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 시인 특강 :: 읽는다고 달라질 일은 없겠지만

한 철 머무는 마음에게

by 까롱

얼마 전 박준 시인의 특강 <읽는다고 달라질 일은 없겠지만>을 들을 기회가 생겼습니다.

시인의 삶이 궁금하기 했고, 글을 전문적으로 읽고 쓰는 사람의 생각을 엿듣고 싶어서 참석하였습니다.

시인으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한 편의 시를 쓰는 경험의 여정을 되새기며 글을 적어봅니다.





읽는다고 달라질 일은 없겠지만

소설가, 시인, 예술, 창작가의 영역을 이야기하며 "시인"이라는 영역에 대해 강연의 첫 장을 펼쳤다. 우리는 직업이라는 영역에 대해 이야기할 때, 노동과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원칙으로 여긴다. 누구나 노동을 하고 금전적인 대가를 받는 것이 우리가 말하는 직업에서의 근로를 뜻한다. 시인이 받는 돈은 우리가 말하는 금전적 대가의 범위에 속하지 못할 정도이기에 직업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즉, 남들처럼 매달 일정한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액수가 "영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직업의 영역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서 영원은 0원을 의미하지만, 이는 한글로 적었을 때 느낌이 있다고 하신 게 떠올랐다)



시인이 직업의 영역이 아니라 생각하면서 본인은 정녕 시인인가에 대한 고뇌의 기간이 있었다. 그것은 하루에 시를 적는 시간이 비교적 적으며, 여기서 비교 대상은 이전에 말했던 직업의 영역을 의미한다. 노동에 따른 대가를 받아야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기에 편집자로서 일하며 라디오에서도 일을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을 이러한 직업의 영역에서 살아간다. 그 일을 자신이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고, 좋아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노동이고 근로에 대한 것이다. 시를 적는다는 것은 대가를 바라지 않기에 노동이 될 수 없으며 직업의 영역과 별개인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 즉, 나의 영역인 것이다.



시인으로서 살아가면 건배사와 같은 자리에서도 꼭 관심을 받게 된다. 스피치 학원에서의 수업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다. 신기하게도 이 둘의 공통점은 짧은 시를 낭송한다는 것이었다. "가을", "택시"와 같은 짧지만 의미가 명확한 시를 외워서 써먹으면 그만인 것이다. 그리고 본인의 시 "그해 봄에"를 낭송하며 그에 얽힌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그해 봄에"에 얽힌 이야기

얼마 전 손목을 깊게 그은

당신과 마주 앉아 통닭을 먹는다


당신이 입가를 닦을 때마다

소매 사이로 검고 붉은 테가 내비친다


당신 집에는

물 대신 술이 있고

봄 대신 밤이 있고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 대신 내가 있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내가

처음 던진 질문은

왜 봄에 죽으려 했느냐는 것이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당신이

내게 고개를 돌려

그럼 겨울에 죽을 것이냐며 웃었다


마음만으로는 될 수도 없고

꼭 내 마음 같지도 않은 일들이

봄에는 널려 있었다


그해 봄에 - 박준



친한 지인의 연락을 밤중에 받았고, 여느 날처럼 실연 뒤의 술주정으로 인한 연락이라 생각하였다. 출근이 예정된 한밤중에 찾아온 술주정과 같은 연락은 다음으로 미루려 했지만, 다음엔 없을 거라는 그녀의 한마디에 집으로 찾아가게 된다.



늦은 시간에 취기를 빌린 그녀의 연락과 항상 실연 뒤에만 찾는 그녀의 연락에 화가 났다. 1시간 동안 운전하고 간 곳에는 치킨도 아닌 말 그대로 통닭이 자리하고 있었다. 준비했던 잔소리를 시작하려던 찰나에 눈앞에 소매 사이로 검고 붉은 테를 발견한다.



한참을 생각하고 적막 속에서 덤덤하게 내뱉은 한마디 "왜 봄에 죽으려 했느냐"

그녀의 대답은 "그럼 겨울에 죽을 것이냐"



실제 상황에서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한마디에 그녀의 감정이 울렁이다 결국 쏟아졌다고 한다.

"마음만으로는 될 수도 없고 꼭 내 마음 같지도 않은 일들이 봄에는 널려 있었다"



사실 마음 같지도 않은 일들은 사시사철 널려있다. 이처럼 시에는 일상의 말, "참말"이 담겨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열린 말을 내뱉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인은 내년이 되면, 주변 사람들에게 잔소리와 더불어 위로의 말을 더욱 전할 것을 이야기한다.





중요한 것은

저 입술을 깨물며 빛나는 별


새벽 거리를 저미는 저 별


녹아 마음에 스미다가


파르륵 떨리면


나는 이미 감옥을 한 채 삼켰구나


유일한 문밖인 저 별


별의 감옥 - 장석남



시인은 자신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감옥을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여정을 이야기한다.

학창 시절에는 자유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여 어른이 되고 싶었고, 어른이 되고서는 경제적 여유를 얻는 것이 정답이라 생각하여 취업을 하였다. 취업을 하고서 바라본 나의 창살을 이전보다 두터워져 있었고, 비로소 깨달은 중요한 것은 나의 감옥에 두는 것들이었다.



부정과 불안, 우울과 같은 감정을 본인의 감옥에 둔다면 그것들과 살아가게 될 것이다.

긍정과 여유, 열정을 둔다면 그것들과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과 함께 자신의 감옥 창살 너머의 별들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시인이 살아가는 세상,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결국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을 전한다.





물음표


글쓰기는 자기 긍정과 부정의 조화를 이루며 여러 번의 퇴고를 거친다. 시인이 되기 위해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비로소 깨달은 것은, 글쓰기는 주관적이지만 객관적인 것을 적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색깔과 같은 것은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위험할 수 있다. 본인의 경험, 일상의 말을 의미가 담긴 글로써 적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이러한 글쓰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전한다.



문학, 시, 예술, 사람을 바라보는 것의 첫걸음은 "물음표"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본인의 영역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에 전혀 의문을 품지 않는 것은, 그것에 대한 부정의 응어리를 낳는다. 시에 대해 물음표를 단 한 번도 두지 않은 사람은, 시인이 즐거워하지 않을 말들을 전한다. 덤덤하게 물음표를 두고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과 사랑에 대한 자신의 태도로 연결된다.








한 철 머무는 마음에게

박준 시인의 특강 "읽는다고 달라질 일은 없겠지만"은 그의 첫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그의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만큼이나 긴 제목을 지녔습니다. 저는 특강 내내 몰입하여 박준 시인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1시간 동안 진행된 솔직한 강연과 30분간의 질의응답 시간은 자유로우면서도 아늑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온전히 자신의 영역에 두지만, 마냥 좋아하는 것만 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는 이야기. 결국 본질은 나의 감옥에서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것들을 곁에 두고 사느냐에 달렸다는 이야기. 시인이 살아가는 세상은 결국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이야기. 이러한 공감되는 이야기들에 강연 끝까지 마음으로 대화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끝으로 강연의 제목인 <읽는다고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의 뒷말은, 우리는 결국 물음표를 둘 수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태도와 연결되고, 나를 나타내는 표상이 됩니다.



비 내리던 초겨울, 박준 시인에게 전해 들은 담백하고 차분한 이야기는 한 철 머무는 마음들에게 충분한 감동을 주었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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