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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나은 Dec 11. 2022

애 때문에 웃는다. 걱정 마.

평생 잊을 수 없는 나의 33살

결혼 3년 차, 내 나이 30살이 되었을 즈음이다. 신혼의 재미로 깨 볶으며 행복하게만 지낼 것 같은 나에게 딱 3가지의 소원이 있었다.
남들이 들으면 거창하지도 않고, 특별하지도 않을 테다. 시절의 나에게는 당장 이뤄지지 않을 것처럼 막연했던 3가지이었다.

3가지 중 첫 번째는 결혼 3년 차라 더 간절했었던 그것은  나를 엄마라 불러줄, 이쁘진 않아도 건강한 아이를 갖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도 혼수라 말하며 임신 후 결혼한 친구들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나보다 늦게 결혼한 친구들의 임신소식도 들려왔다.
솔직히 난 쓰라린 마음이었지만 엄마가 될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물론 나도 임신 축하를 받게 될 거라는 기대도 한껏 부풀었다.
하지만 그 친구들의 출산소식과 돌잔치 초대를 받는 그날까지도 신 한번 해보지 못한 나는 불임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닐까 조바심이 났고 걱정 또한 떨쳐버릴 수 없었다. 손주 이야기를 한번 하지 않으셨지만 그래도 기다리실 시부모님과 장남인 신랑생각하면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31살의 초여름이었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토요일 오전, 난생처음으로 대문 앞에 대나무가 꽂힌 무당집을 홀로 찾아간 그날은 아직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일반주택 2층에 신당을 꾸민 무당을 만나기 위해 계단을 오르며 생각했다. 이런 곳에 혼자 찾아올 만큼 간절한 소망이 과연 이루어 질까? '이런 곳에 찾아온다고 이루어질 소원이라면 안 이뤄 어질 소원이 없겠다' '아니 간절하다면 이루어진다 했어'하며 내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동안 2층에 다다랐다. 너무 떨렸지만 애써 담담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거실에는 무당이라 부르는 보살님의 아들들의 대학 졸업  사진이 걸려있었다. 여느 가정집과 다를 바 없었다.


하는 나를 신당이 모셔진 방으로 안내했다.

향에 불을 피우고 자리에 앉은 친정엄마 또래의 보살님께서 사주부터 물어본다. 결혼했냐며 신랑의 사주까지 물어본다. 미리 태어난 시까지 시어머님께 확보한 터라 술술 불러드리고 보살님의 말씀을 기다렸다.


Tv에서 보았다. 미리 이것저것 말하면 눈치껏 끼워 맞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나는 말을 아꼈다. 그냥 큰 걱정, 큰 탈없이 잘 지낼 거라 하시고 시댁에 손이 귀하다는 말까지 하신다. 무슨 걱정이 있어 왔냐고 직접적으로 물어보신다. 아무 문제없이 잘 살 건데 왜 찾아왔냐고.

그제야 말했다. 아기를 갖고 싶은데 임신이 어렵다고 했더니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말한다.


"아기 찾아온다. 걱정 말고 편하게 즐기며 살아도 돼"

"네??! 정말요?! 벌써 4년 차인데요?!"

"33살에 애 때문에 웃는다 걱정 마"

"정말요?! 33살에 임신하는 거예요?
33살에 출산하는 거예요??"

"33살 웃는다니깐"

"네"

그렇게 나름 긍정적인 이야기를 들었지만
100% 믿을 수 없었고
그 후로 시험관 시술을 몇 번 했지만
기대가 큰만큼 실망도 크다는 진리를 절실히 느꼈다.


드디어 그 보살님이 말씀하신 33살이 되던 그 해,
자연임신으로 4월에 임신 테스기의 두줄을 보았다.

두 번의 유산을 겪었던 터라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나에게는 임신보다 어려운 게 출산이었다.


나에게 주신 보물을 또 잃지 않기위해 마음가짐, 몸가짐을 바르게 하며 하루 하루를 채워나갔다.



그해 12월, 내 품에  아이가 안겼다.


정말 33살에 웃을 수가 있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나의 33살이었다.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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