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범석 May 27. 2024

더는 NO약자가 아닌 그대에게

그래도 니가 있어서

이사전야를 맞은 오늘.

나는 내일 아침 일찍 이사를 위해 미리 할머니 집에서 자기로 했다.

하필이면 8월에 뜨거운 안녕이라니.

바람 한점 없는 무더운 여름밤과 이런저런 생각들이 단잠을 방해했다.

건넌방의 할머니는 옅은 한숨소리와 살랑한 부채질로 열대야를 달랬다.




오전 8시. 약속했던 이삿짐 차가 도착했다.

약 3시간 전부터 깨어있어 퀭한 우리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이삿짐센터 분들을 맞이했다.

나는 이삿짐이 옮겨지는 동안 오늘까지 마무리해야 될 공과금 수납을 위해,

지로용지의 납부번호와 대표번호 등을 정리했다.

1인 가구의 단출한 짐들 덕에 딱히 도울 일이 없던 할머니는,

그동안 동네 친구분들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평소 자주 드나들며 인사를 드렸던 동네 어르신들은,

손자인 내게도 아쉬움이 담긴 축하인사를 건네주셨다.

'할머니 손주면 돈 받을 수 없다'던 동네 주차장 주인 할머니는

섭섭하다며 눈물을 보이셨다.

한겨울 할머니 집으로 통하는 계단의 쌓인 눈을 쓸던 내게,

감귤이나 우유 하나씩 쥐어주시던 아랫집 할머니는

손을 붙잡고 그윽한 눈으로 말씀하셨다.


"나 테레비 좀 저짝으로 옮겨주고 가..."


아랫집 할머니의 무진장 무거웠던 티브이 위치 변경은 내가,

옆집 아주머니 역시 무거워 버리지 못하던 책장은

(약간의 돈을 더 드리기로 한) 이삿짐센터가 해결해 드리니

어느새 오전 10시가 됐다.


뒷좌석에 할미를 태운 내 차와 이삿짐 차가,

동네 이웃들의 배웅을 받으며 골목을 빠져나간다.

그동안 꾸준히 오고 가던 길이었지만

아마도 돌아올 일은 없을 이곳을 벗어난다.

이제부터 평생 단 둘이 살 집을 향해 달린다.




우리는 1시간이 채 되지 않아 파주집에 도착했다.

안방과 서재방, 옷방, 화장실 2개.

사실 혼자서 지내기에 넉넉한 평수의 집이었다.

각 짐들이 공간의 위치와 용도에 맞게 내려지고 이사대금을 치렀다.

대략 3개월 간의 미션이 매듭을 짓는 느낌은 정말이지 홀가분했다.


잠깐 걷기만 해도 옷 사이로 땀이 차오르는 여름의 정점,

기운 달렸을 할머니가 좋아하는 동네 닭칼국수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출근을 앞둔 나는 할머니에게 혼자서 짐 풀지 말고

공휴일인 내일 같이 정리하자 말했다.

이미 듣지 않을 얘기란 걸 알지만 그래도 걱정이 됐다.

할머니를 집에 모셔다 놓고

그녀의 저녁을 해결할 반찬들을 일러준 후 나는 급히 출근했다.

아, 8자리나 되는 도어락 비번을 외울 리 없을 테니

출입키를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창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던 나는,

참가자 모집부터 각 라운드 구성까지 해야 할 일들이 차고 넘쳤다.

그렇게 거듭된 회의로 졸여진 저녁, 할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밥은 먹었는지, 새 집 온 기분이 어떤지, 먹고 싶은 건 없는지 물었다.


"이젠 많이 먹지도 못햐.. 닭 같은 거 투겨와도 남길 걸 뭐 하러 돈 써. 언능 와"


ChatGPT를 비롯해 어떤 강력한 챗봇도 학습하기 힘든,

할미의 '치킨 사 오라'는 의미를 알아챈 손자는

퇴근 치킨과 맥주를 포장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신발장 바닥에 빈 박스들이 널브러져 있다.

내가 없는 동안 그토록 말렸던 짐 정리를 한 게 분명하다.

불 꺼진 거실을 조심히 들어와 보니,

할머니는 입을 티브이 방향으로 쩍 벌리고

소파에 쓰러져 깊게 잠들어 있다.

거실 창문으로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이

할미의 앙상한 다리에 집중해 다른 몸에는 음영이 드리워졌다.

살집이 제법 있던 할머니였는데 언제 이토록 야위었을까.

앞으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의 두께를 보는 것만 같아 두려웠다.



할미의 앙상한 몸이 두려웠다 / 19. 08. 14



톡톡. 할미가 놀라지 않게 깨워보니,

벌린 입을 황급히 닫고 한쪽 눈을 떠 날 쳐다본다.


"나 왔어요."

"그랴.. 어여 씻고 자. 그래도 니가 있어서 내가..."


끝맺지 못하고 눈 감았지만 알아들어 기분 좋은 할머니의 말.

어릴 때부터 들어온 내 마음속 지문과도 같은 말.

'니가 있어서...'

언제나 내 쪽으로 몸을 돌려 바라봐주는 할머니만의 포근한 언어다.

늘 NO약자로 남아줄 것 같았던 그녀도 시간 앞에서 속절없다.

이제는 할머니의 보살핌만 받던 본투비 막내인 내가

그녀를 든든히 책임져야 한다.

세월이 그렇게 우리의 균형을 맞췄다.

 

이렇게 내가 할머니에게 있을 수 있어서

그리고 할머니가 나에게 있어 다행이다.

정말로 다행이다.

치맥은 내일로 미뤄두고

오늘 하루 수고한 나도 뻐근한 눈을 좀 감아야겠다.




다음날.

별안간 할머니는 내 방으로 다급히 들어와

 "난리 났어어어~~~"를 외쳤다.

고작 동이 튼 오전 6시에 잠을 떨치지 못한 나는,

본론부터 말하지 않는 충청도 할머니에게 난리가 난 이유를 물었다.


"주민등록증을 놓고 왔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