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씀 Aug 10. 2024

양배추를 바라만 봐야 했던 날들은 이제 안녕

양배추즙은 제외입니다만

양배추가 속에 좋아


어릴 때부터 소화기가 좋지 못했습니다. 하루도 편할 날 없는 속사정 때문에, 주변에서 양배추가 소화에 좋다는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습니다. 식당에 양배추 반찬이 나오면 부모님도 "양배추 좀 먹어. 속에 좋아"라고 말씀하셨고요.



두릅이나 고사리 등 질긴 나물의 향은 힘들었는데요. 양배추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습니다. 양배추는 언제 먹어도 늘 맛있었고 속도 편안했어요. 나물류를 먹으면 속이 아팠던 걸 보면 제 몸이 몸에 좋은 걸 스스로 알았던 게 아닐까 생각해요. 워낙 양배추는 많이 먹었다보니 안 보이면 생각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독립을 한 이후로는 양배추를 챙겨먹을 일이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양배추 한 통이 얼마나 커요. 자취집 작은 냉장고에 큰 양배추를 보관하기도 힘들었고요. 혼자 살면서 양배추를 사면 먹는 양보다 버리는 양이 더 많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자연스레 양배추와는 멀어졌지만 여전히 좋아하는 채소였습니다.








20대의 어느 날, 크론병을 진단받고는 양배추를 떠올렸어요. 혹시 모르니 검색을 해봤죠. 양배추에는 비타민U가 풍부하다고 하는데요. 비타민U는 위 점막을 보호하고 손상된 위벽을 치유, 궤양 치료에 유효한 효과를 내는 성분이라고 해요. 이름까지도 'Ulcer(궤양)'의 앞글자를 따 '비타민U'라고 명명되었다고 하니, 양배추는 확실히 소화기에 좋은 음식이었습니다(출처: 양배추 속 비타민U가 속 편하게, 이해나, 헬스조선기자, 2021/06/16).



하지만 양배추에도 식이섬유가 많았습니다. 저처럼 크론병을 앓는 분들은 '염증 활동기'에 식이섬유를 조심해야 하는데요. 저도 한창 염증 활동기라서 양배추를 먹을 수 없었습니다. 아쉬웠어요.



어느 날, 회사에서 친하게 지내던 동료분이 제가 크론병을 앓고 있다고 하니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선생님, 저도 예전엔 항상 위염을 달고 살았어요. 식사 때마다 양배추를 꼭 챙겨 먹고, 양배추즙도 매번 챙겨 먹으니까 속이 좋아지더라고요. 지금도 좋고요. 선생님도 속 안좋으실 때는 양배추 드시거나 바쁘면 양배추즙이라도 챙겨드세요. 꼭 건강 찾으시고요."



동료 덕분에 양배추즙이란 답을 얻은 것 같았습니다. 퇴근 후 바로 회사 근처의 생협을 찾아 갔죠. 다행히 양배추즙을 한 포씩 판매하더라고요. 당시 1,000원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한 포 구매해서 집에서 뜯어봤습니다.



아니, 근데, 세상에... 뜯자마자 확 퍼지는 냄새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맛은... 그리고 건강을 위해..."라며 한 입 먹었는데요. 헛구역질을 하며 뱉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살면서 양배추 먹기 힘들단 생각은 한 번도 안했는데, 양배추즙은 다른 차원이었습니다. 양배추즙을 먹느니 하루에 양배추 한통을 먹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거든요. 결국 저는 염증 활동기가 지나갈 때까지 좋아하던 양배추를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시간이 흐르면서 병은 조금씩 나아지더군요. 보복 심리였는지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저는 양배추 요리를 정말 많이 해먹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양배추, 그리고 양배추 요리에 대해 잠깐 말씀드려 볼게요.



양배추는 신기한 식재료에요. 어떤 방법으로 조리하는지에 따라 맛과 향이 너무 달라지거든요. 대만에서는 양배추를 많이 볶아 먹더라고요. 그때 알았습니다. 불에 볶은 양배추는 극강의 맛을 낸다는 걸요. 특유의 비린 양배추 향이 사라지고요. 양배추의 달콤함과 아삭함이 살아나면서 불맛과 촉촉한 기름맛, 짭짤한 소금맛이 완벽하게 어우러집니다. 양배추만으로도 훌륭한 요리를 대접받는 느낌이랄까요.



가끔 양배추를 채 썰어서 계란과 다른 온갖 채소를 섞어서 전처럼 만들어 먹거든요. 그럼 그 맛이 또 천하일미에요. 요즘은 두부도 섞어 '단백질폭탄전'을 만들어먹는데요. 이 요리는 크론병 있는 분들에게도 정말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불을 사용해서 채친 채소들이 잘 익어 소화하기에도 편안하고, 아플 때 자주 먹던 두부나 계란을 맛있게 섭취할 수 있는 요리거든요. 한번 드셔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옛날통닭과 함께 먹는 양배추 샐러드도 정말 좋아해요. 어릴 때 치킨을 시키면 항상 채썬 양배추 위에 케첩과 마요네즈를 뿌린 샐러드가 함께 왔거든요. 그게 진짜 맛있었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사라진 게 당연해서 잊고 있었는데요. 최근에 집에서 아내와 치킨을 먹을 때, 어릴 때 먹던 그 맛이 그리워서 만들어 먹어봤거든요. 정말 추억의 맛이더라고요. 일본 돈가스 집에 가면 종종 먹을 수 있는 참깨 드레싱을 얹은 양배추 조합도 좋아해요. 참깨의 고소함과 양배추의 아삭함이 어우러져 각자의 맛을 극대화한달까요. 물론 생 양배추 샐러드는 조금 건강하신 크론병 환자 분들이 도전하시면 좋을 음식인 것 같습니다.



쪄 먹는 양배추도 맛있습니다. 보통 찐 양배추는 쌈밥으로 먹는데요. 최근에는 찐 양배추를 그냥 먹어봤거든요. 무슨 맛이 나는 줄 아세요? 바로 옥수수 맛이 나요! 너무 맛있더라고요. 단맛도 가득 올라오고요. 사실 저는 옥수수를 정말 좋아했는데 크론병 때문에 지금도 못 먹는 것 중에 하나거든요. 양배추로 옥수수 맛을 느낄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쌈밥으로 먹는 양배추도 좋지만, 가끔은 찐 양배추를 그냥 씹어서 드셔보세요. 정말 다른 단맛과 신선함이 느껴져요.








약과 음식은 그 근본이 동일하다는 '약식동원'이란 말이 있어요. 저는 약으로 치료를 받고 있지만, 약보다 많이 그리고 앞으로도 먹어야 할 건 음식이잖아요. 세상에는 맛있는 음식이 참 많아서 앞으로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살고 싶고요. 그러려면 제가 먹을 수 있는 식재료와 조리법을 확실히 알아야, 식도락 여행도 갈 수 있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지금처럼 양배추 샐러드를 먹기까지 3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어요. 그동안은 저잔사식이라는 소화기에 음식물이 덜 남는 식사법을 했는데요. 매일 먹을 수 있는게 생선, 두부, 죽 등이었어요. 채소의 아삭함이나 고기의 쫄깃함은 느끼기 힘들었죠. 그래서 먹을 수 있는 재료를 집요하게 먹어보고, 맛을 느끼고, 아픔을 기록하며 관리했어요. 그랬더니 지금은 생 양배추도 먹을 수 있게 되었네요.



저처럼 크론병을 앓는 게 아니더라도 '내가 뭘 먹을 수 있는지'를 아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는 소화기 질환이 있으신 분들이 많잖아요. 급성기에는 못 먹더라도 병이 좋아진 이후에는 좋아하고 잘 맞는 음식을 드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속이 아픈 모든 분들, 좋아하는 음식을 포기하지 않으시면 좋겠어요. 잘 관리해서 좋아하는 음식 마음껏 먹으면서 살자구요 :)




 본 브런치북에는 제가 겪은 크론병과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적고 있습니다. 몰라서 아팠던 저의 경험이 다른 분들에게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되는 이야기를 좀 더 편하게 보고 싶으시면 브런치북/작가 구독을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