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아름다운 게 흠

트빌리시 - 제모 케디 - 시그나기

by 단순

죄다 러시아인


트빌리시의 컬추럴 크로싱 호텔(Cultural Crossing Hotel)도 그랬고 이곳 시그나기의 TMT 게스트하우스도 나 혼자 묵는가 했는데 옆방에 러시아인 둘이 투숙했다. 하나 남은 방에도 결국 러시아 남자 둘이 묵는다. 조지아에서는 영어는 몰라도 러시아어를 아는 사람이 많다.



속도 위반


아침 7시 30분에 렌트카를 인도받아 여행을 떠났다. 1시간 정도 지나니 차에 적응이 됐다. 문제는 고속도로상에서 속도위반 카메라에 단속이 되었다는 것이다. 구간 단속에 단속된 것인데, 시속 50킬로미터 구간을 60킬로 넘게 달린 것이다. 새로운 차, 낯선 도로 상황에 진땀을 흘리고 있던 내가 그 표지판 볼 겨를이 어디 있단 말인가. 어쨌든 아까운 50라리(약 2만8천원)를 벌금으로 내게 생겼다.



폐공항


batch_2025-10-17 Tbilisi-Sighnaghi_X2D ii_11-편집.jpg 제모 케디 폐공항


점심 때 제모 케디(Zemo Kedi)에 있는 폐공항에 도착했다. 구글맵만 보고서는 찾기가 쉽지 않았는데 목적지에 도착 후 '어? 공항이 어딨지?' 싶은 기분이 들면 가던 방향으로 5분 정도 더 가야 한다. 신나게 한창 사진을 찍고 있는데 웬 할아버지 둘이 차를 타고 나타나 무서운 얼굴로 나가라고 한다. 그들이 탄 차가 내 차를 졸졸 뒤따라 오더니 내가 폐공항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 할아버지들이 무슨 경비원 같은 건 아닐 테고 어쩌면 돈을 바라고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얼마라도 쥐여 주고 사진 찍을걸 그랬나. 어쨌거나 날이 흐리고 안개가 껴서 좋은 사진 건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보드베와 시그나기


오후엔 보드베 수도원에 갔다. 외관이 정말 아름다웠다. 그런데 내부 수리 중이라 안에는 볼 것이 없었을뿐더러 사진도 못 찍게 했다. 내 경험상 사진을 못 찍게 하는 곳은 실은 그다지 사진을 찍고 싶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었다. 메인 빌딩 아래쪽 귀여운 예배당 둘이 있었는데 공사 때문에 아쉽게도 들어갈 수 없었다.


시그나기는 아름다운 도시다. 너무 아름다워서 관광객이 너무 많은 게 흠이다. 중국인들도 많고 한국인들도 몇 명 보았다. 한국인으로 보이는 청년 하나가 사진을 찍으며 다니고 있었다. 우연히 세 번 마주쳤다. 말을 건넬까 하다가 그러지 못했다. 내 젊은 날을 보는 것도 같았기 때문이다. 청춘은 혈기왕성하지만 혼자인 청춘은 역시 외로워 보인다.


저녁 때가 되어 시그나기를 어슬렁거리다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발코니 시그나기(Balcony Sighnaghi)라는 식당을 보았다. 시그나기 전망이 끝내주는 곳이어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가 싶었는데 얼핏 보기엔 전망이 끝내줄 것 같지는 않았다. 숙소로 돌아오다가 뭔가 아쉬워서 다른 식당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테라스 키시(Terrace Kisi)라는 곳이었다. 전망이 정말 좋았다.


batch_2025-10-17 Tbilisi-Sighnaghi_X2D ii_75-편집.jpg Terrace Kisi Sighnaghi


자리를 잡고 '오늘은 이렇게 좋은 전망 앞에 앉았으니 제대로 한번 먹어보자' 싶어서 무려 41라리(한화 약 2만 2천 원)를 들여 치킨 바비큐와 버섯 수프, 콜라를 주문했다. 주문을 받으로 온 청년이 니하오, 인사했다. 달리 대꾸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음식이 영 별로였다. 버섯 수프는 한국에서 먹던 크림수프에 버섯이 들어간 것인 줄 알았는데 허여멀건한 버섯국이었다. 맛도 그냥 그랬지만 날도 선선하여 따뜻하게 먹었다. 치킨 바비큐는 가관이었다. 이걸 치킨 바비큐라고 내놓는 거냐! 이곳에서 콜라는 오리지널을 클래식이라고 한다.


IMG_8618.JPG?type=w773 이걸 치킨 바비큐라고 내놓는 거냐!


그냥 좋은 전망 구경한 값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음식을 가져올 때 아까 그 청년이 중국인 아니냐 물었다. 아니라고, 한국인이라고 하니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했다. 계산할 때에도 감사합니다, 하고 한국말을 했다.


그런데 그 식당에서 아까 보드베 성당에서 만났던 러시아인들이 옆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자리를 잡고 앉고서야 알게 되었다.


batch_2025-10-17 Tbilisi-Sighnaghi_X2D ii_47-편집.jpg 보드베 성당

그들은 보드베에서 나를 만났던 걸 모르는 눈치였다. 남자 하나와 여자 둘이었는데, 그들을 기억하는 이유는 여자 둘이 성당에 들어서자마자 유난스럽게 핸드폰으로 끊임없이 동영상을 찍어대었기 때문이다. 남자가 내게 인사를 했다. 중국인이냐고, 아니라고, 한국인이라고. 그랬더니 여자 가운데 한 명(위 사진에서 빨간 옷을 입은 사람)이 자기 아들이 인천 인하대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아 네, 그렇군요.


IMG_8453.JPG?type=w773 맛있었던 시금치 하차푸리


트빌리시에서의 며칠 동안 아침마다 하차푸리를 사 두었다가 먹었는데 제법 먹을 만했다. 시금치 하차푸리였다. 진짜 한국의 시금치 맛은 아니었고 약간 향이 독특한 시금치였지만 먹을 만했다. 그런데 이곳 시그나기에서 하차푸리 구하는 게 쉽지 않다. 내일부터는 하차푸리 보이는 곳이 있으면 무조건 두어 개 사두어야겠다.

밤이 되니 제법 쌀쌀하다. 그래도 이 숙소는 히터가 있어서 그리 춥지 않게 잘 수 있게 돼 다행이다. 욕실 수압이 그간 경험한 것 중 최고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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