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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상담의 뇌과학적 원리

뇌과학이 유행이라 적어보았다.

by Lyden

과거에 40대 남성 A 씨에게 폭행을 당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A 씨는 40대의 남자이며 170cm 정도 되는 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경험은 이 사람에게 아주 끔찍했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이 사람은, 40대 정도 되어 보이는 170cm 중후반의 남자만 보면 공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인간은 생명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존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자극에 반응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위의 경우와 같이, 특정한 사건에 의해 생존에 위협을 느끼게 된 경우에는 '생존하기 위해서' 반응하는 바운더리가 넓어집니다. 즉, 정말로 두려웠기 때문에 그 일을 두 번 다시 겪지 않기 위해, 실제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그 대상이 아니더라도, 그 대상과 비슷한 성질을 공유하는 대상이 있다면, 그 '비슷한' 대상에 대해서도 멀리하고자 하는 반응(두려움)을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과거의 트라우마가 그 과거는 이미 지난 일임에도 현재까지 따라와 영향을 미치는 이유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이런 원리에 의해 우리는 과거에 어떤 고통스러운 경험을 유발한 대상과 비슷한 특징을 공유하는 대상을 보면, 뇌에서 경보신호가 울립니다. 이때 경보를 울리는 것이 '편도체'라는 부분입니다. 편도체의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경보를 하루종일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더라도 이 사람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끔찍한 일이 두 번 다시 발생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경보가 오보인 경우가 99%일지라도, 단 1%의 위험을 회피할 수 있다면 100번의 경보를 울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서죠.


그런데 이처럼 편도체가 작동하는 의도가 그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는 해도, 일상에서 시도 때도 없이 경보가 울린다면 삶이 매우 힘들어집니다. 왜냐하면 이 '경보'라는 것이 공포를 유발하는 '감정/생각/느낌'으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편도체는 이 사람을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서 저러한 고통스러운 감정을 일으키지만, 정작 이 사람은 시도 때도 없이 올라오는 고통스러운 생각이나 감정이나 느낌 때문에 죽을 것 같게 됩니다.


자, 여기서 악순환이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고통스러운 생각이나 감정이나 느낌이 올라올 때, 가장 흔히 하는 대처가 바로 '회피' 또는 '억압'이기 때문입니다. 고통스러운 감정을 외면하려 하거나, 생각을 무시하고 설득하려 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느껴지는 것들을 부정하려고 애씁니다. 그런데 이런 방법은 일시적으로는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효과가 없습니다. 삶에서 같은 고통은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반복되거든요.


왜 이토록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데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까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 근처에는 아마 스마트폰이 있을 겁니다. 그 스마트 폰을 한번 본 후에, 내려놓고 10초 동안 스마트폰을 떠올리지 말아 보세요.라고 하다면,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스마트폰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스마트폰은 마치 내 머릿속에 찰싹 달라붙는 것 같이 더 선명하게 떠오를 거예요. 왜일까요?


우리가 무언가를 부정하기 위해서는 부정할 그 '대상'을 전제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무언가를 부정하려 하는 순간, 우리의 뇌에서 그 부정할 '대상'을 의미하는 신경 연결망이 '발화'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부정하고 싶은 대상을 포함하는 신경회로에 전기신호가 들어간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무언가를 부정하려 하면 할수록 그것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뇌가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고통스러운 감정이나 생각, 느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억압하거나 외면하거나 회피하려 하면 할 수록 그 고통은 더욱더 강해집니다. 그리고 그렇게 고통과 관련된 신경회로망이 더 강력하게 활성화됩니다. 그럼으로써 실제로 그 고통이 경계하는 일들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들게 됩니다. 고통을 없애려다가 고통이 더 리얼해지는 것이죠. 이를 '마음의 역설 현상'이라고 합니다.


또한 이렇게 트라우마적 사건을 두 번 다시 경험하지 않기 위해 우리 뇌는 다음과 같은 전략을 사용합니다. 바로 위의 구조와 같이 트라우마경험-트라우마 대상과 유사한 대상에 대한 공포반응(감정/생각/느낌)으로 구성된 구조물을 형성하는 것이죠. 이를 신경과학에서는 fear memory structure(가짜공포기억구조물)이라고 합니다. 게슈탈트 심리학에서는 게슈탈트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저는 그냥 프로그램 또는 패턴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패턴이 트라우마를 유발한 대상과 비슷한 대상을 보는 것(그런 환경에 노출)만으로도 편도체를 자극하는 것이죠. 그래서 시도 때도 없이 고통스러운 감정/생각/느낌이 올라오고, 그것을 회피하고 억압하려다 보니 마음의 역설현상이 일어나서 더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이 공포반응은 트라우마가 없어도 그냥 촉발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뇌의 신경망이 그렇게 논리적으로 배선되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뇌는 라운드랩 자작나무 수분선크림 증정용과 일론 머스크를 연결시켜 놓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이 문장을 본 사람들 중 몇몇은 선크림과 일론 머스크를 연결시키게 될지도 모르죠. 이토록 뇌내 신경망 연결이라는 것은 어이없게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갑자기 내가 생각할 만한 일이 아닌데 이유 없이 떠오르는 기괴한 생각이나 감정, 느낌 같은 것들이 일어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화장실에서 손을 씻다 변기를 보았는데 변기를 보다 보니 왠지 내가 그것을 핥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던지 하는 것이지요.


어찌 됐든, 이런 트라우마적 경험에 의해 지속적으로 고통스러운 감정이 올라오고 그로 인해 괴롭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1. 회피하지 않기

앞서 이야기했듯이 마음의 역설작용에 의해 무언가를 회피하려 하면 할수록 그것에 고착되게 됩니다. 그렇기에 가장 현명한 방식은 그 고통을 마주하는 것입니다. 마주한다는 것은 그것과 맞서 싸우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존재할 수 있도록 수용하는 것입니다. 이 수용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 고통이 느껴질 때, 그 고통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 속으로 능동적으로 뛰어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통을 '느끼는'거예요. 왜 이렇게 해야 할까요? 나는 지금 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데 오히려 고통을 느끼라니 말이죠.


한 가지 사실은, 실제로 지금 여기서 그 고통을 느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 고통을 느끼고 있을 때는 마치 진짜로 무언가가 일어날 것만 같습니다. 그렇기에 그 고통에 머물면서 실제로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아 여기 머물로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구나"라는 '사실'을 말이죠. 그리고 그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을 '체험'하고 나면, 공포반응을 일으키던 편도체가 학습을 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위험할 줄 알고 경보를 울려댔는데 실제로 '체험'하고 보니까 하나도 위험하지 않네?"라고 말이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체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머리로 백날 "아니야... 이것 사실이 아니고 그러니까 두려워할 필요 없어!"라고 '이해'시키려고 해 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마음의 역설현상이 일어나서 고통이 강화될 뿐이죠. 중요한 건 몸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실제로 안전하다는 것을 몸으로 느껴 '체험'할 수 있을 때, 더 이상 경보반응을 울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편도체가 학습하게 됩니다.


우리 뇌는 크게 이성과 논리를 담당하는 부분인 피질부분과 그 아래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이때 편도체는 피질 아래에 속한 부분입니다. 즉, 이성적인 판단이 작용하는 부분이 아니라는 것이죠. 한마디로 편도체는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기와도 같습니다.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자 아기가 울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우는 아기에게 백날 엄마이제 곧 올 거야라고 말한다 해도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말'을 이해하지 못하거든요. 그런 아기가 울음을 그치게 하는 방법이 뭘까요? 엄마가 와서 안아주거나 달달한 것을 입에 물리거나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기분 좋은, 안전감을 느끼는 '체험'을 하게 해 주어야 아이는 비로소 안심할 수 있게 됩니다. 편도체도 마찬가집니다. 실제로 그 고통스러운 감정을 느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체험시켜 주어야지 안심해도 된다는 사실을 '학습'하게 됩니다.


이렇게 편도체가 지속적으로 고통에 능동적으로 노출이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전하다는 사실을 체험하게 되면, 우리 뇌에서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대상을 보았을 때 공포반응을 일으키는 뇌내 신경 연결망이 점점 비활성화됩니다. 이는 마치, 우리가 고속도로가 하나밖에 없는 마을에 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고속도로가 하나밖에 없는 마을에 살고 있는데, 그 고속도로 끝에 있는 목적지가 고통스러운 감정/생각/느낌인 것이죠. 그런데 그 고통에 머물면서 능동적으로 노출이 되면 그 고속도로 옆에 '안심', '안정'이라는 목적이 로 가는 도로들이 생겨나는 겁니다. 그리고 그러한 도로들이 점점 많아져서 기존 고속도로보다 더욱 활성화가 되면, 그 마을 사람들이 이제는 더 이상 기존의 고통이라는 목적지로 이어지는 도로를 사용할 필요가 없어지겠죠. 그럼으로써 고통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남아있지만, 안정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더 우선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공통반응에서 안정반응을 일으키는 쪽으로 뇌가 재배선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그 사람은 트라우마적 기억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구요. 이를 exposure activation(노출 더하기 활성화)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의식적인 수준에서 하는 것은 조금 복잡합니다. 무엇보다 이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수용이라는 것이 참 교묘한 부분이 많아서 실제로 하려다 보면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또한 이 작업은 어쨌든 내담자 혼자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면서도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이 맞나...?" 하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으로써 불안회로에 불이 켜지고 또다시 마음의 역설현상이 일어나 고통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또한 이것을 잘 해낸다 하더라도 이는 마치, 기존의 고속도로옆에 새 도로는 내는데 내담자 혼자 삽하나를 들고 땅을 파는 것과 같습니다. 매우 힘들고 오래 걸릴 수밖에 없죠.


최면상담에서는 위의 작업을 보다 빠르고 강력하게 할 수 있습니다. 신체를 이완시킴으로써 문제(가짜공포기억구조물)를 구성하는 요소인 감정이 보다 쉽게 드러날 수 있는 상태를 확보합니다. 그 뒤에 전략적인 경험 구체화 기법을 사용하여 당시의 체험의 임장감(리얼리티)을 강화합니다. 그럼으로써 내담자는 과거의 경험을 오감으로 '재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과거의 경험을 다시 '체험'하고 있는 상황에서 감정을 분리시키는 전략을 사용합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실시간으로 내담자가 실제로 느끼는 고통의 지수를 측정하며 진행합니다. 그리고 그 고통의 지수가 '0'이 될 때까지 감정을 분리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내담자가 실제로 느끼는 고통지수가 '0'이 되는 순간,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기존의 고통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가 더 이상 사용되지 않게 되는 것이죠. 왜냐하면 그 목적지인 고통스러운 감정이 더 이상 중요한 감정이 아니게 되어버렸으니까요. 더 이상 해당 목적지로 갈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아기 편도체가 생각했을 때, 여기에 중요한 게 있다고 오해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중요한 게 없다는 것을 '체험' 수준에서 알게 되었으니까요. 이제 와서 그 길을 이용할 필요가 없어진 거죠. 그리고 이 과정에서 좀 더 내담자가 삶을 살아가는 데 적절한 감정(목적지)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길들이 형성이 됩니다. 기존의 도로에 이어지는 목적지가 사라지고, 자신에게 좀 더 도움이 되는 목적지로 이어지는 도로들이 마구 생겨나는 것이죠. 그럼 당연히 우리의 뇌는 어떤 길을 택하게 될까요? 후자를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새로운 도로를 내는데, 전문가(최면상담가)의 실시간 피드백을 받으면서 포크레인 12대로 도로를 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짧은 시간 안에 효과적인 결과가 도출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기존의 도로는 목적지가 중요해지지 않아 방치된 것이지 길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마음이 힘들거나 하는 순간에는 다시 활성화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가 새롭게 사용하게 된 긍정적인 목적지로 가는 도로가 사라졌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렇게 기존의 고통을 일으키는 도로가 활성화되었을 때, 다시 한번 그 도로로 가도 실제로 위험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학습함으로써 이제는 1순위가 된 긍정적인 목적지로 이어지는 도로의 연결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최면상담에서는 이러한 작업을 그 내담자와 세션을 하는 도중 나타난 자원들을 가지고 해당 내담자에게 적합하게 커스텀 된 자기 최면도구를 통해 할 수 있게 만듭니다. 그럼으로써 내담자는 최면상담이 끝난 이후에도 자기 스스로 자신만의 자기 최면 도구를 이용하여 스스로 자신을 더욱 치유(회복)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최면 상담가마다 최면해 대해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고 접근방식이 다를 것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최면상담이 이런 원리를 통해 진행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방식을 통해 내담자 분들이 트라우마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이것이 최면 상담으로 내담자를 치유할 수 있는 뇌과학적인 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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