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할미

모두 나 때문인 것만 같아서

by 구름구

"할아부지~~"


21년 3월의 어느 날 새벽.

할미의 잠꼬대가 요란하다.


가끔 할미가 누군가에게 쫓기듯 잠결에 내는 소리는 익숙해서

저러다 곧 잠잠해지겠지 싶었다.


"할아부지!!!"


오전 6시가 덜 된 시각.

전보다 더 힘주어 목소리를 내는 할미를 깨워줘야 할 것 같다.




방문을 열고 나와 보니 할미는 꿈을 꾼 게 아니라,

거실 화장실 입구에 넘어진 채로 내가 나와주길 기다렸다.

내 이름 대신 처음 들어보는 할아버지라는 호칭으로.


할미는 변기 쪽으로 머리를 대고 누워

움직이지 못하는 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닥에 떨군 부러진 변기커버와 그 옆에 넘어져있는 할머니.

나는 단 한번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이 광경에

멍하도록 비현실적인 감정을 느꼈다.

이내 잠이 달아나고 심장은 빠르게 뛰었다.


할미는 20여분 전 화장실에서 어지러움을 느껴 넘어졌다고 했다.

우선 나는 할미의 허리가 좋지 않았을 때라 다리의 감각이 느껴지는지 물어보았다.

할미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분명 허리의 문제인 것 같아서

섣불리 할미를 거실 안으로 옮기는 게 더 위험할 거라 판단했다.

나는 찬 바닥에서 추웠을 할미에게 급히 이불을 덮어주고 119에 연락했다.


할미는 당신의 목이 부러진 것 같다고 말했다.

아마도 넘어지는 순간 변기 쪽에 목 부분을 부딪힌 것 같았다.

이미 상황이 벌어졌음을 알 수 있는 현실이었지만

믿기지 않는, 믿고 싶지 않은 상황 가운데

난 괜찮을 거라고, 어쩌면 허리 때문일 수도 있다고,

이제 구급차가 올 테니 병원부터 가서 치료받자고 했다.

누워있는 할미의 손을 부여잡고 어서 구급차가 오기를 기다렸다.


할미와 함께 살겠다고 다짐한 순간부터

언제고 할미의 마지막 순간은 내가 마주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 왔다.

어떤 형태로든 감당하기 힘들 테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그날에 대해 단단히 마음먹으며 준비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이라 해도 받아들일 수 없다.

할미는 불의의 낙상사고를 당했고 내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두 명의 구급대원이 집안으로 들어왔다.

구급용 들것 위로 할미를 옮기는 작업이 필요했다.

할미는 어깨만 들어도 상당한 고통을 느꼈다.

제발 살살 옮겨달라고 애원할 만큼.

나는 구급대원 맞은편으로 가서

화장실 문턱에 할미의 머리가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해서 운반을 도왔다.

집밖으로 나와 환자운반기에 할미를 옮기고

목에는 고정대를 채워 구급차에 올라탔다.

나는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깝고도 큰 대학병원으로 가달라고 했다.


구급차가 조금이라도 흔들릴 때마다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할미를 위해

나는 양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잡아 움직이지 않도록 곁을 지켰다.

언젠가 위급한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어느 날 갑자기'는

그렇게 예고도 기척도 없이 우리 앞에 닥쳤다.


"할머니. 지금 병원으로 가고 있으니까 조금만 견뎌. 괜찮을 거야."




응급실 문이 열리자 뜨거운 바람이 덮쳤다.

환자운반기에 누워있던 할미는 입구에서 잠시 대기했다.

우리를 데려다준 구급대원은 응급실의 간호사에게 지금까지의 상황을 알렸다.

할미는 기막히다는 표정으로 천장을 보며 내게 말했다.


"너랑 잘 살아보것다구 왔는디..."


난 어떤 따뜻한 말을 골라 답해줘야 할지 몰랐다.

할미의 손등 위로 내 손을 포개는 것 말고는,

지금 이 순간 할미를 안심시킬 한 마디가 떠오르지 않았다.

할미는 절차를 마치자마자 X-ray와 MRI 촬영을 해야 했다.

X-ray 촬영실에 들어간 할미는 내내 통증을 호소하며 소리를 냈다.

그저 밖에 앉아 아무것도 도울 수 없던 나는

할미의 비명을 들으며 불안한 시간들을 견뎌내야 했다.

어떤 아픔일지 가늠이 안 되는 할미가 안쓰러웠다.


뒤이어 MRI 촬영을 이어가기 전,

간호사는 똑딱이 단추가 달린 병원 봉투에 할미의 옷가지를 넣어 내게 주었다.

온전히 벗을 수 없었던 할미의 옷들은 가위로 찢겨져 봉투에 담겨 있었다.

나는 그 봉투를 품에 안고

길게 이어지는 MRI 촬영을 기다려야만 했다.

그때서야 가족들에게 알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할미가 다쳐 응급실에 오게 됐다는 그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자꾸만 목이 메었다.


오늘은 토요일이었다.

때마침 할미의 떨어진 치매약을 받기 위해 병원에 오전 예약을 한 날이었고,

돌아오는 길에는 물리치료까지 받고 오기로 했었다.

내일 점심은 어떤 걸 먹을지 고민하고,

여느 날처럼 서로가 잠들기 전 인사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그 뒤로 반나절도 되지 않아 벌어진 일이

도무지 실감 나지 않았다.

할미는 촬영 내내 울부짖으며 아파했다.


모든 촬영이 끝나고 의사와의 면담이 진행됐다.

할미는 목뼈를 다친 것이 맞았다.

총 7개로 이뤄진 경추 중 7번째가 주저앉아있었고

그 자리에 인공뼈를 넣는 대단히 큰 수술을 받아야 했다.

인공뼈를 삽입하기 위해서는 전방과 후방 접근,

쉽게 말해 앞뒤 절개를 통한 수술이 진행되어야 하는데

환자가 고령이다 보니 이 수술을 잘 견딜 수 있는 게 관건이라고 했다.

특히나 후방 절개 수술을 할 때는 출혈도 많이 일어나므로 위험성이 훨씬 크단다.


나는 이 수술을 잘 마쳤을 때 할미가 전처럼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물었다.

의사는 예전같이 걸을 수 있는 건 불가능,

휠체어라도 타실 수 있도록 하려면 수술이 최선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수술이 없다면 희망도 없다.

최선의 선택지라는 것도 없었다.

할미를 구할 수 있는 건 수술뿐이었다.

병원 측은 수술에 반드시 필요한 일부 도구들이

외부로부터 도착해야 해서 어느 정도의 대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촬영을 하러 들어간 할미를 이후로는 만날 수 없었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우리 꼭 다시 만나자는 인사도 없이.




이제 곧 할미의 탈구된 경추를 바로잡아줄 수술이 시작된다고 했다.

나는 보호자로서 수술 전 동의서에 서명해야 했다.

다른 치료방법이나 비수술적 대안이 없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환자가 생을 마감할 수도 있는 수술의 슬픈 결과에 대해서도

모두 자발적 동의로 인지하고 내 손으로 서명해야 한다.

마스크 사이로 계속해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아무리 마음을 다잡으면 뭐 할까.

모든 게 급히 돌아가는 바람에 할미에게 힘이 될 좋은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는데,

이대로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건 동의할 수 없었다.


죄책감도 몰려왔다.

이 모든 게 다 나의 제안으로 시작해 벌어진 일인 것만 같다.

여기로 와 함께 살지 않았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당신이 살면 얼마나 살겠냐는 말을 달고 살았지만

실은 건강히 오래 살고 싶어 하는 사람.

투박한 말씨 사이사이 생의 애착이 담겨있던 할미를 위한,

그녀를 살리기 위한 수술이었기 때문에 형언할 수 없을 무게의 겁이 났다.


늘 불쌍한 나를 두고 어떻게 눈감냐 했던 할미니까

억척스럽게 버텨내 주기를 바랐다.

손자가, 그리고 우리 가족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할미, 정말 미안해.


내 간절한 희망을 담은 할미의 수술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