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게 보기 : 수면 위로 떠오른 것들

비가 오는 날에는 과거로 향하는 문이 열린다.

by 외계인












주말 내내 휘몰아 치 던 비가 그치자, 사과의 표시인지 하늘은 거짓말처럼 개었다.

빗물이 몰아 치는 동안 아팠던 몸도 다행히 드러난 태양과 함께 호전되었다.

내가 비가 오는 날을 싫어하는가라고 묻는 다면, 내 대답은 '아니'다.

나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물론 습한 건 싫다. 내 나름의 꼬인 구석이다.



저번 주말에 일을 마치고 걸어오는 퇴근길에 작은 비를 만났었다. 빗발은 거샜지만 바람이 없어서 그런지 견딜만한 퇴근길이었다.

내 붉은 하트모양 우산에 튀기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걸어갔다.

전날의 과한 운동으로 몸은 뻐근했지만, 기분은 개운했다.


그 작은 비바람에 흔들리는, 그 작은 천변에 금계국이 줄을 맞추어 피어있다.

이 금계국은 이곳에 이사오기 전, 집 앞에 있던 교회의 산책로에 가득했었다.

그곳에서 매일 어머니와 산책을 했다.

봄에는 초보 엄마 비둘기와 아기 비둘기들을 보았다. 새찬 봄비가 내릴 때면 걱정을 들고 비둘기를 보러 갔었다. 여름에는 밤하늘을 향해 카메라를 올리고 옅은 별빛을 모았다. 장마철에는 천둥과 번개를 몇 시간이고 넋 놓고 바라보았다. 저물어가는 여름의 밤에는 차가운 옷자락 같은 바람을 가르며 날아다니는 반딧불이를 보기도 했다. 가을에는 부랴부랴 도토리를 모으는 청설모를 따라다녔다. 금계국이 지고 코스모스가 지고 노란색, 붉은색 새 옷을 장만한 나무들이 산 머리부터 내 옆으로 내려온다. 그 옷들이 바닥에 수북이 쌓이자 나는 수능을 맞이하였고, 찹쌀떡과 엿을 먹으며 떨리던 마음을 추슬렀다. 겨울에는 전자레인지에 돌린 빵과 전기밥솥에 데운 따듯한 두유를 마셨다. 하이얀 눈밭을 구르고 눈사람을 굴렸다. 밤에는 노래를 불렀고, 낮에는 책을 읽었다.



그곳에서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가득 생겨났었다.


금빛으로 눈부시던 기억들,

왜 잊고 있었던 걸까.

오늘같이 비가 세차게 몰아치던 날에

왜 떠오른 걸까.


잊었던 기억도 잃었던 기억도 가끔, 아주 가끔, 어느 날 기억의 파편이 걸린 낚싯바늘에 낚여서 올라오는 경우가 있다.

그 기억에 가슴 아프기도 하고, 이불에 발차기를 날리기도 하고, 잔잔하게 미소를 띠는 일도 있다.

그때는 매년 볼 줄 알았던 이 금계국을 어느 순간 잊어버렸다는 것에 반성하게 되었다.

무엇을 하느라 바빴을까.

금계국은 항상 이 천변에서 금빛을 자랑했을 텐데

무엇에 쓸려 살았을까.

생각해 보면 소중한 순간들이 참 많은데,

점점 뿌옇게 흐려져가는 거 같아, 마음이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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