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임 : 자기소개

자기소개를 스스로 하고 싶지 않다면 누가 대신해야 할까

by 외계인


자, 그럼 1분간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어린아이의 도톰한 아랫입술과 같은 달이 지는 밤에


아직 여름의 더위가 채 가시지 못한 9월에 지구에 내려왔다. 처음마주한 하늘도 바람도 눈도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가 이 세 가지를 좋아한다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들과의 첫인사가 기분 좋았음을 짐작 수 있다. 이 글은 나의 첫인사가 될 것이다. 언젠가 내 글을 읽어줄 누군가에게 내 글이 기분 좋은 글이 되었으면 한다. 앞으로의 글들은 지극히 자그마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룰 것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 글은 기나긴 자기소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름이냐 겨울이냐 묻는다면 겨울, 수학이냐 영어냐 묻는다면 수학이다. 하지만 나에 관해 묻는 질문에는 명쾌하게 떠오르는 답이 없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내가 주로 짓는 표정은? 내가 좋아하는 노래는? 근의 공식은 좔좔 말해도, 위 질문들에는 재깍재깍 답할 수가 없었다. 나는 누구일까? 이 질문을 앞에 두고 있으니, 오늘 점심메뉴를 결정하는 것만큼 막막함 마저 든다. 막막함에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았다. 수많은 글들이 쏟아져 나왔다. 스크롤을 내려보니 빽빽하게 메워진 화면으로 자극적인 단어들이 보였다. 자기소개 참 쉽다. 자기소개 3개만 기억하자. 등등 수십여 개의 포스팅을 읽으며 종이에 끄적여 보았다.


[자기소개하는 법]
: 미소를 지을 것. 치장하지 않을 것. 길지 않을 것. 씩씩할 것. 차별화를 둘 것. 쉬운 단어를 사용할 것. 열정을 보일 것.


단지 매력적인 자기소개를 하고 싶었다.








이 글은 지극히 평범하고 싶었던 한 어린아이의 응석이다. 마법을 사랑하는 어린아이가 마법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구름 한 점 없어 더욱 드넓게 보이는 창공아래 푸르르고 가늠하기 힘든 무한으로 벚꽃비가 흩날렸다. 그중 하나는 그 소녀의 한쪽 눈동자 속으로 들어와 눈을 앗아갔다. 그 애꾸눈 소녀는 꽃잎이 탐한 그 눈으로만, 오직 그 눈으로만 눈물을 흘린다. 하얀 소녀의 볼에는 눈물이 지나 한 화상 자국이 붉게 떠오른다. 하지만 그 꽃비를 탓할 수는 없다. 가끔, 아주 가끔은 꽃잎을 빼내기 위해 눈가에 다 짓물러 버린 손을 가져가 보지만 이내 포기하고 만다. 그저 다음 벚꽃비를 고대하기만 할 뿐이다.


처음이라는 것은 서투름, 설렘, 두려움으로 나뉜다. 무지에서 비롯되어 갈라지는 이 이질감들이 나를 잘 표현한다. 무엇인가 뒤틀린 듯한 완벽을 추구하는 가장 불완전한 몽상가의 현주소. 언제부터 서있었는지 모를 일본식 목조주택의 2층 복도에서 나는 끼익 거리는 서늘한 뒤틀림. 나는 한겨울 모두가 잠든 사이에 소복이 쌓인 하이얀 차가움을 발자국으로 더럽히며 미소 짓곤 한다. 아, 하지만 만화책은 1번부터 차례대로 열을 맞추어 꽃아 두어야 한다.


이상해도 어쩔 수 없다. 외계인이니 이해해 주기 바란다.









들었던 것 중에 가장 매력적인 자기소개를 떠올려보자. 글쓴이의 경우 오래된 친구의 자기소개가 떠오른다. 글쓴이는 부모님의 직업적 특성상 이사를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이사가 잦은 만큼 전학도 심심치 않게 하곤 했다. 그때마다 수많은 자기소개를 들었고, 해야만 했었다. 그 사이에서 기억에 남는 자기소개는 간단했다.

"안녕, 나는 아무개야. 친구들이 엄마 같다고 해서 간혹 아무개 엄마라고 부르기도 해. 궁금한 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불 러. 만나서 반가워"

전학을 온 그날 아침은 지금 생각해도 혼이 나갈 것만 같다. 처음 보는 사람들, 익숙하지 않은 풍경 모든 것이 낯설었다. 아침조회 시간, 나의 자기소개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가자 나는 처음 보는 학급친구들에게 둘러싸여 폭포수와 같은 소개 세례를 받아야 했다. 낯가림도 있고, 처음 보는 사람의 이름과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기 때문에 미안하지만, 대부분 잊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 친구의 자기소개는 점심시간에 들었었다. 친구는 길을 잘 모르는 나와 함께 급식실로 가주었고, 급식을 기다려 주었다. 그곳에서 간단한 악수와 함께 자신을 소개했다.

친구의 자기소개가 기억에 남은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그 친구의 따듯한 말투도 큰 요소였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 나는 친구의 행동에서 세심한 배려를 느꼈다. 친구는 내가 바쁘고 정신없어하는 시간을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 여유가 있을 때에 찬찬히 말해주었다. 내가 힘든 시간을 알고 기다려준 것이다. 자신의 소개만을 다다다 늘어놓는 것이 아닌 들을 준비가 될 순간을.






기억에 남는 자기소개를 하기 위해서는 청자에 대한 배려가 가장 주요할 지도 모르겠다.



흐려지는 구름, 벚꽃 잎을 질투하는 비가 내리기 전에
FIN








p.s. 당신의 기억 속 가장 인상적인 자기소개는 무엇인가요? 5살 어린아이에게 스스로를 소개해 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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