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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인 Jan 15. 2021

현대인은 왜 선조들보다 오래 살까?

위생 개혁부터 프레스턴 커브까지



오늘날 인류는 평균 72.6세의 기대수명을 누리지만, 이렇게 긴 수명을 누리게 된 것은 인류가 존속해온 오랜 역사에 비추어 보면, 극히 최근의 일에 불과합니다. 인류가 출현한 이래 대부분의 기간 동안 그 평균 수명은 30세를 채 넘기지 못했거든요. 평균 수명이 30세라고 하니, 인류의 선조들이 대부분 30살 즈음에 늙어 죽은 것인가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전근대 시기의 낮은 기대수명은, 무엇보다도 높은 영유아사망률로 인해 특히 5세 이전 어린 나이에 사망하는 개체들이 전체 평균 수명을 깎아버린 탓이 제일 큽니다. 발전 수준이 낮은 원시 수렵채집민 사회에 대한 인류학 연구에 따르면, 사망률이 높은 영유아기를 무사히 살아남아 성인이 된 이들은, 출생 시 기대수명이 낮은 원시 사회에서도 68-78세까지 수명을 누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Gurven & Kaplan, 2007). 달리 말하면, 현대 문명의 개화 이전 인류에게는 성년까지 생존하는 것이 장수로 가는 길의 중요한 관문이었던 셈입니다.



인류가 이런 역사적 한계를 넘겨 40세 이상의 수명을 평균적으로 누리게 된 것은 불과 일백년도 채 되지 않은 최근의 일입니다. 1900년 이래 급격히 증가한 인류의 수명은 1970년대 후반에 비로소 60세를 넘기고, 2019년 현재 72.6세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류 문명이 현대로 진입하기 직전, 출생 시 평균 기대수명이 30세에 채 미치지 못했던 것에 비해, 오늘날 인류는 두 배 이상의 수명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류는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장수를 누릴 수 있게 되었을까요? 



가장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대답 중 하나는, 현대 의학의 비약적인 발전일 겁니다. 과거에 비해 눈부시게 발달한 의학과 의료 기술이 인류의 수명을 두 배 이상 늘려준 것이 아닐까요? 이런 설명에 이의를 제기한 학자가 바로 토마스 매큐언(McKweon & Record, 1962; Mckeown, 1988)입니다. 매큐언은 질병의 근본 원인을 사회경제적 요인에서 찾는 사회역학의 선구자인데, 그에 따르면 인류를 괴롭힌 주요한 전염성 질병의 사망률은, 이들 질병에 대한 유의미한 의학적 대응이 이뤄지기 이전부터 이미 감소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매큐언에 따르면 1851년에서 1900년 사이 잉글랜드-웨일스의 사망률 감소에서 거의 절반 정도의 비중을 차지했던 질병인 결핵에 대한 의학적 치료는 20세기 초까지도 효과적이지 않았습니다. 1947년에야 비로소 스트렙토마이신이 사용되면서 결핵에 대한 의미있는 의학적 치료가 가능해졌는데, 영국에서는 결핵으로 인한 사망률이 그 전 19세기부터 이미 지속적으로 감소 추세에 있었던 겁니다. 특히 산업화가 수반한 도시화와 인구 과밀화로 인해, 공기를 매개로 한 전염성 질병에 취약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었음에도 사망률이 감소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매큐언은 지적합니다. 당시 영국의 산업도시들은, 즐비한 공장들이 내뿜는 매연으로 인해 대기의 급격한 오염을 겪고 있었고, 인구가 밀집한 폐쇄된 환경에서의 공장 노동 역시, 공기를 통해 전염병의 확산이 이뤄지기 매우 쉬운 환경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급격히 늘어난 인구가 매일 생산해내는 생활 폐기물과 분뇨 따위로 오염된 물도 전염병 확산에 치명적인 조건이었지요.



환경이 이렇게 오염된 조건에서, 깨끗한 물의 공급이나 하수 처리 등 위생의 개선이 이뤄졌다면, 사람들의 질병 역시 크게 감소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위생 개혁은 콜레라와 장티푸스 등 수인성 질병의 감소는 설명하지만, 공기를 매개로 한 감염병인 결핵과는 큰 관련이 없다는 것이 매큐언의 생각이었습니다(Mckeown & Record, 1962). 매큐언은 19세기 후반 영국에서 이뤄진 결핵 사망률 감소를 설명하는 가장 결정적인 원인으로 산업혁명이 가능케 한 급속한 생활 수준의 개선을 지목했습니다. 의학적 치료도, 질병 노출 환경의 감소도, 혹은 그보다도 가능성이 낮은 인체의 유전적 변화로 인한 저항력의 변화도 사망률의 감소를 설명할 수 없다면, 영양 수준의 개선이 가장 유력한 변수라는 것이지요. 즉, 물질적으로 부유한 생활수준을 누리게 되어 더 많은 영양 섭취를 통해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키웠기 때문에 사망률이 감소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결핵 감소는 19세기 후반 영국의 사망률 감소의 약 절반을 차지하므로, 매큐언에 따르면 생활수준의 개선이 대략 사망률 감소의 절반 이상을 설명하는 가장 결정적인 변수입니다. 즉, 산업혁명이 야기한 경제 성장으로 인해 보다 부유해진 인류가 더 나은 영양 상태를 누리게 됨으로써 더 긴 수명 역시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경제학자 Robert Fogel 역시 이런 설명에 지지를 보탭니다. 신장, 체중 등 인체의 영양 상태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지표들이 사망률을 잘 예측한다는 것이지요(Fogel, 1997; Fogel, 2004). 신장과 체질량 지수 등 영양 상태의 지표들은 18세기 마지막 사반세기에서 19세기의 세번째 사반세기 사이 영국과 프랑스의 사망률 감소는 약 90%를, 그 이후 100년 사이의 사망률 감소는 약 절반 정도를 설명한다고 합니다.



환경 오염을 겪는 산업혁명기 영국의 산업도시



현대 의학의 힘이 인류의 수명 증가에 기여한 바가 적다는 매큐언의 주장은 의외의 주장이지만, 경제 성장과 영양 상태를 유력한 원인으로 지목하는 데에서는 역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하지만, 이런 견해에 대해서도 이의가 제기되었습니다. 인구학과 사회경제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 Simon Szreter는 매큐언의 통계 해석에 오류가 있다고 지적합니다(Szreter, 1988). 매큐언은 결핵의 사망률이 1847-50년부터 이미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것처럼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1850년대 초반 다시 증가했고, 이후 1866-7년에 이르기까지 사망률이 그 밑으로 감소하는 뚜렷한 추세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스레터는 지적합니다. 매큐언이 지목한 1847-50년의 사망률 감소는 단기적 변동일 뿐, 장기적 추세의 터닝 포인트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따라서, 매큐언의 주장처럼 결핵의 감소가 전체 전염성 질병의 사망률 감소를 견인했다고 믿을만한 증거는 사실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또한, 매큐언에 따르면 영양 상태와 관련이 있을 공기 매개 질병인 기관지염, 폐렴, 인플루엔자로 인한 사망률은 오히려 증가한 현상을 고려하면, 장티푸스와 콜레라 등 공중 위생과 관련된 질병이 19세기 후반 사망률 감소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됩니다. 매큐언에 의하면, 공기 매개 전염병인 결핵이 사망률 감소의 가장 큰 원인이며, 결핵 사망률 감소의 이유는 영양 섭취의 개선이었습니다. 결핵은 환자의 다른 질병에 대한 저항력 역시 감소시키므로, 결핵의 감소가 다른 질병에 선행했다면, 결핵의 감소는 결핵뿐 아니라 다른 질병 역시 감소시키는 데 기여했을 겁니다. 따라서 매큐언의 논리를 따르면, 영양 섭취의 증가가 수명 증가의 가장 지배적인 원인이 되는 셈입니다. 하지만, 스레터의 해석에서는 그 반대가 되었습니다. 공중 위생 관련 질병의 감소에 의해 결핵을 포함한 공기 매개 질병으로 인한 사망도 덩달아 감소했다고 보는 것이 그 반대보다 더 그럴듯한 설명이 된 것이지요. 즉, 스레터에 따르면, 19세기의 마지막 30년 사이에 진전된 위생개혁이 영국의 사망률 감소를 견인한 주요한 동인이었던 셈입니다. 이런 스레터의 설명은 사망률 감소에서 공중위생학의 역할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질병에 대한 약학적 치료만으로 국한해 그 의미를 평가절하하는 매큐언의 설명에 비해, 수명 증가와 관련한 의학의 역할도 보다 공정히 평가해주는 것 같습니다.



경제 성장으로 인한 영양 섭취의 증가가 수명 증가의 결정적 원인이라는 매큐언의 주장에는 또 다른 반대의 증거들이 있습니다(Szreter, 1988). 예를 들어, 농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 비해 높은 소득 수준과 영양 접근성에도 불구하고 1890년대 직물 공장 노동자들의 호흡기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약 2.5배 높았던 현상은, 공기 매개 질병은 곧 영양 섭취와 관련있다는 매큐언의 도식으로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18세기에 증가 추세에 있던 영국인의 수명은 1820년대에서 1870년에 걸쳐 증가를 멈춘 채 정체하게 되는데, 이 시기는 오히려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시기와 일치하지요. 경제 성장이 곧 영양 상태의 개선을 통해 수명의 증가로 이어진다는 단순한 경제 결정론으로는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입니다.



실제로, 전근대 유럽에서 사망률은 증가와 감소의 시기가 연속적으로 반복되는 변동을 겪는데, 영국이 산업혁명기에 경험한 기대수명의 증가는 이러한 변동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준이었습니다. '이스털린의 역설'로 유명한 경제학자 이스털린이 지적한 것처럼, 산업혁명기에 걸쳐 이뤄진 영국의 수명 증가는 기껏해야 17세기 이후 감소했던 기대수명을 1600년 즈음을 조금 상회하는 수준으로 돌려놓은 정도에 불과했습니다(Easterlin, 1999). 이스털린에 따르면, 영국의 경우 산업혁명으로 근대적 경제성장이 시작된 시점에 비해 100년 가까이 늦은 1870년대에야 비로소 그 이전의 추세와 질적으로 다른 사망률의 감소가 시작됩니다. 그 반환점인 1871년을 기점으로 영국이 그 이후 반세기 동안 경험한 수명 증가는 그 이전 반세기의 4배 수준이었습니다. 선발산업국인 영국과 프랑스뿐만 아니라, 후발산업국인 스웨덴과 일본, 혹은 개발도상국인 브라질과 인도에서도 역시, 그 이전 반세기보다 그 이후 반세기의 수명 증가가 작게는 3배에서 크게는 6배 높은 수명 증가의 역사적 분기점은, 근대적 경제 성장의 기점과는 달랐습니다. 이스털린은 이들 선발산업국과 후발산업국 및 개발도상국들에 걸친 근대적 경제 성장의 확산은 170년에 걸쳐 이뤄진 데에 비해, 수명 증가의 역사적 분기점은 단 70년 정도의 간격을 두고 발생했다고 지적합니다. 즉, 인류의 수명을 급속히 증가시킨 분기점을 산업혁명이 야기한 경제 성장에서 찾는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입니다.



Szreter (1997)는 오히려 산업혁명기의 경제 성장이 기대수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합니다. 산업화와 도시 인구의 과밀로 인한 질병 환경의 조성 때문에 산업혁명기 가장 급속한 경제성장을 겪던 산업 도시 지역은 오히려 기대수명이 전국 평균에 비해 낮았으며, 19세기의 두번째 사반세기 동안에는 이들 지역 상당수가 기대수명의 감소를 경험했던 것입니다. 산업화를 수반한 급격한 경제 성장은 정치적으로도 수명 증가를 위한 개혁이 이뤄지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하였습니다. 산업화로 인해 종래의 사회 구조가 해체되는 동시에 새로운 계급적 이해관계가 형성되며 정치적 분열이 확산된 것입니다. 신진 자본가와 그들에 의해 고용된 임금노동자, 장인 계층부터 봉건적 사회구조의 잔재인 지주 귀족들까지, 여러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며 산업화로 인해 당면한 인구학적 문제에 대한 정치적 대응은 점점 더 어려운 문제가 되었습니다. 도시 환경을 개선하려는 정치적 시도들은 공장이나 작업장 등을 소유한 자산가, 지주 등의 이익과 때로 충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Szreter 1988). 특히, Szreter (1997)는 산업 혁명으로 인해 성장한 도시 쁘띠 부르주아 자산계급의 반대가 위생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수도 인프라의 건설과 하수 처리 시스템의 완비 등 위생 개혁의 구체적인 과제를 위해서는 정부의 경제적 역할의 증대가 필요했고, 또한 그 재원의 조달은 결국 자산계급의 주머니를 통해야 하는데, 이는 결국 방임주의와 작은 정부를 지지하는 자본가들의 이익과는 충돌하는 것이었고, 나아가 당시 산업자본주의의 근간을 이루던 자유지상주의적 원리를 얼마간 유보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위생 개혁은 결코 정치적으로 쉬운 과제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난제의 해결에 물꼬를 튼 것은 노동자 계급의 요구에 부응해 이뤄진 선거법 개정이었습니다. 새로이 유권자가 된 노동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한 정치적 경쟁을 통해 지방 단위의 위생 개혁이 점차 영국 전역으로 확산된 것입니다. 물론 그 과정이 마냥 순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지방자치시 단위의 위생개혁의 선두에 있었던 버밍햄 지역의 ‘도시 사회주의’는 공공연히 “공산주의”라는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실제로 버밍햄의 시장을 지낸 체임벌린의 ‘도시 사회주의’ 모델은 이후 영국 사회주의 전통의 주축인 페이비언 운동의 주요한 아젠다로 자리잡습니다; 김명환, 2012). 즉, 영국의 수명 증가는 경제 성장의 부산물로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어려운 조건 위에서 이뤄진 정치의 결과였습니다.



노동자 계급의 선거권을 요구한 차티스트 운동



이런 맥락을 염두에 둔 채, 신장과 체중 등 신체의 영양 지표와 사망률 사이의 관계에 대한 Fogel의 연구를 상기해보면, 그 의미를 다시 해석해볼 수 있습니다. 인류는 위생개혁으로 말미암아 개선된 환경을 누리며 비로소, 인체가 섭취한 영양의 손실을 막고 더 나은 영양 상태를 확보함으로써, 더 긴 수명까지도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영양 지표가 사망률 및 수명과 직접 연결된다는 Fogel의 발견은 분명 의미가 있지만, 영양 지표의 개선은 사실 경제 성장을 통한 영양 섭취의 증가만을 통해서 이뤄진 것이 아니고, 영양의 손실을 야기하는 질병 환경의 제거를 통해서 이뤄질 수도 있었던 것이지요(Deaton, 2006; Easterlin, 1999; Easterlin, 2000). 상기한 다수의 문헌들을 검토한 2006년의 리뷰 논문에서 Cutler, Deaton & Lleras-Muney (2006)는 후자의 요인, 즉 “공중 위생의 개선”이, “1870년 이후 사망률의 감소에 대해 더 일관된 설명을 제공”한다고 평가합니다(p.101). 실제로, Chapman (2019)에 따르면, 도구변수(독립변수에만 영향을 미치고 종속변수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변수)로 추정한 공중 위생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1860-1900년 사이 영국 도시의 사망률 감소를 45-60% 정도 설명하며, Szreter (1988)의 주장처럼, 수인성 질병의 사망률 뿐 아니라 공기 매개 질병의 사망률 감소 역시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설명합니다. 그에 비해, 세원(tax base)으로 대리한 지역별 부(wealth)의 수준은 사망률과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관계가 없거나, 혹은 도구변수를 사용한 모델에서는 사망률과 정(+)의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산업혁명기에 경제 성장은 사망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위생 개혁이 사망률 감소의 주요한 동인이라는 스레터의 주장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통계적 증거인 셈입니다.  






이상에서는 인류 문명이 근대로 막 진입한 여명기에 초점을 맞추어보았다면, 이젠 20세기에 이뤄진 수명 증가에 대해 살펴봅시다. 이 시기 인류의 수명에 대한 연구들을 톺아볼 때 ‘프레스턴 커브’를 언급하지 않기는 어렵습니다. Preston (1975)은 20세기 기대수명 증가의 동인을 한 국가의 경제 성장과 그 밖의 외생적 요인으로 분해하는 간단한 모델을 통해, 1930년대에서 1960년대 사이의 세계적 기대수명 증가의 84% 가량이 국민소득 증가가 아닌 다른 동인으로 인한 것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어떻게 프레스턴이 그런 결론을 내리게 되었는지, 그 논리를 따라가보도록 하겠습니다.



프레스턴1930년대와 1960년대 사이에 국가별 1인당 국민소득과 평균 기대수명의 관계를 나타내는 회귀선(독립변수와 종속변수 사이의 함수적 관계를 나타내는 선)이 위로 이동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즉, 이는 같은 소득 수준에서 누리는 기대수명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증가했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국가별 국민소득과 기대수명의 관계를 나타내는 그래프를 프레스턴의 이름을 따 '프레스턴 커브'라고 하는데, 그가 1975년 논문에서 처음으로 프레스턴 커브를 그릴 당시에는 1900년대의 1인당 국민소득과 기대수명에 대한 자료를 모두 갖춘 나라가 10개 정도일 뿐으로, 표본크기가 너무 작아 통계적 분석이 불가능했지만, 학자들의 연구가 누적되어 보다 풍부한 데이터들에 접근이 가능해진 지금 시점에서는 1900년대에 대해서도 프레스턴이 한 것과 똑같은 분석을 해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광범위한 주제에 대한 역사 통계를 잘 정리해놓아 데이터 접근성이 높은 “Our World in Data”의 기대수명 자료(https://ourworldindata.org/life-expectancy#rising-life-expectancy-around-the-world)를 내려받아 분석에 사용해보겠습니다. GDP와 인구에 대한 데이터는 경제사학자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역사 통계인 Maddison 데이터(https://www.rug.nl/ggdc/historicaldevelopment/maddison/releases/maddison-project-database-2020)로부터 얻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가장 최근 업데이트된 Maddison Project Database의 2020년 자료와 Our World in Data가 정리한 기대수명 자료를 바탕으로 1900년 즈음의 시점부터 2018년까지 약 30년 단위로 그린 프레스턴 커브를 한 평면에 나타낸 것이 아래의 ‘그림1’입니다(자료가 비교적 부족한 1900년과 1930년의 데이터셋은 각각 1900년, 1930년을 기준으로 +-5년 이내의 값 중 기준 연도에 가장 가까운 연도의 자료를 사용해 구성했습니다). x축은 1인당 GDP를, y축은 평균 기대수명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린 프레스턴 커브를 통해 각각의 주어진 한 시점에는 GDP와 기대수명 사이에 정(+)의 관계가 성립하며, 또한 커브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속 위로 이동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림1. 1900년부터 2018년까지의 프레스턴 커브. x축은 1인당 gdp를, y축은 기대수명을 나타낸다.



그럼 프레스턴은 어떻게 수명의 증가에서 경제 성장만으로 인한 증가를 따로 떼어 볼 수 있었을까요? 그림2는 프레스턴이 수명 증가를 경제 성장으로 인한 증가분과 그 나머지로 분해하는 논리를 도식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만약 1930년에서 1960년에 이르기까지 30년 동안, 1인당 GDP가 $2,500에서 $7,500로 증가한 지역이 있다면, 아래 좌표평면에서 이 지역의 위치는 점A에서 점B로 이동했을 겁니다. 동시에 점A와 점B 사이의 낙차인 a'+b'만큼 기대수명이 증가했겠지요. 그런데, 그래프의 이동이 없었더라도, 1인당 GDP가 2,500달러에서 7,500달러로 증가하면, 1930년대의 GDP와 수명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빨간 회귀선 상의 이동으로 인해 a'만큼의 수명이 증가했을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즉, a'는 그래프를 이동시키는 다른 어떤 요인의 변화가 없을 때의 경제 성장만으로 인한 수명 증가분입니다. 반면, 나머지 b'은 경제 성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래프 자체의 이동으로 인한 증가입니다. 즉, 똑같은 1인당 GDP 수준에서 각각 1930년대와 1960년대에 누릴 수명의 차이에 해당하는 증가분입니다.


 

그림2. 그래프 상의 이동(a')과 그래프의 이동(b') 분해하기



물론 아래 그림3과 같이 분해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만약 193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 GDP는 점A에서 조금도 증가하지 않았더라도, 그래프의 이동으로 인해 b''만큼의 기대수명 증가를 경험했을 겁니다. 그 나머지 a''a'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한 그래프 상에서 x의 변화로 인한 y의 증가분이라는 점에서, 경제 성장에 기인한 수명 증가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각 지점마다 그래프의 기울기가 다소 달리 나타나기 때문에, 이렇게 계산한 a'a'', b'b''는 각각 다소간의 차이를 보이는데, 이를 평균하여, 기대수명의 증가를 경제 성장로 인한 증가 (a'+a'')/2와 그 나머지 외생적 요인으로 인한 증가 (b'+b'')/2로 대략 분해해볼 수 있겠습니다. 프레스턴이 각 지역별로 이런 계산을 수행한 후, 인구수로 가중치를 주어 합한 결과, (2.5+1.3)/2=1.9년 만큼이 국민 소득의 성장으로 인한 증가분이었고, (10.9+9.7)/2=10.3년 만큼이 그 나머지로 인한 증가분이었습니다. 즉 12.2년 중 84% 가까이가 경제 성장으로 인한 증가분이 아닌 그 나머지 잔차에 해당했습니다.


 

그림3. 그래프 상의 이동(a'')과 그래프의 이동(b'') 분해하기



‘그림1’에서 새로 그린 프레스턴 커브에서 Preston (1975)의 방법대로 1900년 즈음부터 1960년까지의 기대수명 증가 중 GDP의 증가와 그 외적 동인으로 인한 증가분을 각각 분해해보면 68.7% 정도(14년)가 GDP가 아닌 외생적 변수로 인한 증가였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GDP 증가로 인한 수명 증가는 전체의 1/3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던 셈이지요. 하지만 1960년 이후부터는 기대수명의 증가 요인에서 GDP 증가가 차지하는 비율이 점점 늘어납니다. 1960년부터 1990년까지는 11.9년 중 6.6년(55.5%), 1990년부터 2018년까지는 8.3년 중 5.1년(61.1%)이 GDP의 증가로 인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1960년 이래 저개발 국가들에서 1인당 국민소득과 문해율, 영양 상태 등 지표들이 그 전에 비해 사망률 감소의 주된 요인이 된 것을 발견한 프레스턴의 후속 연구(Preston, 1980; Preston, 1985)와 일관된 결과입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인류가 1900년대 이래 경험한 기대수명의 증가에서 그래프 자체의 이동으로 인한 증가가 그래프 상의 이동으로 인한 증가보다 다소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새로 그린 프레스턴 커브에 따르면, 2018년의 세계 GDP가 1900년 시점의 GDP에 비해 전혀 증가하지 않았더라도, 인류는 그래프 자체의 이동으로 인해 약 30세만큼 수명이 더 증가해 62.7세의 수명을 누렸을 겁니다. 그에 비해 그래프가 이동하지 않은 채 GDP만 성장했다면 오늘날 인류의 수명은 56.7세에 불과했을 겁니다.






프레스턴이 수명과 국민소득의 관계에 관해 남긴 주요한 발견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첫째, 주어진 한 시점에서는 더 부유한 나라가 더 오래 사는 횡단면적 상관관계가 나타납니다. 둘째,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는 경제 성장이 아닌 외생적 요인이 국가의 평균 기대수명을 증가시키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전자의 발견에 초점을 맞춘 연구자들은 경제 성장이 수명 증가로 이어지는 인과관계를 강조합니다. 대표적으로, Pritchett와 Summers (1996)는 1960년부터 1985년에 걸친 데이터셋에서, 도구변수(독립변수에만 영향을 미치고 종속변수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변수)를 통해 추정한 GDP가 영아사망률과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을 통해, 경제 성장의 긍정적 효과를 역설해보입니다.



하지만, Cutler 등(2006)은 1960년에서 2000년 사이 10년, 20년, 40년 간격의 경제 성장과 기대 수명의 변화 사이에는 거의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지적합니다. 많은 나라들이 경제 성장이 없이도 주목할 만한 수명 증가를 이뤘거나, 혹은  반대로 높은 경제 성장을 기록하면서도 수명은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후자의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중국입니다. Drèze와 Sen(2002, chapter4)은 1960년에서 1981년까지 중국의 기대수명은 10년 당 9.8년 수준의 속도로 증가했지만, 개혁개방 이후 고도의 경제성장을 기록하고 있었던 1981년에서 91년까지는 1.8년, 1991년에서 99년까지는 0.8년으로 오히려 그 속도가 떨어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1981년, 1991년 시점의 기대수명이 중국과 비슷하거나 혹은 오히려 그보다 높았던 인도의 케랄라 주나 남한, 스리랑카에 비해서도 낮은 수준이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인도에서도 고속성장을 겪은 1990년대에 오히려 영아사망률의 감소율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Pritchett, Summers(1996)와는 반대로 기대수명을 증가시키는 외생적 요인에 주목한 학자들은, 낮은 경제 발전 수준에서도, 경제 성장을 우선에 둔 정책이 아닌 다른 경로를 통해 높은 수준의 건강을 성취할 수 있음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그럼 그래프 자체의 이동을 견인하는 다른 변수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요? 우선, 프레스턴의 방법론에도 한계가 있다는 걸 밝혀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프의 이동에 대한 하나의 가능한 이론적 설명은, 한 나라의 경제 성장이 그 자신뿐만이 아닌 다른 나라들의 기대수명 역시 높여주었을 가능성입니다. 예를 들어, 경제 성장을 먼저 이루어 부유해진 국가의 원조가 저개발 국가들의 수명을 늘리는 데에 크게 기여했을 수 있습니다. 프레스턴의 방법론에서 이런 기여는 외생적 변수에 의한 수명 증가로 나타날 겁니다. 프레스턴의 분석은 각 국가별 경제 성장이 그 해당 국가의 기대수명을 늘려주는 효과만을 캐치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지요. 즉 경제성장이 수명의 증가에 미치는 효과를 과소평가할 수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Easterlin(2004, chapter 6)은 의료 기술의 발전은 근대적 경제 성장에 필요한 만큼의 자본 지출을 필요로 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Preston(1980)이 이미 1970년대 저개발 국가가 공여받은 의료 관련 대외원조는 총 의료보건 관련 지출의 3%가 채 되지 않았음을 밝혀놓았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오히려, 이스털린에 따르면 프레스턴의 방법론은 경제 성장의 효과를 과대 평가할 수 있습니다. 앞선 19세기 영국의 위생개혁 등으로 이뤄진 의료 기술의 진보가 도시와 농촌 간의 사망률 격차를 줄여, 급속한 경제 성장이 수명에 미친 부정적 영향을 감소시킴으로써 소득과 수명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회귀선의 기울기를 증가시켰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Caldwell(1986)은 스리랑카, 코스타리카, 인도의 케랄라 주 등 1인당 GDP가 낮은 나라들(혹은 지역)이, 그 경제 수준만으로 예측한 것보다 높은 기대수명을 누리는 까닭 중 하나로 ‘교육’의 역할을 지목합니다. 특히, 여성들의 교육 수준이 기대수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는데요, 이는 사망률이 가장 높은 연령대인 영유아기에 아동의 보육을 주로 책임지는 역할을 여성이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양육자의 보건 위생 지식이 영유아의 사망률에 영향을 미쳐 기대수명의 변화로 이어지는 거죠. Caldwell은 제 3세계 국가 99개국에서 1960년 여성의 초등 취학률이 1982년 1인당 기대수명과 가장 높은 상관관계(r=.8744; 상관계수 r은 -1<r<1의 범위를 가지고 절댓값이 1에 가까울수록 상관관계가 큽니다)가 있다는 걸 확인합니다. 그에 비해 1982년도의 1인당 GDP는, 1960년 남성 초등 취학률(r=.8409), 1980년 인구당 의사 비율(r=.6733), 1981년 1인당 칼로리(r=.6511) 등에 비해 낮은 수준의 상관관계(r=.3862)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인구통계학자 Wolfgang Lutz는 그래프의 이동을 견인하는 유력한 원인으로 '교육'을 가리킵니다(Lutz & Kebede, 2018). 프레스턴 커브의 x축을 1인당 GDP가 아닌 1인당 교육년수로 바꾸어 그래프를 다시 그리면, 1인당 GDP를 독립변수로 했을 때와는 달리, 그래프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동하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Caldwell(1986)이 기대수명의 증가에서 교육의 역할을 강조한 것과 일맥상통하지요. 더 나아가, 그는 국민의 교육 수준이 경제 성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기대수명과 관련된 건강 수준을 개선할 뿐 아니라, 소득 수준이 역으로 교육 수준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1인당 GDP와 기대수명 사이의 인과관계가 이런 복잡한 상관관계에 의해 과대 평가될 수 있음을 상기시켜줍니다. 예를 들어, 교육 수준이 GDP뿐만 아니라 기대수명 역시 높여준다면, 만약 GDP가 수명을 높이는 관계가 실제로는 없거나 약하더라도, GDP와 수명 사이에 상관관계가 나타날 수 있겠지요. Lutz와 Kebede가 1970년부터 2015년까지 약 반세기 동안의 국가별 1인당 GDP와 평균 교육년수, 기대수명에 대한 패널 자료를 분석한 결과, 1인당 교육년수와, 국가와 연도에 따른 고정 효과(fixed effect;조사 단위가 가지고 있는 고정적인 특성)를 모형에 포함한 회귀분석에서는, 평균 교육년수의 1표준편차 만큼의 변화는 수명을 0.395 표준편차 만큼 증가시켰지만, 1인당 GDP는 같은 변화가 0.106 표준편차 만큼의 수명을 증가시켰을 뿐이며, 이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은 수준이었습니다.



Drèze와 Sen(1991, chapter 11)은 중국과 인도의 기대수명의 추이를 비교하며, 한 국가의 평균 기대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정책적 요인들을 지목합니다. 중국 인도는 1950년을 전후로 40세 안팎의 비슷한 기대수명을 가지고 있었던 동시에, 매우 높은 문맹률과 세계 최저 수준의 국민소득 등 굉장히 비슷한 조건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 후 크게 벌어진 두 나라의 수명 차이를 두고 매우 흥미로운 비교가 가능합니다. 개발 수준이 비슷했던 두 나라의 가장 큰 차이는, 이후 두 나라가 채택한 경제사회모델에 있습니다. Sen과 Drèze는 중국이 비슷한 출발선에서 시작해 인도를 크게 앞지른 요인으로 식량의 공적 조달, 공적 보건 의료, 교육을 지목합니다. 인도에 비해 식량, 의료, 교육 등의 공공성이 매우 높았던 겁니다. 앞서 Drèze와 Sen(2002)이 1980-90년대 중국의 기대수명 증가 속도가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지적했음을 보았죠. 1950년대 이후 중국의 수명이 급속히 증가한 원인을 사회서비스의 공공성에서 찾으면, 이런 공공성이 해체되기 시작하는 개혁개방 이후에, 높은 경제 성장율에도 불구하고 기대수명의 증가는 정체하게 되는 현상까지도 매우 잘 설명할 수 있게 됩니다. 인도 연방에 속하는 자치주인 케랄라의 사례는 사회서비스의 공공성이 수명 증가의 결정적인 원인이라는 논리에 증거를 보태줍니다.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인도의 주들 가운데 소득 수준이 가장 낮았던 케랄라 주는 1976-80년 이미 인도 전체의 평균 기대수명인 52세에 비해 훨씬 높은 수준인 66세의 수명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중국과도 비슷한 수준이었지요. 케랄라 주를 인도의 다른 자치주들과 구별지어주는 특징이 역시 사회서비스의 높은 공공성이었습니다. 주민들의 높은 공적 참여와, 세계 최초로 민주적 선거를 통해 공산당이 집권한 독특한 정치적 배경 속에서 형성된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회서비스의 공공성이 그 경제적 수준에 비해 높았던 중국의 기대수명을 설명해준다면, 권위주의적 정치 체제는 1958년에서 1961년 사이 중국이 겪은 대기근과 같은 현상을 잘 설명해줍니다. 인도에 비해 비판적인 자유 언론과 정치적 반대파의 역할을 기대할 수 없었던 중국의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대기근과 같은 재난에 대한 신속한 정책 대응을 가능케 하는 정보적 효율성을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자유 언론과 정치적 반대파가 존재했던 인도는, 평상시의 사망률은 중국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었어도, 1943년의 벵골 대기근 이후로는 중국의 1958-61년의 대기근에 비견할 만한 기근 사태는 겪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장기간에 걸쳐 만성적으로 나타나는 높은 영양실조와 평상시의 높은 사망률에 대해서는, 짧은 기간 안에 급격히 사망자가 늘어나는 "뉴스" 이벤트와는 달리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지요. 중국과 인도의 평상시 사망률 격차는, 인도의 인구 규모를 감안하면, 수천만명을 아사시켰다는 그 중국의 대기근이 인도에서 8년마다 벌어지는 것과 산술적으로는 동일한 규모였다고 합니다(Drèze & Sen, 1991).






이렇게, 산업혁명이 열어젖힌 근대의 여명기부터, 가장 최근 인도와 중국의 사례까지, 인류의 수명이 괄목할만큼 늘어난 지난 200여 년 사이의 역사를 훑어보며 현대인의 장수의 비밀을 알아보았습니다. 산업혁명기에는 깨끗한 물의 공급과 하수처리 시스템의 구비 등을 이룬 위생개혁이 공중위생을 개선함으로써 불결한 환경을 통한 전염병의 확산을 막아주었고, 20세기에는 개인위생에 대한 지식을 인구에 널리 보급하는 교육의 힘이 영유아사망률을 낮추고 수명을 증가시키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었지요. 또, 의료 서비스와 식량 등의 공적 조달이 저개발 국가가 높은 수명을 누릴 수 있는 비결이기도 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수명의 증가가 경제 성장의 부산물로서 그저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지요. 특히, 공중위생은 대표적으로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을 띠는 공공재로서, 시장이 효율적으로 공급하지 못하는 재화였습니다. 공중위생의 개선으로 수명이 늘어나는 현상을 경제결정론으로는 채 설명하지 못하는 하나의 이유입니다.



세계는 과거에 비해 더 부유해졌고, 인간은 늘어난 부(富)로 인해 더 나은 삶을 누리고 있노라 말하는 정치적 낙관주의가 가볍게 지나쳐버리고 마는 사실이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틀림없이 세계는 더 부유해졌고 인간의 삶은 더 나아졌지만, 늘어난 부가 더 긴 수명으로 연결되는 데에는 항상 정치적 의지에 바탕을 둔 개입이 있었다는 사실이지요. 산업혁명기의 급격한 경제 성장은 오히려 도시 노동자들의 사망률을 높였고,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성장을 단초로 가까스로 이루어진 위생개혁을 통해 비로소 수명이 급격히 증가하는 역사적 분기점을 만들 수 있었다는 스레터와 이스털린의 지적을 상기해봅시다. 교육과 의료의 공공서비스가 정부의 정치적 의지 없이 이뤄지지는 않는다는 간단한 사실도요. 이런 사실에 비춰보면, 지난 200년 간 인간은 부유해졌고 삶은 나아졌으니, 더 부유해지도록 놔두면 앞으로도 더 나은 삶은 그저 주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지나치리만큼 단순합니다.



저 유명한 문구를 빌려 말해보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네요.



“문제는 정치야, 바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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