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가 맞나 의심스러워 (2)

나와 함께 사는 사람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by 구름구

서울시 중구 명동 15번지에 사는 김철수 씨.

이제 의사가 불러준 이 주소를 할미가 막힘 없이 답해줘야 할 차례다.

할미의 끔뻑 감았다 뜨는 눈에서 어떤 답이 나올지 예측되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입모양이 서울시의 ㅅ으로 벌려지는 순간이었다.

할미가 입을 뗐다.


"지는..."


적막이 흘렀다.


"넘의 집 주소 함부로 말 안 해유..."


공간의 압이 올라감을 느꼈다.

흔히 말하는 숨 막히는 긴장감이란 이런 거구나.

철수 씨가 정말 그곳 명동에 사는 건 아닐 텐데

할미는 뜬금없는 답변을 하고 말았다.

아마도 이런 식의 답을 처음 들은 것 같은 의사는

짧게 공기를 들이마시며 팽팽한 침묵을 깼다.

나는 갑자기 삐져나오는 웃음을 막기 위해

오른쪽 벽시계를 올려보며 "하이고" 외마디를 뱉었다.

아무래도 웃을 상황은 아닌 것 같아서

애꿎은 무릎을 쓰다듬으며 간신히 눈치를 챙겼다.

손자인 내가 누구보다 잘 아는 할미다운 대답이기도 하지만,

여기는 다름 아닌 치매안심센터다.

물론 진짜 기억이 안 나서 그런 건가 싶은 걱정도 들었다.




할미가 받던 2단계 치매 선별검사는

기억력, 주의력, 일상생활 수행 능력 등을 테스트하게 되는데

주소에 관련된 질문은 언어 능력에 대한 검사로 짐작된다.

할미는 우리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당신의 이름과 나이,

혼자서 장을 보는지 등의 다양한 질문을 받았다.


할미는 당신의 이름과 나이에 대한 질문 정도는 무난히 대답했다.

혼자서 장을 보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우리 동네 육곳간이 고기가 좋다고 말했고,

우리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물어봤을 땐

"호호호 슨생님도 참"이라는 다른 차원의 답을 내놓았다.

과연 점수를 매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개인정보동의 선택란에 단호히 비동의를 한 것 같았던

'김철수 씨 묵비권 사건'은 얼마나 감점을 받았을지 모르겠다.

의사는 모든 검사를 마치고 나를 보며

"치매 초기로 보이신다"라고 말해줬다.


우리 할미가 긴장을 하면 헛말이 나오기도 하고

안 해도 될 이야기도 곧잘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이 진단은 잘못됐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렇게 떼를 쓰고 싶었다는 게 맞다.

"주소를 모르는 게 아니고 말을 안 한 거라니까요??

할미가 화투 점수를 얼마나 잘 내는데!"처럼.


이제 남은 것은 치매안심센터와 연계된 협약병원에서의 정밀 진단 검사다.

의사는 그곳에서 혈액검사, 뇌 영상 촬영 등을 진행한 후

증상에 맞는 치매 약을 처방받게 된다고 알려주셨다.

나는 할미 손을 잡고 나오며 표정을 살폈다.

할미 연세에 이 정도면 아주 훌륭한 점수라고 말해줬다.

그리고 약만 잘 챙겨 먹으면 아무 문제없을 거라고,

요즘에는 치매 약이 정말 좋아서 진행을 늦춰주는 효과가 확실하다고 안심시켰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할미는 주문처럼 말했다.


"원래 늙은이덜은 나이 먹고 조금씩 그런 게 있어! 별 거 아녀. 별 거 아녀 별 거 아녀..."


와중에 나는 정말 궁금했다.


"근데 아까 그 주소는 일부러 말 안 한 거야?"


"몰러. 쓰x"


정말 기억이 안 났었나 보다.




우리는 치매안심센터에서 안내해 준 날짜에 맞춰

센터와 연계된 파주의 M병원으로 향했다.

코로나 확진자가 계속해서 늘던 때라서,

병원의 입구부터 다소 정신없는 풍경이었다.

부디 할미를 위한 오늘의 일정이 안전히 잘 마무리되길 바랄 뿐이다.


나는 할미의 마스크를 다시 한번 손봐주고

진료부터 검사까지 주의를 기울여서 돌봤다.

검사 결과는 틀리지 않았고 할미에게 한 달치 치매 약이 처방되었다.

할미는 병원 측에서도 진행률을 현저히 낮춰주는 약이니까

잊지 말고 매일 오전에 하나씩 챙겨드시라는 말에 힘을 얻었다.

그리고는 처방전을 들고 함께 약국으로 가는 내게 말했다.


"니가 오늘 할머니 때문에 고생했구나. 약 잘 챙겨 먹어야지..

다 늙어 빠져 가지고 손주도 누군지 기억 못 하고 그 지랄이면은 저기 산에다가 내놔."


아무튼 기분이 좋다는 의미다.

다행스럽게도 처방받을 약이 당신을 지켜주리라는 확신의 반어법이다.

"응. 내놓을게"라고 장난으로라도 답하는 순간,

집안의 불은 꺼지고 그녀는 단단히 팔짱을 끼게 된다.


"참나. 내가 퍽이나 할머니한테 그럴까!"


이게 옳은 대답이고 사실이었다.




치매 인구 100만 명의 시대라 한다.

그만큼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하는 게 중요한 질환이다.

감사하게도 할미에게 검사를 권한 치매안심센터의 덕을 봤다.

전국에서 시행되는 치매 예방 프로그램들이 체계적으로 잘 이뤄져 있으니,

할미와 같은 다른 어르신들에게도 조기 예방의 혜택이 꼭 주어지면 좋겠다.


치매안심센터에서 돌봄 노트라는 것을 전해주셨다.

매일 인지훈련에 도움이 되는 질문들에 답을 적는 형식이었는데,

할미가 답하기에도 무리가 없는 간단한 문제였다.

나는 할미를 앉히고 하루 두쪽 분량의 질문에 답을 적도록 도왔다.

할미는 고민 끝에 힘들어할 때도 있었고,

어떤 날은 질문 그대로 낙서처럼 적어볼 때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반드시 다 적지 않아도 좋고

꼭 맞는 답이 아니어도 되니까 매일 꾸준히 해보자 했다.


나와 함께 사는 사람은.jpg
손주 언제 오나.jpg


혼자 먹었다.jpg
문단속 잘해따.jpg
할미의 기록


어릴 적 소학교에 가고 싶다고 떼썼다던

호기심 많고 순수한 아이처럼,

할미는 서툴고 더디지만 하나씩 즐겁게 답을 채워나갔다.


'나와 함께 사는 사람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할미가 채워 넣은 내 이름 두 글자.

그 사실만으로도 할미에게 든든한 안정감이 생기길 바랐다.

어릴 때 크고 작은 문제로 병원을 데리고 다니던

고생 많았고 감사한 할미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듯이,

할미에게 내가 꼭 필요한 사람이 되겠다 다짐한다.

세월이 많이 흘러 허리에 아픈 약, 치매를 늦추는 약을 추가하게 됐지만

할미가 늘 하던 말처럼 할미는 진짜로 아무 걱정 말어.


할미와 함께 사는 사람이 늘 같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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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의 이름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