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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범석 May 13. 2024

할머니, 나랑 살겠다 한다

암호에 가까운 그녀의 언어들

“얼추 짐은 다 쌌는데 뭐어, 더 준비할 게 있것어?”     


벌써부터 이사 준비를 시작했다는

통화 속 할머니의 대답은 의외로 명쾌했다.     


꽤 오랜 세월 홀로 지낸 할머니는

나의 10대가 30대에 닿을 때까지 다양한 곳으로 이사를 해오셨다.

그때마다 그녀는 내게 ‘이사를 앞두고’가 아닌,

모든 일을 끝마치고서야 알려주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전화가 와서는 당신이 적은 수첩 속 새 주소를 보며,


“지발 딴짓 좀 허지 말고 들어어~ 인천시!! 남동..구.. 적었냐?!”


이렇게 선언하듯 내게 본인 사는 곳을 알려주면 그걸로 끝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이사를 결정한 곳은 막내 손자인 나의 집.

때문에 그녀의 손자와 함께 살 결심이 내게는 모두 스포일러다.     

사실 할머니의 이사 고민은 꽤 긴 시간 이어졌더랬다.

우선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집주인 요청에 응할지,

혹은 괜찮은 값에 준수한 주거지로 옮길지 고민하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하루는 부동산을 통해 눈여겨봤다는 근처 어느 집 앞에 나를 데려갔다.     


“이 집 2층인디 괜찮지? 여기가 무당이 살던 데여. 근디 삼살이 껴가지고...”    

 

마치 그녀와 임장 하듯 그 집을 올려보던 나는,

삼살의 의미를 몰라 검색창을 열었다.

'사고 질병을 뜻하는 겁살, 재물손실과 관재구설의 재살, 천재지변을 말하는 천살...'

저런 살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면 어디부터 어루만져야 할지 모를 아픔일 것 같다.

괜히 의미를 알게 되어서일까.

‘당신을 작살내는 세 가지 극딜을 경험하고 싶으면 들어와 살아봐라’

싶은 마음도 들었다.     


이렇듯 어느 집은 오컬트 스토리가 펼쳐지고

또 다른 집은 섬뜩한 공포물이 되어,

그녀가 이사할 수 없는 강력한 이유들이 쌓여가고 있었다.

마치 양손에 수맥봉을 들지만 않았을 뿐,

몸 어딘가에 수맥칩이 내장된 사람처럼

이래서 "못 써!" 저래서 “아녀!”를 외쳤다.

그렇게 이사를 안 하기도 그렇다고 하기도 갑갑한 시간은 길어졌다.   

  



그러다 어느 퇴근길 나는 할머니와 통화 끝에,

내가 살고 있는 파주 집에 들어오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당시 팔십 중반이 된 할머니는 6개월 전 한겨울,

눈길에 넘어져 부러졌던 팔의 후유증 때문인지 눈에 띄게 야위어 갔다.

나는 올해를 어쩌면 내년을 넘기지 못할지 모를 할머니를 챙기고 싶었다.     

사실 내 제안에 응하지 않을 수 있다 짐작하면서도

이사할 집이 고민됐다는 그녀의 고민은 핑계고,

속마음은 삼살이 아닌 엄살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본인이 원하는 바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할머니는,

내 제안에 두루뭉술했지만 분명하게 답했다.


“아무튼간에 너는 아무 걱정 말어! 넌 일이나 잘햐. 아무 걱정 말어!”     


충남 홍성 출신의 할머니 덕분에 나는 충청도 사투리가 가지고 있는

여러 입체적인 뉘앙스를 곧잘 파악할 수 있다.     


Q. 할머니의 대답 중 “아무 걱정 말어”의 숨겨진 의미를 서술하시오.     


이런 문제가 나왔다면 만점에 가까운 답을 적어낼 수 있다.

혹시 어떤 답이 나올지 예상 가능한가?

내가 풀이한 답을 알려주겠다.   

  

A. 일단 나쁘지 않네. 내가 곧 답을 줄 테니 넌 내 전화 놓치지 말고 잘 받아라.     


말도 안 된다고? 놀랍게도 저 대답은 사실이다.

분명 할머니는 이후 당신 힘으로 가능한 짐들을 정리부터 한 후

    

“얼추 짐은 다 쌌는데 뭐어, 더 준비할 게 있것어?”

라고 연락했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의중을 파악한 나는

부모님께 찾아가 할머니와 살고 싶다 말했다.

아버지는 네 할머니가 괜히 하는 소리, 그럴 리 없다 한다.     

내가 중3 때 스스로 분가를 택해 20년 넘게 홀로 지낸 할머니에게,

외아들인 아버지는 꾸준히 설득했었다.

이제 연세도 있으니 예전처럼 자유롭게만 지내는 건 위험하다고.

같은 공간에서 자고 한 상에서 밥 먹으며 여생을 모시고 싶다고.

고집 좀 그만 피우라고 말했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법주나 맥주 한 잔을 들이켜며

"싫다"에 가까운 "어으 좋다!"로 추임새를 넣거나,

거절을 싣고 한오백년 돌고 돌다 몇 마디로 압축했다.


“아주 고마워 자네!! 이건 그짓 하나 없는 내 진심이여!”

“아유 밥이 질다아.. 어디 쌀이냐?”     


매번 겉돌며 스미지 못했던 그녀의 대답에는 여러 의미가 있을 거다.

모두를 고생스럽게 하는 것도 당신 때문에 다소 불편해지는 것도 원치 않았다.

게다가 걱정과 근심, 불안과 신중을 모토로 살아온 할머니에게

가족과의 한 지붕 삶은 그리 간단치가 않았다.

그래서 그녀의 결정은 나뿐만 아니라 가족을 놀라게 했고 예상을 뒤엎었다.




그런 할머니는 왜 나였을까?

나는 머지않아 이뤄질 할머니와의 동거를 준비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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