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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쌤 May 21. 2022

세종대왕을 닮은 둘째

창의융합형 인재보다 중요한 것

급 뚱뚱이가 된 엄마는 함께 뚱뚱이가 되어가는 둘째와 함께 운동을 하기로 했다. 퇴근 후 힘들지만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으랏차차 몸을 일으켜 보았다.


"잠깐이라도 걷고 올까?"

"..."

"약속했잖아. 가자아~"

"숙제가 너무 많사옵니다. 죄송-"


이노므스키- 나쁜노므스키-

결국 채비를 다 할 때까지 뭉 쓰는 둘째를 뒤로하고 홀로 산책로를 걷는 쓸쓸한 이내 신세여-!


우리 집 둘째 금쪽이는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맨날 뱃살 타이어를 탕탕 두드리거나 가끔은 동산이 된 배를 껴안고 포르르 잠이 들기도 한다. 그럴 때면 동산 위에 올라가 바람을 슉- 하고 빼주고 싶지만 나 역시 이놈의 뱃살 랜드만 탁탁탁 치고 있다.


혼자 걷는 길은 배신감에 더욱 싸늘해 보였다. 둘째와 경쟁하며 걸을 때면 하하하 웃음으로 채워지기도 하건만 하염없이 화가 채워지는 이 길을 벗어나기 위해 무거운 다리를 빨리 움직여야 했다.


그러다 문득 이 금쪽이가 생각났다.

 

- 공부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이

- 책을 너무 좋아하여 밤낮으로 독서만 하는 아이


이 아이는 부모님의 불화로 인한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마음을 쏟아부을 수 있었던 책만큼은 그 아이에게 온갖 유니버스를 선물해주었다. 일탈은커녕 독서로 스트레스를 풀고, 그 안에서 온갖 상상을 하는 아이라니 너무 훌륭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 금쪽이에게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 몸이 뚱뚱하고 고기를 좋아하는 아이

- 격구나 사냥 등 운동을 싫어하는 아이


매일 다투는 부모님과 외삼촌들의 유배 등으로 우울증은 점차 심해갔을 것이고, 형제자매 중 가장 잘 통했던 누나 경안 공주마저 결혼하며 아이는 분명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독서에 더욱 열중했고, 아이의 지식에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이 금쪽이는 바로 '이도'라는 이름을 가진 충녕대군이다. 우리 민족의 스승이라고 일컬어지는 세종대왕의 어린 시절이기에 유명한 일화가 많다.



병환이 있을 때에도 독서를 그치지 아니하므로, 태종께서 서책을 다 가져다가 감추게 하고, 구소수간(歐蘇手簡) 한 권만을 두었더니, 드디어 이 책을 다 보셨다.   -태종실록


운동도 하지 않고 방 안에서 책만 읽어대는 아들이 걱정되었던 아버지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겨우 찾아낸 책 한 권을 백번 가까이 읽어버리는 조선 최고의 독서광이었다. 물론 이러한 모습은 형 양녕대군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아버지 태종 조차도 세자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가 되는 것이 걱정되어 공부를 만류하며 나가 놀라고 했지만 통하지 않았고 어느덧 세자인 형을 뛰어넘는 인재가 되어  결국 폐세자 된 형을 대신하여 왕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민족 문화를 완성시켜버린 이 시대의 최고 창의 융합형 인재로 성장했다.




우리 집 금쪽이 역시 책을 좋아한다. 역사, 과학 가리지 않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즐기며 똑똑이로 자라고 있다. 하지만 엄마는 건강도 챙겼으면 좋겠고, 가끔은 자연을 보며 몸과 마음을 청량하게 해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늘 잔소리를 하게 된다. 빈둥대는 습관도 마음에 안 들어 잔소리 폭탄은 매일매일 끝이 없다.


하지만 폭탄 세례가 무색해지게  학원 한번 안 다니고도 상위권 성적을 받아오고, 발명 대회에서 상도 척척 받아왔다. 이 아이 역시 어쩌면 세종 대왕처럼 미래의 창의융합적 인재가 될지도 모르겠다. 다방면에 관심이 많아 류를 구원해낼 미래 사회를 위한 <농사직설>을 쓸 수도 있고, 예측 불허한 기상 상태를 예고할 수 있는 미래형 측우기를 만들 수도 있다. 온 인류의 언어를 하나로 통하게 할 글로벌 훈민정음을 창제할 수 있을지도...


물론 그러한 아들의 인생도 엄마에게는 너무나 황홀한 일이다. 하지만 세종대왕의 개인적인 인생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는 게 문제다. 무리한 독서와 당뇨로 인해 시력을 잃었고, 약해진 체력 때문에 세자 문종을 과하게 부려먹어서인지 아들의 사랑의 전쟁을 부추긴 셈이다. 지식적인 부분 외에 챙겨야 할 기본적인 것들이 많다는 것도 알았으면 해서 잔소리를 쏟아붓는 다는 것을 이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오늘도 잔소리 일발 장착, 전쟁을 선포했다.


"주말이다, 오늘은 운동 가자. 근드르즈므르"

"(두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 정상만 올라갔다 내려오는 겁니다- '한 바퀴 더, 둘레길도 가면 안돼?' 이러시기 없기예요."


꺄오오-!!!! 드디어 성공했다.

우리 집 금쪽이가 조금 더 건강한 창의 융합적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잔소리를 아끼지 않으려고 한다. 걸으면서 어렵다고 피흉 거리는 세계사 질문이나 받아줘야겠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늘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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