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계발인가 자기학대인가
개선은 자신을 더 나아지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가 더 나은 자신의 모습을 꿈꾼다. 지금보다 더 예뻐지고 싶고, 더 멋있어지고 싶다. 더 사랑받고 싶고 더 자유로워지고 싶다. 그래서 노력한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그런데 여기서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반드시 발생하는 함정이 있다.
1. 자기 학대
개선은 고통을 동반한다. 왜냐하면 노력이라는 것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버틸 수 있다. 그 고통이 나를 좀 더 나은 모습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 그러나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바로 '만족하지 못함'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위의 방식 즉,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방식은 사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전제한다.
"나는 있는 그대로는 괜찮지 않다." 즉, 더 나은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노력해한다는 것은, 현재의 자신은 미래의 자신(개선된 자신)에 비해 부족하고 결핍된 존재라는 인식이 전제된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설정해 놓은(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자신(현재)은 끊임없이 부족한 것으로, 개선되어야 한 것으로 인식된다.
그럼으로써 그 사람의 현재는 늘 뭔가 부족한듯한, 결핍된듯한, 고통스럽게 견뎌내야만 하는, 그런 시간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이 전제가 되어있기 때문에 막상 목표를 이루어도 그 순간에는 기분이 좋을지 몰라도 만족을 못한다. 왜냐하면 달성된 목표라는 것이, 스스로가 스스로를 결핍되어 있는 불완전한 존재라고 전제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즉, 자신을 결핍이 있는 개선되어야 하는 존재로 규정해 놓은 뒤, 그러한 자기 자신의 현재를 회피하고 부정하기 위해 만들어낸 결과값이라는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스스로의 인식이 이러한데, 과연 어떠한 목표를 달성한다한들 그 결핍감과 공허감이 채워질까?
절대로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의 과정에 의해 발생하는 자기 계발은, 사실은 자기 계발이 아니다.
스스로 현재의 자신을 쓸모없는 것으로 규정하는 자기 처벌과 무언가를 이루어도 만족할 수 없는 공허감이라는 자기 처벌이 동시에 일어나는 '자기 학대'에 가까운 것이다.
그래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도, '억지로 애쓰며 견뎌내야 하는 괴로운 시간'이 된다. 목표를 이루고 나서도 또다시 스스로가 스스로를 부족한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결핍감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결핍을 채워줄 또 다른 목표를 찾아 헤매게 된다. 그리고 이 지옥과도 같은 학대의 순환이 반복된다.
2. 자기실현
그러나 사실 '개선'이란 자기 자신을 더 나아지게 하는 것이 아니다.
선이란 '좋음'이라는 뜻이다. 그렇기에 개선은 자기 자신을 점점 더 좋아하게 되는 것이지, 부족하다고 미워하며 학대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현재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 즉, 내가 현재 느끼고 있는 생각, 감정, 느낌등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는 것이다. 더 이상 못난 것, 틀린 것으로 규정하면서 괴롭히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자신에게 그 생각과 감정과 느낌을 발생시키는 자신의 '욕구'를 발견할 수 있다. 실현되고자 하나 스스로에 의해 억압되고 부정된 결과 드러나지 못하게 된 그 욕구가, 그 욕구를 억압함으로써 발생하게 된 생각, 감정, 느낌을 부정하지 않고 '존재하도록 허용함으로써' 드러나는 것이다.
그 순간, 이 사람은 '현재'에 존재할 수 있게 된다. 미래라는, 자신이 스스로 결핍되었다고 규정해 놓은, 현재를 회피하기 위해 만들어낸 망상이 아니라,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자신의 '현재'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 현재는, '현재의 나'는, 부족하거나 결핍된 존재가 아니라, 그저 무언가를 '열망'하고 있는 생생한 에너지를 지닌 존재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욕구가 확인되면 인간은 그 자신의 진정한 욕구를 실현하기 위한 방향으로 행동하게 된다.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검토하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을 분별할 수 있게 되며, 욕구를 지닌 채, 욕구가 드러나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작은 한걸음을 내딛을 수 있게 된다.
그 순간, 그 개인의 현재는, 자신이 스스로를 부족한 존재로 규정함으로써 억지로 버텨내야만 한다고 느껴지는 괴로운 시간이 아니라, 내 열망(욕구)이 실시간으로 실현되어 가는 자기실현의 순간이 된다.
결국, 둘 다 개선을 말하지만, 한 명은 스스로가 스스로를 착취하는 지옥 속에서 끊임없이 고통받으며 살게 될 것이고, 한 명은 스스로가 스스로의 욕구를 존중하며 자신의 열망(욕구)을 실현해 나가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나는 지옥에서 살기보다는, 살아있음 속에서 살기를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