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게 보기 : 수능이 끝난 나에게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눈 시린 추억 안으로

by 외계인

* 2020년에 작성했던 글을 조금 다듬었습니다.
















오랜만이네.


나는 너의 어제이자 오늘 그리고 내일이야.

수능한파라는 말이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올해의 11월 14일은 별로 춥지 않은 거 같아. 한 달 정도 연기된 수능을 날씨도 알고 있는 듯해 기분이 묘하다. 수능 어땠어? 알아, 항상 내 생각만큼 잘 되지는 않지. 시험이 끝나고 나서 느꼈던 그날의 공허함을 나는 잊지 못하고 있어. 나에게 수능이란 큰 의미가 없다고 되뇌었지만 가슴은 아니었던 거지. 어쩌면 수능이 끝나고 본 하늘이 어제와 똑같아서 심통이 난 것 일 수도 있어. 내 10대의 전부를 수능이라는 글자를 향해 달려갔는데, 어느새 나보다 뒤처진 그 글자가 미운 걸지도 몰라.











지금의 내가 너보다 잘났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는 너보다 조금 더 많은 책을 읽었고, 조금 더 많은 생각을 적었고, 조금 더 복잡한 감정들을 느꼈지. 그래서 내 이야기를 조금만 해줄게. 너도 느꼈을 거야, 어릴 적 힘겹게 올라간 바위가 이제는 내 시야 한 뼘 아래만큼 작아졌고 내가 갈 거라 믿은 길과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생각보다 많이 다르다는 걸 말이야. 내가 생각한 길은 활주로를 닮은 곧고 긴 대로였는데 내 주변을 보면 곧지도, 길지도 않은 길이 보여. 흙먼지가 일고 돌부리가 튀어나오고 숨이 막히는 오르막을 걷고 있지. 가는 길목마다 숨이 찰 거야, 많이 넘어질 거야, 하늘은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고, 빛이 사라져 길이 보이지 않을 거야.











요즘의 나는 빛을 찾고 있어. 나에게 무엇이 소중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가지고 싶은 것과 가져야 하는 것 중 무엇이 먼저인지. 어디로 갈지 어떻게 갈지, 나에게 가장 의미 있는 것이 무엇인지. 두렵지만 아직 남은 다리의 힘에 이끌려 걷는 중이야. 아마 길이 보이지 않을 거야, 잊고 잊히는 게 두려울 거야. 무섭고 아플 거야. 그래도 웃을 수 있을 거야. 내가 웃는 이유가 네 덕분이니까. 길을 잘못 들어도 좋아. 길을 새로 만들면 더 좋아. 그리고 길을 잃어도 괜찮아. 네가 있는 숲 속에서 너의 발이 닿아있는 곳이 길이 아니라 해도, 빛을 찾으면 길도 보일 테니까.











너무너무 힘들면 주변을 둘러봐. 비록 걷고 있는 이 길이 곧지도, 길지도 않지만 직사광선을 받을 필요도 없고, 지친 순간에 기대어 쉴 나무와 바위도 있고, 목이 마를 때 찾아갈 개울도 찾을 수 있어. 그러니까 힘들다면 너의 옆에 있는 작은 소리를 잘 들어주길 바라. 개울도 나무도 바위도 내가 질주하는 순간에는 보이지 않아. 오직 네가 그들에게 관심을 가진 순간에 그 모습을 보일 거야. 이 흙 길이 소중해지는 이유가 그 작은 것들 덕분이니까. 너는 그들을 위해 항상 세심한 배려를 해주어야 해. 그게 너를 위함이니까.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 외우고 있는 책의 짧은 구절,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 아무리 급해도 작은 것들의 소리를 잊어버려서는 안 돼. 그런 작은 것들이 나를 웃게 하거든.











여기까지가 어쩌다 어른이 되어버린 내가 고등학생인 너에게 해줄 말이야. 별로 대단하지는 않지. 하늘에 떠있는 오늘의 구름이 그날의 구름과 같은 붉은빛인 것처럼 나도 너와 별로 다르지 않을지 몰라. 구름을 보는 내 시선마다 그날에 공허함이 겹치는 게 증거지. 하늘이라도 갈리질 줄 알았던 그날, 생각보다 평범했던 그날이 나도 모르게 1년이나 지났더라. 평범하지 않음에 눈물을 흘리고 평범함에 슬퍼한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더라. 그러니 지금 너무 고통스러워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항상 그리운 그 시절의 난,

떠올리기 만해도 입꼬리에 미소가 내려앉는다.

모두에게 존재할 그 시간의 흐름.

기억해야 하는 것은 단지,

그때의 구름의 모양이 현재의 구름과 닮았다는 사실.


무언가에 미쳐있던,

몰두하는 순간에 느껴지는 안도감.

어딘가에 소속되 있을 때의 안정감.


그립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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