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가 찾아온 그해 봄
5월이 되자 신기한 변화가 생겼다.
우리 집에 제비가 집을 짓고 있었다.
그 공간에 구멍을 뚫었다 치면 우리 집 안방과 연결되는 필로티였다.
제비가 둥지를 틀기로 낙점한 위치는,
밖에서는 보이지 않으면서 세찬 비바람과 강한 햇빛도 피할 수 있는 곳이다.
제비는 개체가 큰 새들의 눈을 피할 수도 있는 제법 괜찮은 곳을 선점했다.
누군가의 중개나 도움도 없이
본능적으로 할 일을 하는 모습이 경이롭고 벅찼다.
이곳에 이사 온 지 5년이 됐을 때 마주한 뜻밖의 손님이다.
엄마는 너에게 정말 좋은 일이 생기려나보다 말해줬다.
지금의 내가 기대하는 일은 할미의 건강과 안녕뿐이었다.
제비 부부가 부지런히 진흙을 물어와 둥지를 짓는 사이,
할미는 예고된 기관 절개술을 마쳤다.
폐가 잘 펴져서 자가호흡도 원활하고
폐렴도 나아지기를 바라지만,
할미의 의지와는 다르게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할미와의 면회는 계속되었고,
그날그날 받은 방문증들은 버리기 뭐해서
서재방의 문고리에 하나둘 걸어두었다.
뭐 하나도 잃고 싶지 않은 기분 탓이었다.
두툼해진 방문증들이 할미가 이겨낸 시간인 것만 같았다.
둥지를 완성시킨 제비 부부는 일사불란했다.
아내는 튼튼한 둥지 안으로 들어가 새끼를 낳을 채비를 마쳤다.
남편은 둥지 근처 전깃줄에 앉아
혹시 모를 위해와 침입을 막기 위해 든든히 탐색했다.
제비 시점에서 둥지를 쳐다보던 나 역시 침입자 중 하나였기 때문에,
제비는 내 주변으로 바삐 날아와 부리로 귀를 살짝 쪼면서 경계했다.
누구보다 할미가 참 좋아했을 광경이다.
새를 좋아하고 새에게 의미 달기를 즐기고
자그마치 새 생명이 태어나는 서사까지,
할미에게 맞춤인 볼거리이자 희소식이다.
나는 할미에게 보여주기 위해 이 영상들을 찍어왔다고 말해줬다.
귀가 떨어져 나갈 뻔했다는 거짓말도 곁들였다.
할미는 면회 중에 내민 제비 영상에 눈이 동그래졌다.
할미의 표정 하나하나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녀의 두 눈은 "시상에!!!!"를 말하고 있었다.
중환자실에서 두 달째 치료를 받고 있는 할미는,
곧 일반 병실로 옮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일반 병실로 옮길 만큼 차도가 있었는가, 그렇지 않았다.
더 위중한 환자를 위해 할미의 자리를 내어주는 형국일 뿐이었다.
나는 늘 선택을 해야 하는 기로에서
답답한 마음으로 결정을 해야만 했다.
무엇이 맞는 건지.
무엇이 나은 건지.
마땅히 내 힘을 보태줄 수 있는 게 없이,
할미를 위한 최선의 선택지가 무엇인지만을 고를 수 있었다.
결국 일반 병실로 옮기기 위한 가정용 인공호흡기를 대여해야 했다.
할미가 병원으로 온 지 꼭 세 달째였다.
나는 인공호흡기 대여를 대행하는 업체 직원을 만나,
혼합형 기계를 선택해야 하고 환자부담액과 소모품에 대한 설명 등
대여 절차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모두 다 할미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며,
거스를 수 없이 그래야만 하는 중요한 것들이었다.
할미와 호스로 연결되는 기관절개환자용 커넥터를
매달 2개씩 교체해 주는 사실처럼,
할미가 재활할 수 있는 희망의 일정이 언제인지도 함께 알려주기를.
오늘로부터 확신의 회복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같이 귀띔해 주기를 바랐다.
찜찜하고 불확실하고 조급한 마음은 더해갔다.
더불어 할미를 돌봐줄 좋은 간병인을 찾아야 했다.
우리 가족은 병원 내 가장 능숙하게 환자를 돌본다는
간병인 한 분을 추천받았다.
나는 그 간병인을 만나 일반 병실로 옮겨지는 날짜에 맞춰
할미를 잘 돌봐주기를 부탁드렸다.
그나마 매일 면회 시간이 정해졌던 중환자실보다
일반 병실은 면회 절차가 더욱 어려워진다.
원망스러운 코로나 때문이다.
모두의 수고로움에도 나아지지 않는 상황 속,
그렇게 차츰 밀려나가는 것만 같던 시간이 흘렀다.
일반 병실로 옮겨졌는데 불안함은 더했던
묘한 시기가 도래했다.
올봄은 빽빽하게 핀 벚꽃을 보는 게 처음으로 갑갑하게 느껴졌다.
명확히 이름 붙일 수 없는 내 결핍은,
팝콘처럼 수북하게 터진 벚꽃들이 빨리 피고 져버리길 바랐다.
나는 매년 알고도 당하는 그 아름다운 풍경을,
낮에는 싱그럽고 밤에는 따사로운 봄철 낭만을 질투했다.
그때마다 나는 할미의 미음이 들어가는 호스에
시원한 맥주 한 컵을 졸졸졸 흘려 넣어주는 상상을 했다.
할미가 솥뚜껑 뒤집어지는 목소리로 맛있다고 할 것만 같다.
내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는 가슴의 큰 구멍에 놀라는 사람 하나 없이
하루하루 냉정한 시간이 모른 척 흘러갔다.
작가로서의 할 일은 많아지고 마음은 바빠졌고 할미는 나빠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할미와의 추억들을 떠올리는 폭이 넓어졌다.
그때마다 내 가슴을 저미게 한 일들은 무엇이었는지,
할미와의 행복했던 순간들은 어떤 모양이 됐는지 떠올렸다.
할미와 함께 적어나간 삶의 책 사이사이
다시 들여다보고 싶은 가름끈의 개수가 점점 늘어났다.
할미를 만날 때마다 입으로는 희망을 도모했고,
병원 밖을 나설 때는 절망에 불안했다.
초여름 둥지 안에 태어난 다섯 정도의 새끼 제비들이
나란히 얼굴을 내밀고 바깥세상을 구경 중이었다.
제비가 이렇게 귀엽게 생긴 아이들인지 미처 몰랐다.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이 놀라운 탄생의 순간을 혼자만 알게 돼 섭섭했다.
마침 그날은 출근 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부터 전화를 받은 날이었다.
할미가 병실에서 자주 우신다고,
전부터 우울증세가 있으셨는지를 물었다.
나는 우리 할미가 아주 활달하고 건강한 분이었다고 항변했다.
우울증세 같은 건 없으며,
기약 없이 병원에 오래도록 누워있어서 그럴 거라고.
면회 때마다 가족을 기다리고 낫고 싶어 하고 집에 가고 싶어 하는 환자일 뿐이라고.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불안한 마음이 서둘러 말을 골라냈다.
할미가 체념했을까 봐 두려웠다.
여럿 고생시킨다는 쓸데없는 마음과
지금이 몇 시인지 며칠이나 지났는지 모르게
지쳐 잠들다 일어나도 똑같은 병실에서,
나와 가족을 기다리다 울었을 거다.
갈수록 심해지는 섬망 증세와
하루에도 몇 번씩 객담을 뽑아내야 하는 고단한 일상과
당신처럼 누워있는 환자들을 둘러보며 한숨을 뱉었을 거다.
누군가에게 할미가 울고 있음을 전해 듣는다는 것이 뒤틀리는 아픔이었다.
괜히 기분 좋은 소식을 기대하게 만드는
내 눈에 담긴 단란한 제비 가족은 분리된 아름다움처럼 보였다.
할미를 죽도록 살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