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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인 Dec 30. 2020

돈은 행복을 살 수 없다? “이스털린의 역설”의 진실

“이스털린의 역설”의 진짜 의미

 


이런 질문을 한번쯤 접해보셨을 겁니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을까?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을까?” 물론,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조금씩 다를지는 모르겠지만, 압도적인 “Yes”가 예상되는 질문이네요. 그럼, 개인적 가치관이 아닌 객관적 사실은 어떠할까요? 물론, 행복을 정말 문자 그대로 “살” 수는 없으니, 사회과학적으로 검증이 가능한 형식으로 질문을 바꾸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래처럼요.



소득과 행복 사이에 정(+)의 상관관계가 있을까?



단적으로 말하자면, 답은 역시 “Yes”입니다. 대부분의 사회조사에서, 응답자의 소득과 행복 사이에는, 소득이 올라갈수록 행복도 높아지는 상관관계가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사회과학자들의 대답 역시, 일단은 “Yes”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혹시,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다는 근거로 종종 인용되는 “이스털린의 역설”을 떠올리신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돈이 많으면 더 행복해진다는 게 사실이라면, 그럼 ‘이스털린의 역설’은 사실이 아닌 걸까요? 그 전에, 이스털린의 역설이 무엇을 말하는지부터 확실히 짚어보아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검색엔진 네이버에 "이스털린의 역설"을 검색하면 가장 처음 볼 수 있는 정의는 이렇습니다. “리처드 이스털린이 1974년 주장한 개념”으로서,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 기본 욕구가 충족되면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는 이론”이라는군요. 같은 페이지에서는 동시에, “200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베시 스티븐슨 교수팀은 이스털린의 설문보다 더 광범위한 실증조사를 통해 이스털린의 주장이 잘못됐다고 반박”했다는 설명 역시 덧붙이고 있습니다.



캡쳐: https://m.terms.naver.com/entry.nhn?docId=2431783&cid=42107&categoryId=42107



유튜브는 어떨까요? EBSCulture의 유튜브 채널에서는 이스털린의 역설을 “소득이 일정 시점을 지나게 되면 행복도가 그와 비례하게 되지 않는 현상”이라고 아래처럼 소개하고 있네요(https://youtu.be/GxzF8iASY7E, 1분 25초부터). 역시, 이스털린의 역설에 대한 반박을 함께 소개하고 있는데(3분 14초부터), 위의 네이버 지식백과 페이지와는 달리 '베시 스티븐슨(Betsey Stevenson)' 교수가 아니라,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Angus Deaton)' 교수의 연구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국가의 소득이 증가할수록, 그 국민의 기대수명 역시 증가했다는 것이지요. 그를 직접적으로 뒷받침하는 예로, 중국과 인도에서 경제성장에 따라 영아 사망률이 감소했다는 사례를 들고 있습니다.



“소득이 일정 시점을 지나게 되면 행복도가 그와 비례하게 되지 않는 현상”, 출처: https://youtu.be/GxzF8iASY7E



반면 아래의 기사에서는, 베시 스티븐슨 교수의 이스털린에 대한 반박을 소개하고는, 오히려 이스털린의 역설을 지지하는 연구로 앵거스 디턴 교수가 대니얼 카네만 교수와 함께 발표한 논문을 소개합니다. “소득과 행복감이 연간 소득이 7만 5000달러(한화 8700만원)까지는 같은 방향이지만 더 이상은 유지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하네요.



링크 : http://m.viva100.com/view.php?key=20200414010005367



보다 최근에 올라온 아래 기사의 경제용어 설명에서도 같은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010년에는 ‘이스털린의 역설’을 뒷받침하는 연구가 등장했”는데, 그 연구에서 앵거스 디턴 교수가 “연봉이 7만5000달러(약 8100만원) 이상이라면 소득이 사람들을 항상 훨씬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겁니다.



링크: https://n.news.naver.com/article/050/0000056024



도대체 이 뒤죽박죽은 뭘까요?  



한 쪽에서는 앵거스 디턴 교수가 '이스털린의 역설'을 반박했다고 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디턴 교수의 연구가 오히려 이스털린의 역설을 지지한다고 하는군요. 대신, 이스털린의 역설이 대략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에서는 소득과 행복 사이의 상관관계가 나타나지 않는 현상'을 의미한다는 이해는 다들 비슷하게 공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정의는 여러분들이 온라인 공간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서 이스털린의 역설에 관해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내용일 겁니다. 하지만, 과연 이게 정확한 정보일까요? 도대체 '이스털린의 역설'의 진실은 무엇일까요?








진실을 찾아, 우선 이스털린의 1974년 논문을 직접 확인해볼까요? 아래에서 볼 수 있듯, 이스털린의 논문 가운데 가장 인용수가 높은 논문입니다.





이스털린이 해당 논문에서 소득과 행복 사이의 관계를 조사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그 관계를 세 가지 다른 방식으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국가별로 한 시점의 그 국민들의 소득과 행복 사이의 관계를 조사했습니다. 즉, 주어진 한 시점에 한 국가 안에서 소득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의 행복을 비교했다고 할 수 있지요. 이처럼 주어진 한 시점에서 변수의 분포가 어떠한 양상을 띠는지 비교하는 것을 '횡단면적 비교'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 모든 나라들에서 소득이 높은 사람들의 행복도가 소득이 낮은 사람들보다 높은 패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즉, 어떤 의미에서는, 이스털린의 연구에서도, 돈은 행복을 살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비교는 소득이 높은 국가와 소득이 낮은 국가 사이의 횡단면적 비교입니다. 즉, 주어진 한 시점에서 소득이 높은 나라가 소득이 낮은 나라에 비해 평균적으로 더 행복한지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이 두 번째 연구 결과, 다소 의외로, 국가 레벨에서는 그 횡단면적 관계가 불분명하였습니다.



세 번째 비교는 주어진 한 시점에서의 비교였던 앞의 두 비교에 비해 여러 시점들 간의 비교, 즉 시계열적 비교입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 국가의 국민소득이 올라가면, 그 국가의 행복 수준 역시 올라가는지를 조사한 것이지요. 그 결과, 1946년부터 1970년까지 이른바 '전후 황금기'에 걸친 이십여 년간 미국 경제가 크게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의 평균적인 행복 수준은 증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위와 같은 연구 결과에서 도대체 무엇이 역설적이길래 '이스털린의 역설'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일까요? '역설'이란, 논리적으로 모순을 포함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논리학적으로, 동시에 참일 수 없는 명제를 서로 모순관계에 있다고 하지요. 따라서 '이스털린의 역설'에 '역설'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그것이 동시에 참일 수 없는 모순관계에 있는 명제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보통 일컫는대로, 그저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거나, 혹은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소득이 행복도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의미라면, 그건 사람들의 상식과 직관에 어긋나는 것일지는 몰라도 엄밀한 의미에서 '역설'이라고 이름붙일 이유는 없습니다.



위에서 살펴본 1974년의 이스털린의 연구 결과는, 소득과 행복의 관계가 세 가지 비교에서 모두 일관되게 나타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즉 "소득과 행복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명제가, 국가 안에서의 횡단면적 비교에서는 참인데, 국가별 횡단면 비교나 시계열적 비교에서는 모호하거나 거짓이었던 셈입니다. 이처럼 참과 거짓이 동시에 성립하는 모순적 결과를 두고 '역설'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이스털린은 1974년의 연구 결과를 횡단면 관계와 시계열 관계 사이의 모순으로 정립해나갑니다(Easterlin, 1995, 2001). 따라서, ”이스털린의 역설”이란 소득과 행복 사이의 상관관계가 횡단면 연구와 시계열 연구 사이에서 일관되게 나타나지 않는 모순적 현상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위의 영상이나 기사에서 이스털린의 역설을 반박 혹은 지지하는 연구라고 소개한 앵거스 디턴의 연구는 실은 그 어느 것도 이스털린의 역설을 지지하거나 반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EBSCulture의 영상에서 소개한 앵거스 디턴의 연구 내용은, GDP와 기대수명 사이에 분명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인데, 소득과 행복 사이의 상관관계를 이야기하다 갑자기 '기대수명'에 대한 연구를 제시하는 것은 다소 생뚱맞게 느껴집니다. 무엇보다, 이 영상은 해당 연구의 내용마저도 잘못 전달한 것처럼 보입니다. 영상에서는 국민소득과 기대수명 사이에 상관관계가 성립하는 사례로 중국과 인도의 경우를 예로 들고 있는데, 앵거스 디턴 교수가 공동 저자로 참여한 2006년의 리뷰 논문(Cutler et al., 2006)과, 단독 저자로서 쓴 논문(Deaton 2006) 모두, 영상의 설명과는 반대로 중국과 인도가 고속성장을 하는 동안 오히려 영유아 사망률 지표는 그 개선이 둔화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본 포스팅은 GDP와 기대수명 사이의 관계에 관한 게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 더 이상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소득과 행복의 관계에 대해서라면, 차라리 디턴 교수의 2008년 논문을 인용하는 것이 더 적절했을 겁니다. 이 논문에서 디턴 교수는, 애초 이스털린의 논문에 비해 더 광범위한 조사를 통해, EBSCulture 영상의 내용과 비슷하게, GDP가 두 배씩 증가할 때마다 일정한 수준으로 행복 역시 증가하는 상관관계가 있다는 점을 밝히고 있거든요(Deaton 2008). 물론, 이런 연구 결과가 이스털린의 역설을 반증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이스털린의 역설의 핵심은, 이런 상관관계가 횡단면적 연구와 시계열적 연구 모두에 걸쳐 일관되게 나타나는지 여부이기 때문입니다. 디턴 교수의 연구는 국가 단위의 횡단면적 상관관계를 보여줄 뿐, 같은 상관관계가 시계열적으로도 나타나는지는 보여주지 않습니다. 이스털린도 역시 1974년의 연구 이후 학자들의 연구가 진척되면서 국가 간에도 소득과 행복 사이의 횡단면적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습니다(Easterlin, 1995). 디턴 교수 본인도 자신의 위와 같은 연구 결과는 해석하기에 따라 "이스털린의 역설과 양립"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하지요(Deaton 2008, p.70).



이스털린의 역설을 지지하는 연구로 소개되었던 디턴 교수의 다른 연구(Kahneman & Deaton. 2010) 역시 마찬가지로 한 국가 안에서의 횡단면적 상관관계에 관한 이야기일 뿐, 이스털린의 역설을 지지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해당 연구에서 디턴과 카네만은 “연봉이 7만5000달러(약 8100만원) 이상이라면 소득이 사람들을 항상 훨씬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하는데, 애초에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은 증가하지 않는다는 건 '이스털린의 역설'이 아닙니다(그리고 뒤에서 다시 보겠지만, 해당 연구의 결론을 위의 인용문과 같이 요약하는 것도 썩 정확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이스털린보다는 '리처드 레이어드(Richard Layard)' 교수와 같은 학자가 보다 명시적으로 주장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레이어드 교수는 2005년의 저서에서 국가별 GDP와 행복 사이에 상관관계가 나타나지만, 그같은 관계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 이상인 나라들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Layard, 2005; pp.32-33). 따라서,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 기본 욕구가 충족되면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는 이론"은 차라리 레이어드 교수가 GDP와 행복의 관계에 대해서 전개한 주장이라고 보는 편이 더 낫습니다. 리처드 이스털린 교수와 리처드 레이어드 교수 모두, 경제 성장과 행복의 관계에 대해서 연구한 경제학자이고, 행복을 결정하는 변수로 절대소득보다는 상대소득을 주목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름이 같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스털린의 역설과 레이아드 가설은 서로 다른 얘기입니다.



이스털린의 역설을 반박하려면, 횡단면적 연구에서 나타난 소득과 행복 사이의 상관관계가, 국가 레벨에서 시계열적으로도 나타나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합니다. 즉, 경제가 더 많이 성장한 나라가, 행복의 증가도 더 크게 경험했다는 사실을 통계적으로 보여줘야 이스털린의 역설을 반박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연구를 수행한 것이 바로, 앞서 지식백과와 기사에서 소개했던 베시 스티븐슨 교수의 연구입니다. 베시 스티븐슨(Betsey Stevenson)저스틴 울퍼스(Justin Wolfers)가 공동으로 작업한 2008년 논문에서는, 세계가치조사(WVS), 유로바로미터(Eurobarometer) 등 국가별 서베이 데이터를 통해 GDP 성장과 국민의 평균적인 행복의 변화 사이에 상관관계가 성립함을 보여줍니다(Stevenson & Wolfers, 2008). 그리고, 이같은 관계의 크기(회귀 계수; 독립 변수가 한 단위 변화할 때 종속 변수가 얼마나 변화하는지를 의미)가 횡단면적 관계에서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결과를 한편으로 강조합니다. 뒤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이스털린은 소득과 행복 사이의 상관관계에서 절대소득(즉 소득의 절대적 크기)보다는 상대소득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만약 국가 안에서의 횡단면적 상관관계가 이스털린의 말대로 상대소득에 의해서 나타나는 것이라면, 그 크기는 시계열적 관계와 달라야 할 겁니다. 시계열적 관계나 횡단면적 관계나 비슷한 기울기를 가지고 있다는 스티븐슨과 울퍼스의 발견은, 상대소득을 강조하는 이스털린의 이론에 대한 강력한 반증입니다.



이런 스티븐슨과 울퍼스의 반박에 대해서 이스털린은 어떤 대답을 내놓았을까요? 이스털린에 따르면, 스티븐슨과 울퍼스는 단기의 경기 변동 효과와 장기의 경제 성장 효과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했습니다(Easterlin & Angelescu, 2009; Easterlin et al., 2010). 이같은 이스털린의 주장을 검토하기 전에, 이스털린 본인이 '이스털린의 역설'이라는 현상에 대해서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짧게 언급했지만, 이스털린은 소득과 행복 사이의 상관관계에 있어 중요한 것은 절대소득이 아니라 상대소득이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소득의 절대적인 크기보다도, 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사회적 기준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소득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가 행복을 결정하는 인자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주어진 한 시점에서는 소득과 행복 사이의 상관관계가 나타납니다. 자기의 소득 수준을 사회의 평균적인 수준에 비교해 상대적으로 가늠하게 되면서, 사회의 평균에 비해 훨씬 높은 소득을 버는 사람은 만족감을 크게 느끼게 되고, 그 반대로 사회적 평균보다 못 버는 사람은 준거 집단에 비해 한참 못 미치는 자신의 위치에 대해 불만을 느끼게 되면서, 주어진 한 시점에서 한 국가 안에서는 사람들 사이에 소득과 행복 간 정(+)의 상관관계가 나타나는 겁니다. 하지만, 경제 성장을 통해 모두가 다 함께 소득이 올라 제 상대적인 위치에는 별 변화가 없다면, 소득을 과거에 비해 더 벌게 되어도 더 행복해지지는 않겠죠.



이런 소득의 비교는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의 소득 수준의 상대적인 차이에서 이뤄질 뿐만 아니라, 단기적으로는 과거 자신의 소득과 현재의 소득 사이에도 이뤄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불황기에는 경제 상황이 과거에 비해 나빠짐에 따라, 만족도도 같은 방향으로 변하기 때문에, GDP 변화와 행복 변화 사이에 시계열적 관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경제 성장은 항상 직선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호황과 불황의 싸이클을 거치며 이뤄지기 때문에, 아래 그래프처럼 단기적으로는 GDP와 행복이 같은 방향으로 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스털린의 이론에 비춰봐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아래 그래프는 이스털린의 이론에 입각해 소득(income)과 행복(happiness)이 장단기에 걸쳐 어떤 추세를 그리며 변화하는지를 도식화해 보여줍니다. 그 장기적 추이를 그리고 있는 두 추세선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없지만, 회색 수직선들을 기준으로 구간을 나누어 보면, 단기적으로는 소득과 행복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소득과 행복의 장단기 추세



하지만 이걸 경제 성장의 효과, 즉 사람들이 누리는 절대적인 부의 크기에 의해 나타나는 효과라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단기적으로 불황에 따라 행복도가 감소하고 이후 호황기에 종전의 소비 수준을 회복하며 행복도도 다시 증가한다고 해도, 이건 과거의 제 처지에 비추어 상대적으로 이동한 위치에 의해 나타나는 차이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애초 이스털린의 이론은, 개인의 소득이 증가하면 욕구 수준도 따라 증가해 변화한 소득수준에 적응하여, 행복은 증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Easterlin 2001). 이런 그의 이론처럼, 위 그래프에서는 단기적으로는 소득과 행복이 같은 방향으로 변하는 것처럼 보여도, 장기적으로는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고로 GDP와 행복 사이의 관계가 소득의 절대적인 크기 변화에 의해 나타난다는 걸 증명하려면, 호황과 불황의 한 사이클이 완료되었을 때의 누적 연평균 성장률 역시 그 기간의 행복의 변화와 상관관계를 가진다는 걸 보여줘야 합니다. 즉, 단기가 아닌 장기에 걸쳐서도 GDP와 행복 사이에 시계열적 상관관계가 있다는 걸 보여줘야 '이스털린의 역설'을 반증할 수 있습니다. 반면 스티븐슨과 울퍼스의 연구는 그런 장기적 관계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게 이스털린의 반론입니다(Easterlin & Angelescu, 2009; Easterlin et al., 2010).



비슷한 맥락에서, 서베이 데이터가 커버하고 있는 기간 동안 사회체제의 급격한 변화와 함께 붕괴했었던 경제를 회복하는 중이었던 구 공산권 국가들을 따로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도 이스털린은 지적합니다(Easterlin & Angelescu, 2009; Easterlin et al., 2010). 상식적으로는, 이들 국가들이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하면서 더욱 부유해졌을 것 같지만, 실은 경제가 급격히 크게 붕괴했으며, 이를 회복하는 데에 통상 경기의 한 싸이클이 완료되는 것보다 훨씬 오랜 기간이 걸렸습니다. 때문에, 이들 국가를 데이터셋에 포함하면 GDP와 행복의 단기적 변화가 그 장기적 관계를 오염시킬 수 있다는 게 이스털린의 논지입니다.



스티븐슨울퍼스는 이스털린의 이런 반박에 응해, Daniel Sacks가 함께 참여한 2010년의 논문에서, 장기적으로도 GDP와 행복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으며, 구 공산권 국가들이 아닌 나라들에서도 이같은 관계가 성립한다고 주장합니다(Sachs et al., 2010). 이들의 WVS 분석에서는, 시계열이 평균 11년 정도일 때도 GDP의 변화와 행복의 변화 사이에 유의미한 관계가 나타납니다.



Sacks 등의 연구가 이스털린의 역설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비판이었다면, Gallup World Poll(GWP) 자료를 사용해 이스털린의 역설에 대한 비판에 나선 Diener와 그 동료들의 연구는 심리학자들의 비판입니다(Diener et al., 2013). 이들에 따르면, 가계의 소득 변화는 행복의 변화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상대소득보다는 절대소득이 더 중요한 인자였다고도 주장하며, 동시에, 저자들이 분석한 6년 정도의 기간에서는 GDP는 가계 소득 변화의 차이를 잘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이스털린이 소득과 행복 간 시계열적 관계를 찾아내지 못한 것은 소득 변화의 지표로서 GDP를 사용하는 것에 한계가 있기 때문일 가능성을 시사한 것입니다.



사회학자인 Veenhoven 역시 행복에 관한 연구들의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있는 World Database of Happiness를 활용해 최소 10년의 시계열을 형성하고 있는 보다 방대한 데이터셋을 통해 GDP 성장과 행복의 변화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보여주며, 이스털린의 역설에 대한 반박에 나섭니다(Veenhoven & Vergunst, 2014). Veenhoven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는 나라들이 그렇지 않은 나라들에 비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행복이 증가할 확률이 더 높았으며, 40년 이상의 시계열을 형성하는 데이터셋으로도 연평균 GDP 변화율과 행복 변화율 사이에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었습니다.








이스털린은 Sacks 등의 재반박이 역시 단기와 장기를 제대로 분별하는 데에 실패했다고 지적합니다(Easterlin 2016). 그들이 사용한 주요한 데이터인 WVS의 분석은 비록 시계열이 평균 11년이지만, 실은 대략 절반 정도의 나라들이 10년보다 짧은 시계열을 갖고 있었으며 시계열이 3년에서 7년 정도로 짧은 나라들이 전체의 3분의 1 정도라는 것이지요. 유로바로미터 자료 분석에서는 GDP와 행복 사이의 장기적 관계를 검증할 수 있었을 10년 이상의 시계열을 10년 단위로 끊어 분석함으로써 단기적 관계를 보여주는 데 그쳤다고 반박합니다. 무엇보다, WVS의 데이터는 Sacks et al. (2010)의 연구가 이뤄지던 시점에 이미 5차 조사 자료 역시 사용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들이 4차 조사까지의 데이터만 이용한 까닭을 이해할 수 없다고 이스털린은 지적합니다. 이스털린이 직접 5차 조사를 포함해 6차의 자료까지 사용해 분석한 결과, GDP와 행복 사이에는 장기적인 시계열적 관계가 없었습니다.



Diener et al. (2013)의 연구에 대해서는, 길어야 6-7년 정도의 짧은 기간의 관계를 보여줄 뿐으로 역시 이스털린이 강조하는 장기적 관계를 검증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합니다(Easterlin 2016). 예를 들어 가장 최근 논문에서 Easterlin et al. (2020)은 WVS 자료를 이용해서는 국가별로 평균 28년의 시계열을, GWP 자료로는 평균 14년의 시계열을 구성했는데, 그에 비해 Diener et al. (2013)의 6년은 너무 짧다고 할 수 있습니다.



Veenhoven & Vergunst (2014)의 연구는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GDP와 행복 사이의 장기적 관계를 보여주고 있지만, WVS, Gallup 등 여러 조사들을 함께 분석하고 있어, 서로 다른 자료들을 함께 분석하는 것이 방법론적으로 과연 적절했는지 의문을 남깁니다. 예를 들어 Easterlin (2016)은, WVS의 '행복(happiness)' 데이터의 조사 방식에 변화가 있었던 사실을 지적합니다. 2차 조사에서는 응답자에게 제시된 "very happy"부터 "not at all happy"까지의 선택지들의 순서가 응답자가 바뀔 때마다 바뀌도록 했었는데, 3차 조사부터는 그런 방식을 사용하지 않았단 겁니다. 사회조사에서는 '초두효과'라고 하여, 응답자들이 먼저 제시되는 선택지를 더 많이 선택하는 현상이 있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는데, 3차 조사 이후에는 모든 응답자들에게 "very happy"를 먼저 제시하였으므로, 이런 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채 보면 실제로는 사람들이 느끼는 주관적 행복감에 변화가 없더라도 마치 행복감이 증가하는 것처럼 보일 가능성이 큽니다. Easterlin (2016)에 의하면 Veenhoven & Vergunst (2014)의 데이터에서 21~40년의 시계열을 가진 국가들의 1/4 정도, 10~20년의 시계열을 가진 나라들의 1/5 정도가 이같은 상향 편의에 의해 왜곡될 수 있는 자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같은 연구의 40년 이상의 장기적 추이로 구성한 데이터에도 마찬가지의 상향 편의가 발생할 수 있다고 이스털린은 지적합니다. 이른바 '캔트릴 사다리'라고 해서, 사다리에서 가장 낮은 단계에서부터 가장 높은 단계까지 중, 본인의 삶이 어느 수준에 해당하는지를 응답자가 고르도록 하는 문항이 있는데, 과거 해당 문항을 사용한 서베이에서는 응답자들이 응답 직전 조사자와의 인터뷰에서 "가능한 가장 나쁜" 상태를 묘사하라는 지시에 응했었다는 겁니다. 따라서, 해당 조사에서는 부정적인 프레임에 노출된 응답자들이 제 만족도를 보다 낮은 상태로 보고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최근의 조사에서는 그런 우려가 없으므로, 이 문항에 대한 응답들은 추세적으로 상향 편의를 보일 가능성이 있지요. Easterlin (2016)에 따르면 Veenhoven의 데이터에서 40년 이상의 시계열을 가진 18개 국가들 중 11개 국가가 이런 오염의 우려가 있는 자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지적한 내용들은 뒤의 것에 비해서는 사소한 오류에 가깝습니다. Veenhoven & Vergunst (2014)가 저지른 가장 치명적인 오류는, GDP의 장기적 추이를 연구하면서, 불변가격(constant price)으로 계산한 GDP가 아닌, 각 시점의 현행가격(current price)으로 계산한 GDP를 분석에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같은 값의 화폐라고 해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실질 가치는 변동하기 때문에 이런 연구에서는 기준년도로 가격을 고정하여 서로 다른 시점 간 비교가 가능하도록 하는 등의 처리가 필요한데, Veenhoven & Vergunst (2014)는 그런 처리를 하지 않은 것입니다. Veenhoven이 경제학자였다면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실수였습니다.



이스털린의 주장대로 장기적 관계를 단기와 적절히 구별해준 연구는, 장기적으로는 GDP가 성장해도 그에 따라서 행복도 따라 증가하지는 않는다고 보고합니다. Bartolini & Sarracino (2014) 역시 이스털린과 마찬가지로, 단기에는 GDP 추세와 행복의 추세 사이에 정(+)의 상관관계가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그같은 관계는 사라졌다는 결과를 보고합니다.



코로나 판데믹이 세계를 덮치기 직전까지 수행된 가장 최근의 WVS와 EVS(European Values Survey), Gallup World Poll 데이터를 사용한 최신 연구에서도 이스털린은 비슷한 결과를 보여줍니다(Easterlin & O'Connor, 2020). 애초 스티븐슨과 울퍼스의 논문에서 분석한 것보다도 많은 수의 나라들을 분석했지만, 장기적으로는 GDP와 행복 사이에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레이아드의 가설대로 GDP 수준이 낮을 때에만 GDP의 증가가 행복을 증가시키는 관계도 없었습니다. 즉, 소득이 낮은 국가들에서도 장기적으로는 GDP의 성장이 행복을 증가시키지 않았습니다.



이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단연 중국입니다. 중국은 세계가치조사(WVS)에 처음 참여한 1990년부터 2017년까지, 1인당 GDP가 4배 이상 증가하는 경제 성장을 기록했는데, 1990년 시점의 중국의 1인당 GDP는 2011년 달러 가치로 $2,982로, 경제사학자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역사 통계인 메디슨 데이터의 가장 최근 자료(https://www.rug.nl/ggdc/historicaldevelopment/maddison/releases/maddison-project-database-2020)에 따르면, 이는 산업혁명기에 막 진입하는 1760년 영국의 그것($2,915)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역시 같은 자료에 따르면 영국의 경제가 중국의 2017년 1인당 GDP인 $12,734를 처음 능가하게 되는 건 1950년대입니다. 따라서, 이 27년 동안의 중국의 경제 성장은, 과거 서구 선진국이 산업혁명을 통해 근대로 진입하고 현대로 이행하며 겪었던 성장과 양적으로 맞먹는 수준이었던 셈입니다. 놀라운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국민들의 행복은 1990년에 비해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오히려 이 기간에 중국인들의 행복은 다소 감소했다가 2000년대 이후 다시 증가해 최근에야 애초의 수준을 회복하는 U자 궤적을 보여줍니다; Easterlin et al. 2012). 이스털린의 역설을 가장 직접적으로 증명하는 사례이지요.



중국의 행복(삶의 만족도) 추이. Source: World Values Survey



동시에,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 기본 욕구가 충족되면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는 이론”이 실은 이스털린의 역설과는 다르다는 사실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즉 "기본 욕구"가 충족되기 전 "일정 수준" 미만에서는 소득이 증가하면서 행복도 증가해야 한다는 의미인데, 이스털린의 역설을 가장 강력히 지지하는 중국의 사례에서는 그런 현상을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세계은행은 최소한의 욕구조차 충족하지 못하는 극단적 빈곤을, 저소득 국가의 빈곤선으로부터 산정한 ‘하루 $1.9’의 국제 빈곤선을 기준으로 정의하는데, 지난 20여 년 동안 하루 $1.9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이 국제 빈곤선 기준의 극빈 상태에서 탈출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가 바로 중국이었습니다(중국의 $1.9 미만 빈곤율은 1990년 66.2%에서 2015년 0.7%로 감소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의 행복은 증가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역시 인간의 욕심에는 끝이 없나봅니다).








다시 위의 기사들에서 이스털린의 역설을 지지하는 연구로 언급됐던 앵거스 디턴과 대니얼 카네만의 연구로 돌아옵시다. 이미 이 연구는 한 국가 안에서의 횡단면적 관계에 대한 연구로서 이스털린의 역설을 증명하거나 반증하는 것과는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을 지적했지만, 그럼 “소득과 행복감이 연간 소득이 7만 5000달러(한화 8700만원)까지는 같은 방향이지만 더 이상은 유지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거나, “연봉이 7만5000달러(약 8100만원) 이상이라면 소득이 사람들을 항상 훨씬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설명 자체는 정확했던 걸까요?



Kahneman & Deaton (2010)의 연구 결과는 소득이 행복의 여러 측면 중 '삶에 대한 평가'와는 모든 구간에 걸쳐 정(+)의 상관을 보이지만, 긍정적 정서나 우울감, 스트레스 등 감정적 행복은 일정한 구간을 지나면 소득과의 정(+)의 상관이 사라진다는 내용입니다. 단순히 7만 5천달러 이상에서는 소득이 행복을 높여주지 못한다는 게 아니고, 삶에 대한 평가로서 이른바 ‘인지적‘ 행복은 높여주지만 ‘감정적’ 행복은 높여주지 못했다는 겁니다.








자, 그럼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봅시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을까?



여기에 심리학자이건, 사회학자이건, 혹은 경제학자이건, 대부분의 사회과학자들이 "Yes"라고 대답할 것임은, 위의 포스팅에서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습니다. 하지만 이스털린의 대답은, 물론 "Yes"는 "Yes"지만, 좀 더 뉘앙스 있는 "Yes"일 겁니다. 아래처럼요.



Yes.
But, 행복을 사는 돈은 절대소득이 아니라 상대소득이다!



이스털린의 이런 결론이 어떠신가요? 놀라운가요? 아니면, 고개가 끄덕여지나요?



"이스털린의 역설"은 대중적으로도 매우 잘 알려진 경제학 용어이지만, 그만큼 매우 많은 오해를 받아온 개념이기도 합니다. 인터넷 기사나 유튜브 교양 채널 등, 대중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에서 제공하는 '이스털린의 역설'에 대한 설명이, 사실은 해당 주제에 대해 부정확하거나 혹은 부족한 내용을 전달하고 있다는 건 상당히 안타깝습니다. 위에서 제시한 이스털린의 대답이 어떻게 느껴지건,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던 “이스털린의 역설“의 진실이 무엇이었는지 전달한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포스팅이 정확한 정보로 여러분들의 이해를 바로잡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P.S.

‘이스털린의 역설’을 네이버와 구글에서 검색하면 이 글이 검색 결과의 1페이지에 노출될 정도로 꽤나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다. 하지만, 이스털린의 역설에 대한 오해는 반복되고 있다. 최근 새로운 오류들을 발견했다. 이 오류들은, 이전의 것들에 비해 더 심각하다.

그래서, 이스털린에게 이메일을 직접 보내보았다. 이 내용은 아래의 글을 참조하시기를:


당신이 알고 있는 ‘이스털린의 역설’은 틀렸다







<참고문헌>


Bartolini, S., & Sarracino, F. (2014). Happy for How Long? How Social Capital and Economic Growth Relate to Happiness over Time. Ecological Economics, 108, 24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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