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류공유
'나는 옷을 거의 안 사는 편이다'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막상 옷장을 열어보면 무수히 많은 옷들이 놓여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막상 입으려면 입을 만한 옷들은 없고, 그렇다고 버리기에는 아깝다. 옷을 구입하지 않고도 세련되게 옷을 입을 수 있고, 가계에 보탬이 되고, 지구 환경을 살리는 방법은 없을까?
목차
01. 의류공유의 필요성
02. 의류공유 사례
03. 의류공유가 나아갈 방향
01. 의류공유의 필요성
'나는 옷을 거의 안 사는 편이다'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막상 옷장을 열어 보면 문을 닫기도 힘들게 무수히 많은 옷들이 놓여 있다. 이중 대부분이 내가 언제 입었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한 옷 들이다. 심지어 안 입은 지 10년이 넘은 옷들도 많다. 날씬할 때 입었던 옷 들이다 보니까, 결혼하고 살이 찐 지금은 허리가 들어가지도 않는다.
그런데 왜 내 몸에 맞지도 않는 옷들을 계속 가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싸게 주고 산 거라서 아까워서인 것 같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아직 멀쩡한 옷들을 버린다는 양심의 가책이 더 큰 것 같다.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비슷한 고민들을 하고 있을 것이다. 옷은 많은 것 같은데, 막상 입을 만한 옷은 없고, 옷장은 비좁다. 그렇다고 멀쩡한 옷들을 쓰레기장에 같다 버릴 수도 없다. 아깝다고 입지도 않는 옷들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옷값 이상으로 옷을 보관하는 공간에 대한 높은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도시의 높은 집값들을 생각하면 방 하나를 옷방으로 쓰고 있으면, 1억 이상의 비용을 옷 보관창고 값으로 쓰고 있는 셈이 될 수도 있다.
안 그래도 좁은 집이 늘어나는 옷 때문에 더 좁아지는 악순환을 끊을 방법은 없을까? 의류 공유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멀쩡한 옷을 버리거나 방치하는 자원낭비를 줄여 환경을 보호하고, 의류 구입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여 경제성을 높이고, 나에게 최적화된 옷들을 IT 시스템으로 추천받을 수 있는 새로운 의류공유 방법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02. 의류공유 사례
'옷은 개인적인 것인데 어떻게 남과 공유할 수 있지?'라는 생각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해 왔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막연히 비위생적이고 불편해서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한 의류공유에 대해 과감하게 그 생각을 뒤집은 사람들이 있다.
2009년에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 다니던 제니퍼 하이먼과 제니퍼 플라이스가 공동 창업한 이 회사는 온라인 의류 대여사업에 넷플릭스와 비슷하게 월정액 구독 서비스를 도입하였다. Rent the Runway는 가입자에게 30~159달러를 월정액으로 받고 유명 브랜드의 의류를 대여해 준다. 일회성으로 빌리는 것도 가능하고, 높은 요금제를 내면 대여 횟수는 무제한까지 가능하다. 결혼이나 파티 등 이벤트성 의류뿐만 아니라 일상복까지 카테고리별로 갖추고 있다.
* Rent the Runway 홈페이지 : https://www.renttherunway.com/
공동창업자 제니퍼 하이먼은 "우리는 옷장 없는 미래를 만드는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말한다.
Rent the Runway의 장점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의류 구입비를 줄일 수 있다. 일상적으로 자주 입는 옷 이외에, 자주 입지 않는 고가의 브랜드 의류를 대여해 입을 수 있으니까 불필요한 의류비를 줄일 수 있는 경제적인 장점이 있다.
둘째, 새로운 스타일에 쉽게 도전해 볼 수 있다. 이 회사는 고객 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통해 옷을 추천해주고 있다. 추천의 절반은 회원이 즐기는 스타일, 나머지 절반은 회원에게 어울릴 것 같은데 시도해보지 않은 스타일이다. 복잡한 패턴이 있는 옷이나 빨간색 코트 같은 평상시에 내 돈 내고는 도저히 사기가 망설여지는 새로운 스타일의 옷을 마음 놓고 빌려 입어 볼 수 있다. 그러다가 새로운 나의 스타일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셋째, 세탁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사람들이 옷 대여 서비스를 잘 이용하지 않는 이유는 남이 입었던 옷을 입는다는 막연한 찜찜함도 있다. Rent the Runway는 직원 대부분을 세탁 전문가들을 채용해 세탁과 다림질뿐만 아니라 살균 및 냄새 제거까지 완벽하게 해서 제공하고 있다.
물론 미국의 의류 공유 서비스에도 단점은 있다.
첫째, 사람들이 선호하는 옷은 대여 중 일 가능성이 높다. 도서관에서 인기 있는 베스트셀러 책들이 항상 대출 중인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신상만 고집하지 않는다면 도서관에는 빌려 읽을 만한 좋은 책들이 많다. 의류 대여도 마찬가지이다.
둘째, 반납과 대여 배송 시간이 꽤 소요된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로켓 배송 등 하루 이틀이면 배송돼 오지만, 미국이나 다른 외국의 경우는 우리나라만큼 신속하게 배송이 잘되지 않아 시간도 오래 걸리고 불편한 점이 많다.
* Rent the Runway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참고 바랍니다.
http://economychosun.com/client/news/view.php?boardName=C01&t_num=13606775
우리나라에도 미국의 의류공유 서비스와 비슷한 의류 공유 서비스들이 있다. 미국의 Rent the Runway와 유사한 서비스로 클로젯셰어가 있다. 처음에 명품가방 대여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사업영역을 확장하여 의류까지 마음껏 골라 입는 옷장을 표방하고 있다. 단순히 옷을 대여해 입는 것뿐만 아니라, 본인이 자주 입지 않는 옷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셰어 해서 대여 수익을 낼 수도 있게 한 점은 Rent the Runway 보다 진일보했다고 볼 수 있다.
직접 해 봐야 장단점을 분명히 알 수 있을 것 같아, 월 회원가입을 하고 서비스를 이용해 보았다.
먼저 월 79,000원을 내면 의류 4피스씩을 한 달에 2번 렌트 가능한 의류 전용 서비스에 가입했다. 첫 가입 고객 할인을 적용하고, 5천 원의 보험료를 추가로 내고해서 약 5만 원 정도의 비용을 카드로 결제했다.
처음 대여할 옷을 고르는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일단 1만 벌이 넘는 옷 중에서 나에게 적합한 옷을 고르는 과정이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검색 항목에서 나에게 맞는 사이즈를 선택하고, 지금 계절에 입기 좋은 가을 옷을 선택해 보았다. 그래도 800개가 넘는 옷들이 리스트에 표출되었다. 일일이 다 보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아서, 내가 지금까지 잘 입어 보지 않았던 빨간색을 컬러 검색 조건에 추가하였더니 34개가 검색되었다. 이 중에서 품이 좀 넉넉해 보이는 오버사이즈의 빨간색 더블 코트를 선택했다.
두 번째로 선택한 옷은 고급 브랜드의 가디건이었다. 평상 시라면 비싸서 절대로 사지 않을 고가의 옷을 대여해 입어 보기로 했다. 브랜드명 검색 조건을 이용하여 평소에 입어 본 적이 없는 알렉산더 왕(ALEXANDER WANG)을 조건 검색하자 4벌의 옷이 나타났다. 이중 제일 수수해 보이는 회색가디건을 선택했다.
코트와 아우트는 1개가 상 하의 2개로 계산된다고 하여, 총 4개의 옷이 아닌 2개의 옷을 선택하는 것으로 첫 번째 대여 옷을 고르는 과정이 끝났다. 대여한 옷들은 그다음 날 바로 상자에 담겨 집으로 배송되어 왔다. 붉은색 코트는 새 옷 같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선명한 색감이 주는 밝은 기운이 있었다. 회색가디건은 웹사이트에서 보았을 때는 평범해 보였는데, 막상 입어보니 가디건 밑에 얇은 셔츠 같은 것이 길게 달려 있어 내 스타일로 소화하기는 쉽지 않았다.
의류공유 서비스인 클로젯셰어를 직접 이용해 본 결과 몇 가지 장점이 보였다. 첫 번째로 예상외로 배송이 빨랐다. 주문하고 그다음 날이면 옷이 배달되어 왔다. 두 번째로 세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편리했다. 대여한 옷은 입고 나서 그대로 택배박스에 담아서 반송되었다. 세 번째로 다양한 의류를 시도해 볼 수 있었다. 소유에 대한 부담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스타일링을 시도해 볼 수 있었다.
단점도 보였다. 직접 입어 보지 않고 온라인으로 옷을 고르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사진으로만 보고 고른 옷들은 일부는 예상보다 좋았지만, 일부는 예상과 다른 부분들이 있어 맞지 않았다. Data 분석을 통해서 개인에게 최적화된 스타일링 서비스가 필요해 보였다. 고객이 대여해 간 데이터가 쌓이면 만족도와 취향을 분석해 고객에게 더 적합한 옷들을 추천해 주고, 검색조건도 좀 더 다양하게 해서 많은 옷들 중에서 나에게 적합한 옷들을 신속하게 찾아주는 시스템이 필요해 보였다.
한국의 클로젯셰어는 시스템적으로는 아직 좀 부족하기는 하지만, 대여용 새 옷을 계속 구매해야 하는 미국의 Rent the Runway 보다 고객의 옷장에서 안 입는 옷들로 대여용 옷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더 우수하고 환경친화적인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아이가 둘이지만, 내 돈 들여서 아이 옷을 사준 적은 거의 없다. 사촌 형들이 입었던 옷들이 우리 집 아이들에게 차례로 전해져 왔다. 그런데 받은 옷들을 보면 몇 번 입은 것 같지 않게 멀쩡한 옷들이 많다. 아이들은 금방 커기 때문에 작년에 입었던 옷들이 올해는 못 입게 되는 경우들이 많다. 한두해 정도밖에 못 입을 옷을 돈 들여 계속 사주는 것도 자원에 대한 낭비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아이들 옷에 대해서는 많은 부모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의류공유 시장에서 아동의류 공유가 가장 활발하다. 지역맘 카페 등을 통해서는 작아진 아이 옷 등을 무료 드림이나 저렴하게 파는 경우들도 많지만, 아동 의류만 전문으로 하는 의류공유 사이트들도 많다.
이 중에서 아동의류, 아동도서, 육아용품 중고거래 사이트인 키플도 유명하다. 안 입는 아이 옷들을 보내고, 저렴한 가격으로 아이 옷들을 구매할 수도 있다.
03. 의류공유가 나아갈 방향
프로젝트 앤 이라는 옷 대여 서비스가 있었다. 일정 금액을 내면 무제한 옷을 빌려 입을 수 있는 패션 스트리밍 서비스를 주장하며 대기업에서 야심 차게 준비한 서비스였는데, 개시한 지 2년도 안되어 중단하게 되었다. 프로젝트 앤이 실패한 주된 이유를 살펴보면 새로운 브랜드 옷을 계속해서 구입해야 해서 운영비 부담은 큰데, 막상 월회비를 내고 이용하는 고객은 적었다는 점이었다. 고객 입장에서는 워낙 저렴한 패스트패션 의류들이 많기 때문에 빌려 입는 것 대신에 저렴한 옷을 사 입는 것이 더 경제적이고 편리할 수도 있었다. 프로젝트 앤의 실패 교훈에서 많은 시사점들을 얻을 수 있었다.
앞으로 의류공유가 나아갈 방향을 크게 5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인의 취향이 있다. 그런데 그게 꼭 본인에게 최적의 스타일은 아닐 수도 있다. 항상 검은색 옷을 입고 다니지만, 사실은 노란색 옷이 본인에게 가장 잘 맞는 색일 수도 있다. 구매와 다른 의류대여의 장점은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평상시에는 절대로 시도해 보지 않는 색상과 디자인의 옷을 대여해 입어 보고 잘 맞으면 구매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개인 맞춤형 스타일링 서비스는 사람이 해 줄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대여 데이터를 분석해서 AI가 해 줄 수도 있다.
의류공유의 핵심은 세탁이다. 의류공유의 숨어 있는 아킬레스 건인 남이 입었던 옷을 입는다는 찝찝함을 세탁 서비스로 없애고, 더 나아가 내가 입었던 옷들도 바로 반납할 수 있어 세탁 걱정을 덜 수 있다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빠른 배송 시스템과 연계하면 와이셔츠 정기 구독 서비스 등 다양한 의류 구독경제 서비스로 이어질 수 있다.
아동복, 임부복, 파티복, 결혼식 예복 등 인생의 어느 한 시기에 일시적으로 필요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거의 입을 일이 없는 의류들을 공유함으로 자원의 낭비를 줄이고 경제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소유보다 경험이 중요시되는 시대이다. 아무리 비싸게 주고 산 옷이라도 매번 똑같은 옷을 입고 인스타그램 사진을 찍는 사람은 없다. 옷 한 벌 살 돈으로 계절과 장소별로 적합한 수십 벌의 옷을 대여해 입고 사진을 찍는 것을 더 좋아한다. 소유가 좋을 때도 있지만 공유를 하게 되면 다양한 경험과 선택의 자유를 가지게 된다.
개인고객 입장에서 보면 본인들의 옷장에서 자주 안 입는 옷들을 공유하면, 멀쩡한 옷들을 버리지 않고도 비좁은 옷장을 정리할 수 있고, 더불어 의류공유로 인한 수익금도 작게나마 벌 수 있게 된다.
의류공유 서비스를 하려는 사업자 입장에서도 초기 의류 구입비가 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고, 다양한 많은 옷들을 계속해서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귀차니즘을 뒤로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옷장을 정리하는데, 내 옷장은 한 칸 반이었고 남편 옷장은 세 칸이었다. 옷장을 정리하면서 유행하고는 거리가 먼 중년의 아저씨인 남편이 여자인 나보다 왜 두 배의 옷들을 가지고 있는지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남편의 옷장에는 청년일 때 구입해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거의 입지 않은 옷들도 들어 있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아이가 입게 될 것 같다.
* 본 글 작성에 필요한 의류공유 사례에 대한 기초자료 조사와 의류공유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좋은 의견을 준 전남대학교 의류학과 학생인 스페이스코웍의 김준웅 인턴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글 : 이계원 공유경제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