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애착시스템을 회복시키는 도구
대인관계 신경생물학의 의의
만약 누군가가 삶에서 불안정한 관계를 많이 경험했었다면, 그 사람은 극단적으로 타인으로부터 고립되려 하거나, 자신을 버리고 타인과 하나가 되려 할 것이다. 전자의 경우를 '분화'라 칭하고 후자의 경우를 '융합'이라 칭한다. 기준은 '관계'이다.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대상이 필요하다. 그 대상과의 관계에서 멀어지려 하는 패턴의 극단이 '분화' 가까워지려는 패턴의 극단이 '융합'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극단적인 패턴으로의 이동에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나로서 존재할 수 없었던 경험이다.'
여기서 '나로서 존재할 수 없음'이란,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현재 자신에게 느껴지는 것 즉, 자신의 실존이 허용될 수 없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특색 없고 남들과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개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고유성을 쉽게 드러내 보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회에서 자신의 고유성을 드러내 보이는 것은 처벌받을 일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회 구성원들의 판단이나 제제에 의해 누군가가 지니고 있는 고유한 오리지널리티는 말살된다. 그리고 그 결과 그 사람은 실존(자신의 주관적 체험)을 잃게 된다. 또는 지나치게 자신을 통제하고 구속하려는 관계 경험이 있는 사람의 경우, 마찬가지로 그 구속에 의해 자기 자신은 존재할 수 없게 된다. 모든 것을 상대의 뜻에 맞추어야 할 테니 말이다. 이렇게 나로서 존재하지 못하는 경험이 반복되면 그 사람은 위의 두 극단으로 나아가게 된다.
두 극단적인 양상으로 나아가는 이유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자신을 '존재할 수 없게 됨'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분화'의 패턴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자신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들로부터 멀어지려 한다. 그리고 그 멀어짐을 위해, 마치 바위처럼 타인의 감정에 반응하지 않게 되거나, 또는 그 영향을 재빨리 알아채고 회피하기 위해, 타인의 영향에 극도로 민감해지게 된다.
'융합'의 패턴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자신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기에 혼란과 불안정함을 느낀다. 그래서 혼란을 진정시키고 안정감을 느끼기 위해, 타인이라는 '기댈 곳'을 필요로 한다. 그럼으로써 그 타인의 기준이 곧 자신의 기준이 된다. 이미 희미해진 자기 자신은 믿을 수 없기에 자기 자신을 버리고 타인과 하나가 되고 싶어 한다. 그렇게 타인에게 의존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어떤 극단으로 나아가든 두 방향 모두 그 사람이 안정감과 살아있는 듯한 생생함을 느끼는 방향으로 자아가 발달하는 것을 제한한다. 한번 어느 극단에 빠지게 되면, (그것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었기 때문에) 그 극단의 방향성을 강화하는 흐름으로 움직이게 된다. 그리고 그 극단적 성향이 담보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느낌(자기 정체감)은 의식 수준에서 뿐만 아니라 무의식 수준에서도 '나는 ~~ 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 할 수밖에 없어'라는 신념을 만들어 낸다. 또한 무의식 수준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신념은, 그 사람이 의식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기에 그저 살아 숨 쉬는 것만으로도 점점 더 강화된다. 그럼으로써 그 사람은 정말로 더욱더 그런 극단적 성향이 강해진 사람이 되어간다.
그러나 이러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저절로 만들어진 생존전략은 이들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나', 더 정확히는 나에 대한 '인식'은 관계 속에서 성립되고 체험되기 때문이다. 그 관계가 자신과의 관계이든 타인과의 관계이든 말이다. 그러나 독립성을 추구하며 관계를 회피하려는 사람은 타인과 이 '관계'자체를 맺기가 힘들며, 누군가에게 의존하고자 하는 사람은 관계를 맺어도 그 관계에는 자신이 존재하지 않기에 어느 극단을 선택해도 자신에 대한 정체감(자아정체감)은 회복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러한 불안정애착을 형성한 사람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단단한 자기 정체감의 회복을 위해서는 '관계'를 형성하는 능력을 회복시킬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관계의 대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자신이고 하나는 타인이다. 즉, 자신과의 관계회복과 타인과의 관계회복이 이슈가 되는 것이다.
얼핏 보면, 독립적인 사람의 경우 자기 자신과의 관계는 좋은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관계에서 멀어지려고 하는 성향(분화=회피적 성향)의 경우, 앞에서 이야기했듯, 타인의 반응에 둔감해야 한다. 그래야지 타인에게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기본적으로 생물학적인 기전에 의해 타인의 반응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는 인간에게 '거울뉴런신경세포'라는 상대방의 생리적 상태(느낌, 감정, 생각)를 저절로 카피해 오는 신경세포가 있기 때문이다. 이 신경세포 덕분에 우리 인간은 다른 사람에게 반응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으며, 서로 지지해 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회피(분화)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분화의 패턴이 강해져 감에 따라, 이 거울뉴런세포가 받아온 타인의 생리적 상태(느낌, 감정, 감각)를 차단하고 회피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야 영향받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거울뉴런세포가 받아온 타인(외부환경)의 생리적 상태라는 것은, 결국 자신의 몸에 있는 거울뉴런세포를 통해 들어오기 때문에 결국, 이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차단해 버려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차단해 버렸기 때문에, 회피성향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그 사람은 자신의 몸의 느낌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그런데 '내가 나라는 느낌'(자기 정체감)에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정체성 외에도 물리적인 정체성(나와 외부를 구분하는 경계인 몸)이 존재한다. 그러나 회피적 성향의 사람은 상대라는 외부자극으로부터 비롯된 몸의 느낌을 회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몸의 느낌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그럼으로써 자기정체감을 구성하는 물리적인 나(몸)을 잃게되고, 그에따라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 자신을 지키려다 역설적으로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 결과는 끊임없이 느껴지는 '자신이 없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는 희미한 자기 정체감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공허감'이라는 형태로 느껴지기도 한다.
타인에게 의존하려는 성향이 강해진 사람의 경우 안정감을 위해 나와 타인의 경계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자신을 말살시켜 버렸기 때문에 당연히 자기 정체감이 약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자기 정체감이 희미해지면 희미해질수록 더욱더 타인에 대한 의존성이 강해진다. 또한 그렇기에 이들에게는 '관계'가 중요할 수밖에 없게 되며, 자신을 존재하게 해주는 '관계'가 사라지면 마치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은 상실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기에 결국 우리가 독립적인 패턴이 강한 사람이든 의존적인 패턴이 강한 사람이든 중요한 것은, 이러한 우리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선택한 전략(패턴)으로는 우리가 갈망하는 것(단단한 자기 정체감과 생생하게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획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대인관계신경생물학의 의의가 된다. 대인관계 신경생물학은 이러한 상태에 있는 개인이 '어떻게'하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형성한 불안정한 관계 맺기 패턴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 신경생물학적 기전을 통해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식출저: 대니얼 j 시겔 대인관계 신경생물학 지침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