 아빠가 개미 목소리로 "이거 귀한 건데..."라고 말씀하신 기억이 나요. 저를 생각해서 주신 건 알지만 몸이 약해지니 신경이 더욱 예민해졌던 것 같아요.



아마 지금의 저라면 덥석 받아먹었겠죠. 하지만 그때 산삼을 먹었다면 분명 응급실에 갔을 거예요. 귀하면 뭐해요. 제 몸에 맞아야 귀한 음식이죠. 크론병이 그런 병인 것 같아요. 모든 병에 음식이 중요하지만, 소화기 관련 병들은 식이가 더 엄격하죠. 처음을 생각하면 참 난감했던 기억들 뿐입니다.



 


의외로 저를 고통스럽게 한 건
질긴 음식이 아닌 부드러운 음식이었어요.


잠깐 제가 크론병을 진단받게 된 시절을 떠올려보면요. 극심한 통증에 맹장염인 줄 알고 맹장수술을 하다 염증을 발견했고, 장결핵으로 오인되어 3개월 동안 장결핵 치료를 받았어요. 전혀 차도 없이 대장내시경을 비롯한 괴로운 검사가 반복되고 통증이 지속돼서,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대형병원으로 전원을 했고요. 전원해서도 외래를 통해 또 3개월 정도 경과를 지켜보던 중 장에 구멍이 생겨 기약없는 입원을 했고, 그 입원 중에 크론병 확진을 받게 되었습니다.



진단받기까지 대략 8개월 정도 걸렸는데요. 그 기간에도 당연히 배는 계속 아팠어요. 맹장수술도 했고 치료도 받고 있는데 계속 아픈 거죠. 무엇을 먹어도 되는지 알 수 없었고, 조금만 질긴 음식을 먹으면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아팠어요. 먹지 못하니 살은 계속 빠져서 51kg까지도 떨어졌어요(제 키는 174cm입니다). 오직 살기 위해 먹을 뿐이었죠. 생계를 유지하려면 회사를 다녀야 했으니까요.



그때 바나나와 이온음료를 많이 먹었어요. 바나나는 과일이지만 어릴 때 식사대용으로 많이들 먹지 않나요? 저는 바나나를 식사대용으로 좋은 '부드러운' 과일이라 생각했어요. 누군가 제게 알맞은 식사를 챙겨줄 상황도 아니었고요. 그래서 맹장수술 후 건강이 좋지 않을 때 종종 바나나를 먹었죠.



바나나를 먹었을 때 항상 아픈 건 아니었어요. 어느 날은 아프고, 어느 날은 먹어도 안 아프고... 그런 날의 연속이었죠. 저는 정말 바나나가 당시의 제 몸에 맞지 않는 과일이란 생각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냥 속이 안 좋으니 아프겠지"하며, 또 바나나를 먹었어요.



저는 고등학생 때도 복통으로 응급실을 자주 갔거든요. 그럼 응급실에서 급한 불을 끄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빠랑 마트에서 미닛메이드 오렌지 주스 한 통과 바나나를 사서 돌아갔던 기억이 있어요. 집에 도착해서 잠시 잠들었다가, 일어나서 배가 안 아프면 오렌지 주스와 바나나를 먹었거든요. 그럼 또 몸이 건강해지는 것 같았고요. 그런 경험 때문에 배가 아파도, 바나나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전혀 못했던 거죠(제 아내는 간호사인데 배가 아팠던 애한테 오렌지 주스도 좋지 않았을 거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네요).



크론병 진단을 받고 나서야 알았어요. 진단받을 때 병원에서 크론병 환자의 식이에 대해 자세히 들을 일이 있었는데요. 급성기의 크론병 환자에게 섬유질이 많은 음식은 정말 좋지 않더라고요. 바나나에는 섬유질이 엄청 많았고요. 저는 아픈데도 계속 섬유질을 먹었던 거예요. 잘 모른다는 게, 내 몸을 이렇게 망칠 수도 있구나 싶더라고요.



그때부터 바나나는 바나나향 우유만 먹었어요. 진실을 알고부터는 바나나가 먹고 싶은 생각도 안 들더라고요. 아픈 몸이 신기한 게요. 제 몸에 안 맞는 음식은 냄새도 맡기가 싫어요. 예전엔 미나리도 냄새 맡으면 정말 역했는데, 요즘은 먹을 수 있어서 그런지 향긋하게 느껴진다니까요.








바나나를 추억하면 이 말이 떠올라요. 세상에 영원한 고통도, 영원한 행복도 없다. 정말 신기하죠. 먹기만 하면 아파서 보기도 싫었던 음식이 이젠 맛있어 보인다는 게요. 저와 같이 아픈 분들에게 조심스럽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지금 겪는 고통이 영원할 거라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저도 아플 때는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이렇게 살 바에는... 하고 괴로운 생각들을 많이 했는데요. 당장의 힘듦이 자꾸만 영원할 것 같겠지만 그냥, 작게라도 희망을 가지셨으면 하고 바랄 뿐입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고통도 사그라들고 나아지면, 또 잊고 잘 살게 되더라고요. 지금의 저는 바나나를 거의 매일 먹는데도 전혀 아프지 않아요. 속이 괜찮을 뿐 아니라 화장실에 갈 때도 문제가 없고요. 제가 그때의 아픔 때문에 지금도 바나나를 못 먹는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네요. 이렇게 달달하고 맛있는 바나나를 못 먹는다니 말이에요.



예전의 저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분들이 계시다면, 비슷했던 사람이 이제는 이렇게 잘 먹고 있다는 걸 기억해 주시면 좋겠어요. 내일은 오늘보다 아프지 않을 거라고 믿고 생각하면 정말 그렇게 될 거예요. 아내 몰래 바나나를 3개나 먹다가 걸려서 혼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프지 않고 행복한 저처럼요.




 본 브런치북에는 제가 겪은 크론병과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적고 있습니다. 몰라서 아팠던 저의 경험이 다른 분들에게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되는 이야기를 좀 더 편하게 보고 싶으시면 브런치북/작가 구독을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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