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리터러시의 핵심은 얼마나 잘 의심하느냐에 있다.
“이번 프로젝트의 구매 전환율은 약 31%였다.” “프로그램 참여율은 93% 이상으로 매우 높았지만, 특정일의 매출 효율은 오히려 하락했다.”
보고서의 숫자들은 언제나 명확하고 단단한 진실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번 팝업스토어 프로젝트를 통해 나는 깨달았다. 데이터는 진실이 아니라, 해석의 언어라는 사실이다.
이번 프로젝트의 목표는 명확히 두 갈래였다.
하나는 컨셉을 통해 브랜드 가치를 알리는 체험 중심의 목표였고, 다른 하나는 세일즈존을 2배로 확대해 구매를 유도하는 매출 중심의 목표였다.
같은 데이터를 두고도 어떤 목표의 안경을 쓰고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론이 도출됐다.
총 방문객 약 2만 8천 명 중 93%가 넘는 약 2만 7천 명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는 데이터는 ‘체험’ 관점에서는 압도적인 성공이다.
하지만 최종 구매 전환율이 약 31%라는 숫자는 매출 관점에서는 추가적인 해석을 요구한다.
결국 데이터는 객관적 결과가 아니라, 특정 관점을 증명하기 위한 도구로 소환될 뿐이었다
이는 비단 오프라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한 디지털 마케터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고객의 구매 여정을 정확히 알 수 없어요. 그래서 데이터를 모델로 가정하고 해석할 뿐이에요.”
예를 들어 한 고객이
1번 광고를 보고,
2번 뉴스레터를 받고,
3번 유튜브 영상을 본 뒤,
4번째 인스타그램 광고에서 클릭해 구매했다고 하자.
그럼 이 구매전환을 일으킨 직접적인 역할을 한건 어떤 채널일까?
마지막 클릭인 인스타그램? 아니면 첫 관심을 만든 1번 광고? 혹은 중간의 뉴스레터?
명확히 알 수 없다.
그래서 디지털 마케팅은 기여도 모델로 추정한다.
라스트 터치 모델: 마지막 클릭에 100% 기여도
퍼스트 터치 모델: 첫 접점에 100% 기여도
균등 분배 모델: 모든 터치포인트에 동일 비중
시간 가중 모델: 구매 시점에 가까울수록 높은 비중
U자형 모델: 처음과 끝에 더 많은 비중
겉으로는 정교하지만, 사실상 전부 ‘가정’ 위에 세워진 논리다.
즉, 디지털 데이터 역시 진실이 아니라 해석된 추정치다.
이번 프로젝트는 이 진실을 더욱 명확히 보여주었다.
방문객과 총매출의 명확한 숫자 뒤에는 모호한 의미들이 숨어있었다.
이것은 데이터의 문제가 아닌, 관점의 문제였다.
최다 방문일의 역설: 특정 주말은 인근 축제 영향으로 최다 방문객을 기록했다. 트래픽 관점에서는 최고의 성과다. 하지만 보고서는 이날 ‘매출 효율은 하락했다’고 분석한다. 구매 목적이 없는 워크인 고객은 많았지만, 질적 전환은 낮았던 것이다.
최대 매출일의 이면: 반면 한 평일은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특정 상품 판매가 시작되며 오픈런까지 발생한 덕분이다. 하지만 보고서에는 ‘리셀 목적의 고객 비중이 높아 프로그램 참여 없이 상품만 구매하는 사례가 많았다’는 분석이 함께 담겨있다. 최대 매출이라는 영광 뒤에는 체험이라는 본래 목적의 희석이라는 그림자가 있었다.
랜덤 리워드의 두 얼굴: 체험 완료 리워드는 여러 종류의 캐릭터 스티커 중 하나를 랜덤으로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이 리워드는 원하는 캐릭터를 받기위한 수집형의 리워드가 되어, 고객의 재방문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 현상을 두고 단기 매출 관점에서는 ‘구매 없이 리워드만 받아 가는 비효율적 트래픽’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브랜드 관계 관점에서는 ‘자발적 재방문을 이끌어낸 성공적인 장기적 자산’으로 평가해야 한다.
데이터 자체는 옳거나 그르지 않았다. 그저 누가, 어떤 KPI의 안경을 쓰고 읽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서사가 만들어졌을 뿐이다.
흔히 데이터 리터러시를 숫자를 읽고 분석하는 능력이라 말한다.
하지만 실무의 본질은 다르다. 데이터 리터러시란, 숫자를 어떤 문장으로 바꿀지 결정하는 힘이다.
이 보고서를 가지고 누구에게 보고하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축은 달라진다.
브랜드 가치 확산을 중시하는 팀에게는 93%가 넘는 압도적인 프로그램 참여율을 강조해야 한다.
당장의 매출 성과를 중시하는 임원에게는 총매출과 특정 굿즈 판매로 인한 급증세를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의 역할은 단순 분석가를 넘어 '내러티브 편집자’가 된다.
그리고 이 편집 과정에는 종종 윗선을 향한 데이터 마사지라는 비판적인 현실이 개입한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성공의 서사에 부합하는 데이터를 선택하고 한계를 드러내는 데이터는 부록으로 밀어 넣는다.
진정한 데이터 리터러시란 엑셀 함수를 다루는 기술이 아니다.
숫자를 ‘사실’로 숭배하는 대신 ‘이 숫자가 왜, 누구를 위해, 어떻게 여기에 놓였는가?’ 를 묻는 비판적 감각이다.
그걸 놓치는 순간, 데이터는 통찰이 아니라 누군가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한다.
프로젝트 보고서를 쓸 때마다 깨닫는다.
숫자는 언제나 명확했지만, 그 의미는 매번 달랐다.
중요한 것은 “어떤 데이터가 진실인가”가 아니라, “누가, 어떤 의도로 그 데이터를 해석하는가”였다.
데이터가 쌓일수록 판단의 주체는 오히려 흐려진다.
숫자가 사고를 대신하는 순간, 의사결정은 편해지지만 본질을 놓치게 된다.
그 수치를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따라 ‘성과’가 되기도 하고 ‘실패’가 되기도 한다.
임원의 시선, 고객사의 KPI, 조직의 서사가 데이터의 모양을 바꾼다. 숫자가 아니라, 보고의 문장이 결과를 만든다.
데이터는 원래 중립적이어야 하지만, 현장에서 그것은 언제나 의도를 가진 언어로 가공된다.
어쩌면 데이터를 진실의 증거로 보려 하기보다, 누구의 시선에 맞춰 다듬어진 이야기인지를 먼저 보는 게 더 솔직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숫자 그 자체보다, 그 뒤에 숨은 맥락과 선택의 흔적을 읽는 일.
결국 데이터는 진실이 아니라, 우리가 마케팅을 이해하기 위해 선택한 하나의 언어일 뿐이다.
그 언어를 어떻게 사용할지는, 여전히 풀어가야할 숙제인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