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거지란 용어를 들어 보셨나요? 당근마켓 거래를 하다 보면 드물지만 혹시 마주칠지도 모르는 당근거지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당근거지 퇴치법도 알려 드리고자 한다.
당근거지란 당근마켓에서 정상적인 거래 의사 없이 과도한 가격 인하 요구를 하거나, 동정에 호소해 무료 요구를 하거나, 노쇼와 같은 약속 불이행을 자주 하는 비매너 이용자를 일컫는 비공식적 표현이다. '당근'과 '거지'의 합성어로 과도한 요구를 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당근거지는 당근으로 물건을 싸게 사고, 비싸게 파는 사람들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당근거지의 핵심은 실질적 빈곤이 아니라 거래 규범을 깨는 매너 없는 행위이다.
우리 주변에서 가끔씩 마주칠 수 있는 당근거지가 발생하는 원인을 경제학적으로 분석해 보았다.
첫 번째는 거래 비용이 지나치게 낮기 때문이다.
당근마켓에 가입하거나 메시지를 전송하는데 드는 비용이 없기 때문에 금전적 부담 없이 무책임하고 매너 없는 행동을 할 수 있다. 즉 경제적으로 진입장벽이 낮을수록 비협조적 행동이 증가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정보 비대칭성과 익명성이다.
당근마켓에는 상대방이 거래하기 적합한 사람인지를 간접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매너온도가 있지만, 상대의 신뢰도와 의도를 사전에 정확히는 알기 어렵다. 그리고 잘못된 행동을 해도 법적 제재가 거의 없는 현실과 상대방이 내가 누군지도 모른다는 익명성은 사람에 따라서는 기회주의적 행동 유인을 발생시킨다.
세 번째는 반복거래가 아닌 단발거래 인식이다.
이번 거래만 하고 끝이라는 인식은 미래 평판 손실을 과소평가하게 해 합리적 이기주의가 무례한 행동으로 표출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당근마켓 거래는 내가 사는 동네에서 반복거래를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기적인 본인의 평판을 고려해 매너 있는 행동을 보이지만, 당근거지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무례한 행동을 해서라도 당장의 이익만 극대화시키려 한다.
네 번째는 가격 기준의 모호성이다.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물건은 대부분 출고가와 이에 기반한 판매가격이 정해져 있다. 그런데 당근마켓은 중고 거래 특성상 적정 가격의 객관적 기준이 부재한다. 예를 들어 당근마켓에서 자주 거래되는 스마트폰 동일 기종이라도 누가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따라 외관의 흠집도 다르고 성능도 차이가 나게 된다. 동일하게 백만 원에 출고된 스마트폰이라도 판매자에 따라서 오십만 원에 팔 수도 있고, 십만 원에 중고로 팔 수도 있다. 구매자의 경우도 중고니까 이왕이면 싸게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어 적정한 수준의 가격 협상이 아니라 터무니없는 가격 네고로 변질될 수 있다. 심한 경우 출고가 백만 원짜리 제품을 흠이 많으니까 만원에 팔거나 아예 공짜로 달라는 당근거지를 만날 수 있다.
다섯 번째는 플랫폼 설계의 부작용이다.
당근마켓은 기본적으로 이웃 간에 친절함을 강조하는 문화이다. 좋은 문화인데 이를 악용하여 감정에 호소하여 무료나 지나치게 낮은 가격에 물건을 얻으려는 당근거지가 발생한다. 정말로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여러 가지로 형편이 좋지 않다면, 내가 더 이상 쓰지 않는 물건을 공짜로라도 남이 사용할 수 있으면 이웃도 돕고 사회적으로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세상에는 당근마켓 플랫폼과 나의 선의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무료 나눔은 좋은 선의에서 시작하였는데, 무임승차 심리가 확대되어 당근거지를 양산하고 있다.
나의 경우에는 내가 안 쓰는 중고제품을 몇 천 원, 몇 만 원 받고 팔기보다는 필요한 이웃에게 도움이 되라고 무료 나눔을 해 주었다. 무료 나눔을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좋은 이웃들이었고, 잘 사용하겠다고 감사의 메시지도 전달해 주었다. 그런데 한 번은 아이가 사용했던 교복을 동네에서 무료 나눔 해 주었는데 감사 인사조차 없었던 사람이 있었다. 깨끗하게 주려고 일부러 세탁소에 맡겨 세탁도 해 주었는데, 그런 경우를 당하니 허탈했다. 그 사람이 원래는 그런 사람이 아닌 친절하고 좋은 사람일 수도 있지만, 무료 나눔의 입장에서는 상대방을 정확하게 알 수 없으니 그 당시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드물긴 하지만 이런 경우를 당하니 신뢰가 붕괴되고 더 이상 당근마켓에서 무료 나눔을 하지 않게 되었다. 당근거지를 만나게 되면 거래 스트레스가 증가하게 되고 정상 판매자는 점점 이탈하게 된다. 결국 당근거지와 같은 저품질 참여자만 남는 레몬마켓화가 진행되어 피치마켓과 같은 좋은 시장은 붕괴되게 된다.
* 레몬마켓과 피치마켓에 대해서는 아래글 참조
https://brunch.co.kr/@kw0762/159
당근거지를 퇴치하기 위해서는 개인 이용자 차원과 커뮤니티 문화 차원, 플랫폼 차원에서의 체계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첫 번째 개인 이용자 차원에서는 먼저 명확한 거래 조건 제시가 필요하다.
"가격 협상 불가/선착순" 등 명확한 거래 조건을 제시하고, 이를 어기거나 장문의 사연으로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에는 즉시 거래 종료를 한다. 무리한 요구를 반복되게 하는 경우에는 차단하거나 신고하는 것이 시장 질서 유지 측면에서 좋다. 무례한 사람에게 무례한 행동을 계속 참아 줄 필요는 없다. 당근거지를 퇴출하기 위해서는 단호한 대응이 필요하다.
두 번째로 커뮤니티 문화 차원에서는 무료 나눔은 선의이지 권리가 아니라는 인식을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
또 가격이나 거래 장소 등에 대해 상호 간에 네고할 권리는 있지만, 무례하게 요구할 권리는 없고 무례는 금지라는 규범을 확산시킬 필요성이 있다.
세 번째로 플랫폼 차원의 구조적 해결방법으로 당근거지를 퇴출하는 방안이 있다.
지금의 당근 매너온도는 거래 신뢰도를 알 수 있는 좋은 지표이긴 하지만 이를 좀 더 강화시킬 필요성이 있다. 노쇼나 무리한 요구등이 누적 시 가시적으로 표시하고, 일정 온도 이하로 내려가면 퇴출시키는 방안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가격의 경우에도 당근에서는 비슷한 물품을 참고하여 AI에서 추천된 가격을 제시해 주지만, 가격 가이드라인 제공 시 유사 거래 평균가를 자동 제시하여 비합리적 네고를 억제시킬 필요성이 있다. 당근거지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영역이 결국 가격 협상 부분인데, 당근에서 자동으로 평균 추천 가격을 제시해 주면 비합리적 가격 네고를 하는 당근거지가 발생할 가능성이 낮아진다.
당근거지 현상은 개인의 도덕성 문제일 수도 있지만, 거래비용이 거의 없는 플랫폼 환경에서 정보 비대칭과 기회주의가 결합해 발생한 시장 실패의 한 형태로 볼 수도 있다.
사실 당근거지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고, 나를 포함 누구나 될 수 있다. 경제적으로 가난하기 때문에 당근거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이기주의적 성향과 비매너가 만나서 만들어지는 현상이다. 티끌 모아 태산 된다는 절약정신도 있지만, 사실은 티끌 모으면 먼지만 쌓인다. 우리 주변의 당근거지를 퇴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바로 그 당근거지가 되지 않으려는 마음가짐과 태도를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한 퇴출법 일 수 있다.
글 : 이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