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뇌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특정한 사실이나 경험을 체험하게 되면, 이 체험에는 반드시 해석이 붙는다. "이것은 ~~ 한 거야. 저것은 ~~ 한 거야"라는 해석말이다.
그리고 이 해석작업은 무의식 수준에서 저절로 일어난다. 왜냐하면 우리의 뇌는 완결되지 않은 것을 완결시키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부분적인 요소들을 던져주면 알아서 그것들을 엮어내는 논리를 구축한다. 이러한 뇌의 기전을 아포페니아라고 한다.
아포페니아의 정확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아포페니아는 주변 현상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려는 인간 사고의 특징이기도 하다. 또한 모호하고 흐릿한 자극을 명백하고 뚜렷하게 지각하는 ‘파레이돌리아(Pareidolia)’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러한 기전 덕분에 우리 인간은, 서로 관련이 없는 각각의 요소들을 연결하여 그 부분의 합을 넘어서는 전체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하늘에 떠있는 별들을 서로 연결하여 별자리를 만들어 내거나, 그 별자리의 모양을 보고 별자리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창조해 내기도 한다. 그래서 이 '아포페니아'는 인간 창의성의 기원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뇌의 기전이 긍정적으로만 발현되는 것은 아니다. 다음의 예를 살펴보자.
'남편', '옆집 여자', '인사', '연락', 카톡, '엘리베이터', '함께 타고 있음', '술', '비밀', '친밀함', '갑자기', '동창회', '연락두절' , '외박'이 단어들의 나열을 보고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 아마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면 아포페니아가 일어난 것이다.
이 단어들은 그저 하나의 단어일 뿐이다. 그러나 이렇게 연달아서 나열해 놓으면 우리의 뇌는 이 각각의 상관없는 단어들을 연결하는 맥락을 찾으려 한다. 그럼으로써 고작 단어에 불과했던 각각의 요소들이 하나의 스토리라는 거대한 전체를 만들어 낸다. 이 거대한 전체를 게슈탈트 심리학에서는 '게슈탈트'라고 한다.
이처럼, 우리 뇌의 이러한 기전 덕분에 우리는 무언가 이 세상에 없던 것을 창조해 낼 수 있음과 동시에, 망상에 갇혀 괴로워질 수도 있다. 이처럼 아포페니아가 전자의 방식으로 일어나면 그 결과는 그 개인을 행복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후자의 방식으로 일어나면 정신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게슈탈트는 그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필터가 된다. 그럼으로써 게슈탈트가 한번 구축이 되면, 그 사람은 그 게슈탈트 내부에 갇히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게슈탈트 내부에 갇혀버렸기 때문에, 그 게슈탈트를 구성하는 요소(위의 예시에서는 망상스토리를 뒷받침하는 부분들) 이외에는 보지 못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형성된 게슈탈트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강해지게되고, 그 게슈탈트에 갇히게 되는 순간 그 게슈탈트의 내용을 현실에서 체험하게 되기 때문에 그 사람은 점점 더 괴로워진다.
불안정한 애착시스템으로 발생하는 문제도 이와 같다. 과거의 경험에 의해 상처를 받은 사람은, 그 상처를 두 번 다시 받지 않기 위해, 과거의 경험에 기반한 게슈탈트를 형성한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신뢰하게 되면 거절당하게 된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믿게 되면 결국 상처받는다." "상대와 너무 가까워지면, 상처받는다."등의 제한적인 신념으로 구성된 게슈탈트에 틀어박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 게슈탈트의 내부에 숨어 어 과거에 자신을 상처 준 경험이 반복되는 것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
그러나, 그러한 전략은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제한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과거의 고통으로부터 안전해지는 대신, 현재의 행복으로부터도 멀어지게 된다. 그래서 삶 속에서 파괴적인 관계를 반복하게 되고, 그러면서도 거기서 벗어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계속 그렇게 살게 된다. 체념하고 계속 그렇게 살거나, 끊임없는 자기 합리화를 통해 자신은 문제가 없고 행복하다고 방어하면서 말이다.
비단 이러한 회피적 성향을 가진 사람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그 이유가 바로 저러한 제한적 게슈탈트에 갇혀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변화와 치유의 핵심은 이러한 게슈탈트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에 달려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나를 제한하는 게슈탈트로부터 벗어나, 좀 더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새로운 게슈탈트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게슈탈트를 직접 부수는 것이고, 하나는 기존의 게슈탈트를 확장시켜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기본적인 원리는 같다.
어떤 사람이 어떠한 게슈탈트를 형성했을 때, 그 이미지는 그 게슈탈트 안에 갇혀있는 모습이 된다. 즉, 그 게슈탈트와 하나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특정한 색의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면 모든 세상이 그 안경의 색으로 물드는 것처럼, 그 게슈탈트가 전제하는 현실을 체험하게 된다. 그렇기에 치유와 회복의 가장 기본은 이러한 게슈탈트로부터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게슈탈트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우선 위에서 언급한 첫 번째 방식인 '게슈탈트 붕괴'를 통한 빠져나오기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해보자.
우리가 빨간색의 안경을 쓰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그렇게 빨간색의 안경을 쓰고 있을 때는, 세상이 온통 빨간색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내가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게 되면, 지금 내가 안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안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으면, 안경을 벗을 수도 있다. 게슈탈트에서 벗어나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특정 게슈탈트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먼저 인지할 수 있으면 그 게슈탈트를 체험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3인칭으로 관조할 수가 있다. 그 순간 우리는 특정 게슈탈트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 그리고 여러 개입 전략들을 사용하여 게슈탈트에서 빠져나오는(탈융합) 순간, 우리가 갇혀있던 게슈탈트에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바로 '금이 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게슈탈트에서 한번 빠져나와 분리될 때마다 게슈탈트에 금이 간다. 안경을 한 번 벗을 때마다 안경에 금이 가는 이미지를 떠올리면 된다. 그리고 한번 금이 간 안경은 다음에 한 번 더 벗으면 또 한 번 금이 간다. 그리고 이전에 이미 금이 간 상태였기 때문에 그것을 썼다 벗었다 할 수 록 더 쉽게 금이 간다. 그리고 어느 임계점을 돌파하게 되면, 그 안경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깨지게 된다.
마치 젠가에서 젠가를 무너뜨리기 위해, 젠가를 구성하는 모든 블록을 빼지 않아도 되는 것과 같다. 블록을 계속 빼다 보면 언젠가 특정 시점에 젠가가 무너지듯, 여러 다양한 부분들로 이루어진 게슈탈트 역시, 계속 벗어나다(탈융합) 보면, 어느 순간에 무너져내려 형체를 잃게 된다. 그렇게 게슈탈트가 무너지게 되면, 당연하게도 더 이상 게슈탈트에 갇힐 수 없기 때문에 그 게슈탈트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
그럼으로써 한 개인은 자신을 구속하던 제한적인 시스템에서 벗어나, 세상을 보다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이렇게 새로운 시스템(게슈탈트)을 구축할 수 있는 상태에서, 그 사람이 바라는 것, 그것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욕구, 그것이 실현되었을 때 느껴질 감정,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 등을 검토함으로써, 결국 '자신이 바라는 미래를 현실화할 수 있게 돕는 새로운 게슈탈트를 생성할 수 있다.
만약 최면이라는 도구를 사용한다면, 위와 같은 과정을 최면상태에서 내담자가 해당 상황을 '리얼하게 경험하게'하면서 진행할 수 있다. 리그레이션(연령역행)이라는 기법을 통해, 문제를 일으키는 게슈탈트를 구성하는 과거의 사건들, 사람들, 감정들을 그 당시로 돌아가서 체험하게 한 후, 그 체험상태에서 내담자를 다양한 기법들을 적용하여 분리시킨다. 그리고 다시 체험하게 하고 다시 분리시킨다. 그러다 보면 기존의 게슈탈트가 붕괴된다.
그렇게 기존의 게슈탈트가 붕괴되면, 프로그레이션(연령진행)이라는 기법을 사용하여 '문제가 해결되고 바라는 것을 이룬 상황'을 구체화시킨다. 이렇게 기존 게슈탈트가 무너진 상태에서 경험된 자신의 욕구와, 미래로부터 경험된 구체적인 '성공한 모습', 그리고 기존의 제한이 해제되었기에 취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들이, 프로그레이션(연련진행)을 통해 경험한 미래의 모습이 현실화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럼으로써 내담자는, 자신을 옭아맸던 과거로부터 벗어나, 자신이 바라는 미래의 모습을 실현하기 위해 살아나갈 수 있다.
이와 같은 예시는 '직접최면'을 사용할 때의 메커니즘이다. 그리고 이것이 첫 번째 방식, 기존의 게슈탈트를 부수고 새로운 게슈탈트가 형성되도록 돕는 방식이다. 그러나 최면에는 이처럼 직접적인 방식도 있지만 간접적인 방식도 존재한다.
물론 그 원리적인 부분에서는 직접최면의 방식이든, 간접최면의 방식이든, 탈융합을 통해 기존 게슈탈트를 붕괴시키는 것이라는 점에서 같다. 그러나 그 접근법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에는 두 번째 방법인, 기존의 게슈탈트를 부수지 않고 활용하여 새로운 게슈탈트로 확장시키는 방법에 대해서도 알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