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에서 9시 알람이 울린다. 늦은 밤 힘든 일을 하느라 늦은 아침의 기상 알람이 아니다. 9시 20분 어린이집 등원 버스를 타기 위해 미리 엘리베이터를 호출하라는 알람이다.
한적한 시골 동네의 넓은 구조만 보고 입주했던 신축 아파트, 그 당시 차도 없던 나였지만 버스가 1시간에 1대꼴로 다녀도 하루 두 번 출퇴근만 할 땐 아무렇지 않았다. 하지만 두 아이를 키우며 병원이며 마트를 다니기엔 교통이 이만저만 불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4년 만에 큰아이가 4살, 작은 아이가 돌을 2달 앞두고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왔다.
버스 종점에 위치한 나름 개발 중인 신도시로 이사를 오면서 어린이집도 등원 버스를 타야 했다. 그 등원버스를 놓치면 택시를 태워 등원을 시켜야 했기에 차량 시간에 늦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20분이나 남았지만 여유롭게 엘리베이터를 호출하고 아파트 정문에 위치한 스쿨스테이션에서 어린이집 등원 차량을 기다린다.
벌써 7여 년 전쯤이니 코로나가 뭔지도 모르는 시절이었기에 내가 머무는 20여 분 동안 그 좁은 곳에서 들락 날락이는 엄마와 아이들이 족히 100명은 넘은듯하다. 2~3평 남짓의 스쿨스테이션에 난방과 냉방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등원 차량을 기다리는 엄마도 아이도 힘들지 않기에 나를 비롯해 많은 엄마들이 옹기종기 모여 같은 유치원, 같은 어린이집 차량을 타는 엄마들끼리는 서로 친분을 나눈다.
같은 시간이면 유치원, 어린이집 이름이 적힌 노란 버스들이 칼같이 스쿨스테이션 앞으로 줄지어 온다.
아직 어리지만 오빠란 타이틀을 달고부터는 어린이집 2년 차가 되어서인지 울기는커녕 큰 버스에 올라타 자리를 잡고 앉아 안전벨트 매고 떠나는 쿨한 아들에게 세상 다정한 엄마처럼 손을 흔들며 하트를 뿅뿅 날리고는 돌도 안된 둘째가 타고 있는 유모차를 밀며 집으로 향한다.
다들 입주 후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즈음이라 같은 동, 같은 라인에 살아도 다들 새로운 이웃사이라 텃새 같은 건 없이 다들 세상 착한 모습들을 하며 인사를 건넨다. 그날은 아들과 비슷한 또래아이의엄마가 말을 건넨다. 늘 웃음으로 인사만 하던 사이였는데 먼저 나에게 말을 건넨다.
"아이 등원시키고 출근하시나 봐요?"
0.1초 동안 생각을 해본다. 나의 마지막 출근이 언제였지?
4살인 아들이 태어나기 딱 20여 일을 앞둔 만삭으로 마지막 출근을 했었으니 3년은 넘었던 것 같다.
“아.. 아뇨 저 일 안 해요.”
3년 전에 마지막 출근이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것까지 궁금하지는 않았을 거라 미루어 짐작했다. 화장기는 없었지만 깨끗한 피부의 젊은 엄마가 짐짓 놀란 표정으로 다시 말을 건넨다.
“며칠 지켜보니 늘 이른 시간에 화장을 곱게 하시고 늘 회사 출근하시는 복장으로 아이를 등원시키는 것 같아서 여쭤봤어요.”
그러고 보니 나보다 5살 이상 나이 차이 나 보이는 그녀는 로션 정도를 바른 민낯에 이불속에도 입었을지도 모를 편한 운동복 바지와 12월의 아침 바람을 막아줄 듯하지만 오랜 바람을 견디지 않아도 좋을 다운 패딩 점퍼를 걸친 모습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침 9시가 넘어 등원을 시키는 엄마들의 모습은 비슷비슷하였다. 얼렁 집으로 돌아가 등원 전 아이가 먹다 남긴 밥그릇을 치우고 어제의 허물을 벗은 옷을 세탁기에 넣고 청소기를 돌리려면 그만큼 편한 옷이 없을 테다. 그녀가 말한 나의 회사 출근하는 복장은 칼 주름이 잡힌 팬츠나 정장 스커트는 아니었지만 곧장 종점으로 달려가 버스를 타고 시내를 나가도 될 만큼은 되는 옷차림이었다.
그녀가 말한 곱게 화장을 한 모습은 아침부터 애들 챙기기도 바쁠 텐데 따로 화장을 한 모습이 좀 의외라 출근만큼 급한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하고 한 말이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돌쟁이 딸아이를 데리고 딱히 스케줄이 없었던 시기였지만 늘 화장을 했었고 지금 또한 마찬가지이다. 지금은 아침 9시가 아닌 8시가 되면 어디로 출근하는 것 마냥셰도우로 눈을 반짝이게 하고 눈꼬리가 처져 보이지 않게 조금은 과하게 아이라인도 긋고 하루를 시작하는 나는 우아하고픈 백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