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말로 해야지 알아?
말하지 않아도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
원래는 저 말은, 회피형 애착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꺼내놓은 말이었다. 그러나 막상 꺼내고 보니, 사실 회피형 애착을 가진 사람이 아니더라도 저런 마음은 누구나 품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저 말에 담긴 의미를 풀어보려고 한다.
누구나가 품고 있는 마음이긴 하지만, 저 말은 유독 회피형의 애착을 가진 사람들을 대변하는 말이다. 그들은 정말로 저렇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을 '꿈꾼다.' 보다 안정적인 애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저러한 것을 바라면서도 상대가 그것을 해주지 못했다고 해서 상처받고 증오까지 하지는 않는 것에 반에, 회피적 애착이 강한 사람들은, 누군가가 저렇게 해주지 못함에 대해 진심으로 마음이 찢어지고 분노한다.(슬퍼한다)
상대의 입장에서 보면 어이가 없다. 저것은 불가능한 이야기이니까. 내가 독심술사도 아니고 어떻게 입 꾹 쳐 닫고 있는데 니 마음을 알 수가 있을까. 어이가 없다. 심지어는 회피형 애착을 가진 사람이, 나를 상대로 의미 없는 트집을 잡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당연한 감상이다. 그러나 저러한 행동에는 정말로 그들 나름대로의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다.
회피형 애착에서 말하는 '회피'는 관계에 대한 회피이다. 그런데 '관계'는 다양한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내가 있고 너가 있다. 그리고 그 각자가 체험하고 있는 내용이 있다. 그 내용은 느낌으로, 나아가서는 체험하고 있는 감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를 회피하기 위해서는 자동적으로 그 구성요소인 느낌과 감정을 회피해야 한다. 그래야 상대에게 영향받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인간은 생명체이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서 라도 반드시 외부의 자극에 반응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환경(상대)이 주변에 있는 이상,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해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이미 영향을 받고 있음에도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바로 그 영향을 차단해 버리는 것이다. 즉, 상대에게 영향받지 않는 곳으로 이동(회피)하거나, 상대로부터 일어나는 감정과 느낌(외부자극에 의해 발생한 생리적 현상)을 인지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회피형 애착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신호와의 연결이 끊겨 있다. 영향받지 않기 위해, 타인(외부자극)으로부터 몸을 통해 발생하는 반응(감정, 감각)을 차단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회피형 애착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불안과 회피성향을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 자기 자신의 감정을 잘 모른다. 당연한 이야기 지만, 차단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들이 해리감(뭔가 자신과 분열되어 있는 듯한 감각)을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신이 자신임을 인식하게 해주는 물리적인 베이스인 몸과의 연결이 끊겨버렸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곧, 회피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경우, 자기 자신조차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즉, 그 사람의 마음, 감정, 주관적인 느낌(실존)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스스로에게 거부당하고 잇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그 거부당하고 회피당한 마음은, 누군가에게 허용되기를 갈망하게 된다. 존재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자신을 존재할 수 있게 해 줄 누군가를 갈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실존)은, 그것이 거부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경험되고 있을 때 가능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회피형 애착을 가진 사람은, 스스로에게는 그것을 해줄 수 없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현재 자기에게 존재하고 있으나, 자신이 지속적으로 거부해 온 결과 존재할 수 없게 된 자신의 마음(감정, 자신의 모습)을, 자신이 아닌 누군가(타인)가 대신 경험하고 허용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한 방법은, 회피형 애착을 가진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것(그러나 거부되어서 인식하지 못하고 있거나, 거절당할까 봐 두려워서 밖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상대가 똑같이 느끼는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을 똑같이 느낀다는 것은, 회피형 애착을 가진 사람이 그것을 밖으로 꺼냈다가 거절당했을 때 겪어야 할 아픔이 두려워서 차단하고 있는, 또는 스스로에게 거부되고 있는, 그 체험(감정과 느낌, 마음, 실존)이 상대에게는 '허용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허용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말하지 않으면 몰라?"라는 저 말은,
"내 마음이 존재해도 된다는 걸 알려줘..."라는 말이며. 더 나아가서는,
"내 일부분이 존재해도 된다는 걸 알려줘..."라는 말이며. 더 나아가서는,
"이런 나라도 존재해도 괜찮다고 해줘..."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