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몰입 ON, 감정으로 조선 태운 연산군

: 셀프디깅만 하다, 결국 혼자

by 광쌤

“왜 나한테 이런 말을 해?”

“내가 제일 힘들거든?”


요즘 애들, 너무 예민하대.

별말 아닌데 상처받고, 감정 소비 과잉이라며.

“나중에 고소할 거예요”가 입버릇이라지.

그래서 이기적이고, 예의 없고, 권위도 모른대.

근데 있잖아.

그 말, 내가 들어본 지 500년은 된 것 같아.

내가 바로 감정 하나로 조선을 뒤엎었던 남자거든.

‘자기 돌봄’과 ‘개인주의’의 끝판왕.

‘과몰입’이 인생이 된 사람.

피드백은 거슬렸고, 공감은 귀찮았고,

감정이 우선이었던 사람.

나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던...


나는 조선의 10대 임금.

연산군, 이융이다.



근데 말이야,

나 세자 시절부터 불공정을 제대로 겪었어

내내 금지된 단어가 있었거든. 바로, ‘엄마’.

사람들은 모두 모른 척했고, 아버지 성종은 100년 간 입도 못 열게 했지.

누가 설명은 좀 해줬어야지.

누가 감정 코칭 좀 해줬어야지.

그런데 아무도 없었어.

그때부터였던가?

나는 '셀프디깅(Self-digging)'을 해왔던 것 같아.

(* '셀프디깅(Self-digging)' :자신을 스스로 탐색하고 분석하는 MZ 세대 문화)



"폐비 윤씨. 사사."

내 어머니가 그렇게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되었지.

어른들은 쉬쉬하면서도 나한테 “세자답게 굴어라”만 했던 거야.

가만히 있어도 서운했고,

간언이라도 하면 더 서운했어.

“왕 무시?”

“내 감정 하찮게 봤어?”

조금만 건드리면 바로 정색 모드였지.

공감받지 못한 감정은

곧바로 ‘분노’로 점화됐고,

서운함은 ‘사화’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덮쳤지.

무오사화.

갑자사화.

사람들이 내 감정을 무시하면,

나는 그들을 없애는 쪽을 택했어.

입조차 열지 못하게 만든 ‘신언패(愼言牌)’,

그걸 찬 사람들은 나를 두려움의 눈으로 바라봤지.


근데 나도 내 감정과 분노가 무서워서...

그래서 더 세게, 더 과하게 굴었어.

“그래, 흥청망청 살자.”

나는 ‘피드백’ 대신 ‘아부’와 ‘쾌락’을 옆에 뒀어.


‘장녹수’와 ‘임숭재’ 그리고...

흥청망청 챌린지에 함께 한 미녀들은

나의 감정 쓰레기통이자, 놀이터였지.

온 나라가 휘청거리도록 감정을 쏟아부었던 것 같아.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 하나 없는 쓸쓸한 궁궐에서

나라도 나를 위로해야 했으니까.

근데 말이야,

그렇게 만든 세상이 결국 날 내치더라.


중종반정(1506).

눈 떠보니 이제는 진짜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어.

심지어 더 이상 왕도 아니었으니까.


그때 깨달았던 것 같아.

아무리 소리쳐도 내 마음을 들으려는 사람은 없었단 걸.

결국 나는 유배당했고, 조선 최초의 폐위된 왕이 됐어.

종묘에도 못 들어갔고, 능도 아닌 초라한 무덤에 묻혔지.

그래서인지 마지막 잔치에서 이런 곡조를 읊게 되더라.


"인생은 풀잎에 맺힌 이슬과 같아서

만날 때가 많지 않은 것

(人生如草露會合不多時)."


그러곤… 눈물이 났어.


말년에야 겨우 알게 됐지.
감정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순 없다는 걸.

아무리 진심이어도,
말이 날카로우면 마음은 닫히더라.

아무리 정의로운 분노라도
혼자만 끌어안고 있으면 세상은 꿈쩍도 안 해.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혼자 끓는 마음이 아니라,
같이 버티는 마음이란 걸
너무 늦게 깨달은 거지.




[광‘s 슬기로운 톡]

가끔 그런 생각 들죠?


“내 감정이 먼저야.”
“날 이해 못 하는 사람은 필요 없어.”


근데 말이죠,
진짜 세상은 혼자서는 못 살아요.
사람은 결국, 사람 덕분에 버티는 존재니까요.

과몰입도 좋고, 챌린지도 재미있지만…
가끔은 누군가랑 눈 마주치고,
그 마음 들어주는 따뜻한 사이 하나 있으면,
진짜 좀 덜 무너져요.

연산군처럼 혼자 폭주하기 전에—
누군가에게 말 한번 건네보세요.
그 한마디가, 우리를 이어주는 힘이 되거든요.



5화에서 계속 – 할많하않, 정조의 다크 갓생 일기

#과몰입주의 #다크모드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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