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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롱 Dec 17. 2023

크리스마스 루비 뱅쇼

나를 태우거나, 당신을 태우거나

이것은 나의 자전적 기록이다.



누군가는 위로를 누군가는 축하를 건넨다. 조언을 해주는 분도 있다. 밤에 쓰러지듯 잠을 자는 것은 이전과 비슷해 보인다. 오히려, 최근에는 좀이 쑤시듯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감긴다. 다행인 것은 느끼기에 초조함과 불안보단, 열정이 담긴 시스템과, 그것의 기대에 부응하는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로 보인다. 그렇다면 후련하냐는 질문에 마땅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겠다.





무등산

작년 건강이 좋지 않을 무렵에는 무등산 근처를 자주 갔다. 곁에 있는 사람을 따라서 가기도 했고, 스스로 가기도 했다. 말 그대로 등산을 하진 않았지만, 맑은 공기를 마시며 최애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나에게 너무나 평온한 일이었다. 그 순간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올해 들어 곁에 있는 사람들을 끌고 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더 이상 그것만으로 사람들을 끌고 올 수 없어졌다. 문을 닫지 않았더라면 수십 번을 갔던 경험을 담아 네이처셀 글을 적어냈을 것이다. 좋은 기억으로 끝을 맺었으나, 박수 치며 보낼 수 있을지는 아련하다.



이제는 문을 닫은 네이처셀



사진은 포토샵을 유튜브에서 다이제스트로 학습해서 한 번 적용해 보았다. 빈티지하고 모던한 따뜻한 느낌을 좋아하니깐, 원하는 사진이 나오도록 다듬어본다. 배우던 것을 체득하기까지 꽤 많은 열정과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한데, 사진을 담는 일은 어떠할지. 나의 아이폰은 프로도 아닌 것이 카메라의 성능에 견주려 한다. 원하는 맛을 담아줄 것만 같은 카메라에 욕심이 생긴다. 또다시 결정의 순간이 다가왔다. 빠른 결정이 후회 없는 길일 것을 알지만, 이 또한 시간이 걸리겠지.



황금빛



무등산 산책을 마치고 서점에 간다. 2곳의 도서관에서 전부 대여 중이기에, 책을 사버리기로 마음먹는다. "인생의 다양한 경험을, 광우서점에서"

결국에 나는 경험에 소비하고, 경험을 소비한다.






집 근처에서 걷던 중, 한 아이가 걸음을 멈춰 서고 무언가를 찍고 있다. 아주 붉고 탐스러운 열매들. 뭉텅이로 모여서 맺혀있는 것이 보기에 좋다. 무엇일까 찾아보니 장미과의 상목 관록 '피라칸다'로 보인다.



알알이 영근 사랑



비슷하게 생긴 나무들도 많았지만, 마치 작은 토마토 같은 생김새와 함께 모여있는 특징, 그리고 잎사귀의 느낌으로 보아 그러하다. 속명인 ‘Pyracantha’을 풀이해 보면 그리스어 pyro(불꽃)와 acantha(가시)의 합성어로 ‘가시가 있고 열매가 불꽃색과 같다’라는 뜻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자신의 존재를 남들과 달리, 겨울에서야 보여주는 '피라칸다'의 꽃말은 '알알이 영근 사랑'이다.






그만큼 붉었던 것은 모여진  단풍들이다. 해충들에게 자신의 독성과 함께 영양분이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붉은색을 띠는 것으로 진화했다는 단풍나무.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리는 신호의 색이라고 한다.





크리스마스 루비 뱅쇼




티백이 들어간 벤티 사이즈의 크리스마스 루비 뱅쇼는 스타벅스의 크리스마스 시즌 음료다.

다소 커 보이는 하얀색 스타벅스 머그컵에 세이렌이 미소 짓고 있다.



처음에는 핑크빛 거품이 가장 먼저 보였고, 잔을 기울이니 새까만 음료가 보였다. 

그것은 마치 아메리카노 같아서 향을 맡아보면 알싸한 느낌의 산초와 계피가 떠오르면서, 은은한 와인의 기운도 느껴진다.


*실제로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 추출액이 들어가 있다. 이것은 무알콜이고 카페인도 들어있지 않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한 모금씩 마시다 보니, 어느덧 음료는 체리빛을 띠기 시작했다. 

그제야 약간의 쌉쌀함과 체리향도 느껴지기 시작한다. 뒤끝에서 산미가 느껴지기도 한다.



커피를 마시다 보니, 익숙한 사람을 마주했다. 마주했다기보단 스쳐 지나갔다. 스쳐 지나갔으니 그도 날 보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는 내가 다니던 헬스장의 트레이너다. 회원권을 등록하고 무료로 PT를 받았었던 기억이 난다. 그 열정에 언젠가 PT 받겠다고 말했었다. 1년이 지나고서야 뱉은 말을 지킬 때가 되었다. 그리고 또다시 스칠 것이다. 그는 폰을 만지며 다시 어디론가 향한다. 그리고 2시간 뒤 운동을 하러 간 나와 또다시 스칠 것이다. 가벼운 만남이지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인연의 끈은 질기다. 끊어낼 순간이 온다면 어떡할 것인가. 어떻게 끊어질 것인가.



나를 태우거나, 당신을 태우거나.

마치 붉게 물든 단풍나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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