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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순 Sep 03. 2020

마음을 따라잡으려면 서둘러야겠어

유고슬라비아 - 베오그라드

  소피아 역에서 출발한 기차는 북으로 북으로 내달렸다. 점심 때 출발한 기차는 천천히, 그러나 부지런히 달렸다. 날이 저물자 기차가 유고슬라비아 국경을 통과하는지 군인 복장을 한 남자들 두엇이 여권을 검사하고 다녔다.

  지금은 세르비아의 수도가 되었지만, 그때는 베오그라드가 유고슬라비아에 속해 있었다. 동구권 뉴스를 들을 때 특파원은 항상 "베오그라드에서 ***였습니다"하는 멘트로 뉴스를 마무리하고는 했다. 그런데 엄밀하게 말하자면 당시 나는 유고슬라비아에 갈 수 없었다. 오랜 내전이 막 끝난 직후, 여전히 유고슬라비아는 여행 금지구역이었던 것이다. 그나마 기차로 통과하는 것은 가능했다.

  객차 안에서 여권 검사를 마친 군인이 짐을 그대로 두고 모두 열차 밖으로 나가라 하였다. 날은 추운데 어쩌자는 셈인가. 투덜거리는 마음 반, 걱정스러운 마음 반으로 열차에서 내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없는 들판이었다. 객차의 승객들이 다 내리자 안에서는 짐 검사를 하는 모양이었다. 유고슬라비아 군인이 군견을 끌고 이 객차에서 저 객차로 옮겨 다니는 모습을 나는 불안한 시선으로 열차 밖에서 들여다 보고 있었다.  추운 들판에 내려진 승객들은 그러나 잠잠했다. 이번에는 여군 한 명이 다정한 미소를 띤 채 다시 승객들의 여권을 확인하고 다녔다. 추위 때문에 다들 불만스러웠을 테지만 불만을 입 밖으로 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소피아 시내


  20분쯤 지나자 다시 열차에 오를 수 있었다. 나는 크로아티아 자그레브로 가기 위해 베오그라드에서 열차를 갈아타야 했다. 그런데 어림짐작으로 유고슬라비아에 들어왔다는 걸 감지할 수 있었을 뿐 열차가 어디쯤을 지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열차가 정차해도 안내방송이 나오는 법이 없었고, 문제는 역 이름도 죄다 키릴 문자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소피아 시내


  열차는 불빛 없는 밤을 느릿느릿 잠자코 달리고만 있었다. 베오그라드 근처에 다다른 느낌이 들었지만 대도시의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이야 구글맵으로 여기가 어디쯤인지 확인할 수 있지만 당시엔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었다. 작은 역들을 자주 지나치자 불안은 커져만 갔다. 내가 구입한 열차표에는 밤 9시 45분에 베오그라드에 도착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10시를 지나고 있다. 엄습해오는 불안감에 짐을 들고 지나가는 남자에게 물어보니 이제 곧 베오그라드에 도착한다 한다. 


  그 말을 듣고 나도 서둘러 짐을 챙겨 출입문 쪽으로 나섰다. 열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더니 한 역에 정차했다. 베오그라드 중앙역은 아무리 밤이라 하지만 놀라우리만치 침침하고 한적했다. 몇몇 사람들이 역을 빠져나가는 게 보였다. 어느새 눈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눈발은 점점 굵어졌다. 역무원에게 표를 보여주며 자그레브 가는 열차에 대해 물으니 그가 말했다. 


  "아, 자그레브 가는 열차 말이군요. 1번 플랫폼으로 가세요."


  그런데 어째 분위기가 이상했다. 밤 10시 45분에 자그레브행 열차가 도착하기로 되어 있는 1번 플랫폼에는 나 말고 아무도 없었다. 시계를 보니 10시 30분.

  '이제 곧 사람들이 몰려오겠지.'

  그러나 10시 45분이 되어도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은커녕 열차도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때 한 사내가 멀리서 나타나 내게 다가왔다.


  "어디 가쇼?"

  "자그레브 가는데요."

  "그 열차 이미 떠났어요. 조금 전에 떠났대두. 택시 탈라우?"

  "아뇨. 조금 기다려보고요."


  11시가 지나도 열차는 오지 않았다.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도 여전히 나 말고 아무도 없었다.

  

  '이를 어쩐담.'


  여행을 하다 보면 종종 이런 예기치 못한 순간을 만나게 된다. 누구는 그것도 다 여행의 일부라고 하고, 지나고 보면 과연 그 예기치 못한 순간 때문에 그 여행이 더욱 빛난다고도 하지만 정작 그 뜻밖의 상황에 직면한 당사자는 여간 당황스러운 게 아니다.


  11시 10분이 되자 거의 포기하는 심정으로 다시 역무실로 가 보니 역무원은 그새 퇴근하고 역무실 불은 꺼져 있었다. 열차가 이미 떠났다고 진작에 말해주었더라면 좋았을걸.


  짐을 끌고 터덜터덜 역을 빠져나왔다. 숙소고 뭐고 불빛 자체가 거의 없었고, 무엇보다 내가 베오그라드 역을 벗어나는 일은 불법이었다. 내게는 유고슬라비아 비자도, 여행허가서도 없었다. 마침 역 앞에는 택시 두 대가 서 있었다. 아까 플랫폼에서 내게 와 말을 걸었던 아저씨가 다시 내게 다가왔다.

  "택시 타실라우? 지금 출발하면 미트로비차에서 자그레브 가는 열차를 잡아탈 수 있어."

  택시를 타고, 이미 떠난 열차를 따라잡는다. 썩 믿음이 가지 않았지만 달리 선택할 것도 없었다.

  "얼만데요?"

  "20달러만 줘요."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베오그라드의 물가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몰라도 택시 기사는 터무니없는 요금을 제시한 것 같지 않다. 눈발은 더욱 굵어지고 길가에는 눈이 한 자쯤이나 쌓여갔다. 대체 이런 길을 어떻게 운전해 간다는 말인가.


  택시에 오르고 보니, 차는 낡을 대로 낡아 있었다. 창문도 손잡이를 빙글빙글 돌려야 열렸다. 그래도 택시 안은 춥지 않았다.


  "자, 서두릅시다."


  시동을 건 기사는 덩치가 산만 했는데 코너를 돌 적마다 과장된 몸짓으로 핸들을 돌리면서 동시에 산만 한 몸을 좌우로 움직였다. 온몸으로 운전을 하는 것이었다. 기사는 흥이 난 모양이었다. 아닌 밤중에 장거리 손님을 태우게 되었으니 횡재를 한 것 같았다. 


  아저씨는 나보다 마음이 급한 듯 핸들을 왼쪽으로 돌리면서는 몸도 따라 왼쪽으로 기울이고,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릴 때면 몸도 오른쪽으로 기우뚱했다. 아저씨의 마음은 벌써 미트로비차 역에 가 있는 듯했다. 나는 마음을 따라잡으려 그렇게 흥겹게 서두르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가뜩이나 작은 택시는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이는 큰 덩치의 기사 덕분에 더욱 작아 보였다. 그러나 아저씨의 바쁘고 과장된 몸놀림과는 대조적으로 택시는 매우 얌전히, 구불거리는 도로를 따라 조심조심 움직여갔다. 아마 그런 날씨에 택시가 난폭하게 내달렸다면 나는 꽤나 긴장을 했을 테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아저씨의 과장된 몸짓과 안정적인 차체의 움직임이 묘한 조화를 이루어 뜻밖에 편안한 눈길 여행이 되었다. 

  눈발이 더욱 굵어지자 앞유리의 와이퍼로는 감당이 안 되는 듯 시야가 흐렸다. 그런 와중에도 다소 안심이 되었던 것은 택시가 천천히 달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저씨는 이따금 뿌옇게 김이 서린 안쪽 유리를 큰 몸을 움직이며 걸레로 닦아 시야를 확보하려 애썼다. 거센 눈발과 어둠 탓에 유리를 닦아도 잘 안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1시간 가까이 달리고 있는데 아저씨가 스스로도 놀랍다는 표정으로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바로 저 열차요. 이제 따라잡았어!"


  택시는 한동안 열차가 달리는 철로와 나란히 달렸다. 택시는 느리게 달리는 열차를 어느새 앞지르기 시작했다. 출발한 지 1시간쯤 되어 미트로비차에 도착해 택시에서 내리는데 기사는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곧 열차가 올 거요. 내 뭐라고 했소. 그나저나 눈이 참 많이 내리네. 자, 잘 가슈."


  의기양양한 아저씨와 악수를 하고 아무도 없는 플랫폼에 서 있자니 안쪽 무언가가 따뜻하게 부풀고 있었다. 과연 5분쯤 뒤에 자그레브 가는 열차가 서서히 플랫폼으로 들어섰다. 나는 열차를 잡아타고 무사히 자그레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크로아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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