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광쌤 May 30. 2022

나에게 문신을 새겨준 금쪽이

백발마녀전, 문신 그리고 세종

"(울먹울먹) 이게 뭐야아?"


목덜미 뒤에 커다란 반점 하나와 얼굴 주변에 얼룩덜룩 문신 여러 개가 생겼다.


"아... 미안해요."


싸늘하게 자기 방으로 가버리는 둘째의 뒤통수가 매우 민망했다.


우리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흰머리 파티 


몇 달 전부터 부쩍 늘어버린 흰머리가 자꾸 눈에 거슬렸다. 남편은 새치라며 나를 위로했지만 동의보감에서도 여자 나이 42세, 남자 나이 48세가 되면 머리카락이 희게 변한다 하였다.  귀 밑부터 시작하여 관자놀이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흰머리 파티' 다!


40대 중반인 내게 이상할 일도 아니지만 거울을 볼 때마다 '요즘 힘들었나?', '스트레스가 심한가?' 자꾸 마음이 쓰였다. 세 아들 녀석들이 돌아가면서 속을 긁을 때면 흰머리가 한 가닥 쑤욱쑤욱 솟아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직장에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일을 당할 때면 정수리가 간질간질 검은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느낌이었으니까.



내 나이 33살인데 귀밑의 머리카락 두 올이 갑자기 세었다. 곁에 모시는 아이들이 놀라고 괴이하게 여기며 뽑고자 했다. 내가 말리며 말했다. 병이 많은 탓이니 뽑지 말라. 나의 체력 약화와 병이 전에 비하여 날마다 더욱 심해진다. <세종 13년 8월 18일>


세종대왕께서는 조금 더 빨리 흰머리가 생겼다. 왕자의 난, 형 양녕의 폐세자 등으로 어린 시절 대환장 파티였기에 흰마리파티는 당연한 이야기일 것이다. 1426년  2월에는 한양 대화재로 엄청난 피해를 수습해야 했고, 30대에는 각종 분야의 개발 사업에 매진하셨으니 정수리가 간질간질하지 않으셨을 리 없다.


세종대왕님을 보면 알 수 있다. 흰머리가 급증한 것은 노화의 이유만은 아니라는 것을. 늙는다는 것은 답이 없는데 스트레스를 줄일 수는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요맨치 희망적인 생각이 들었다.



# 백발마녀전


"(매우 속상해하며) 엄마, 머리 어떡해!"


 MBTI 'F'가 그나마 한 번씩 발동해주는 둘째의 걱정 어린 말에 덜컥 염색 부탁을 해버렸다.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렸어야 했다. 아니 미용실을 갈걸.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

"어우우.. 엄마 머리숱이 왜 이렇게 많아요?"


시작은 꽤 화기애애했다.


"아아.. 어떡해에... 엄마 이마에! 으악.. 목에도, 옷에도..."


불안이 밀려왔지만 두 주먹을 꽉 쥐고 아들을 응원했다. 겨우 마친 아들의 염색 헤어쇼, 현장은 처참했고, 내 손톱 세 개는 '불가살' 손톱으로 변해버렸다.


보너스로 이마 주변에는 자연 쉐딩을 목덜미에는 커다란 섹시 반점을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희끗희끗 흰머리 파티는 잠시 소강 사태다.






#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


아들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당황한 나머지 짜증 섞인 백발마녀전을 찍고 있었던 것 같다. 덜덜덜 떨면서 숱도 많아 힘든 엄마 머리 검게 해 주려고 애쓴 아들한테 말이다.


"오오옹- 아들, 엄마 젊어졌어! 어때?"


없는 콧소리 삭삭 모아가며 애교를 부렸더니 작아졌던 아들의 눈이 반짝였다. 


"다행이네요. 구석구석 잘 된 것 같... 으...(또 당황)"


"왜? 아... 왜?"


내 눈에는 안 보이지만 부분 부분 난리여서 당분간 나는 백발마녀전을 찍어야할 것 같다. 뭐 어쩌겠나, 면역력 증강을 위해 잘 먹고, 햇빛을 자주 쐬면 좋다고 하니 일단 시간 날 때마다 산책을 해야겠다. 잠도 잘 자고 말이다.

백발마녀전 (1993) 출처 : 네이버 영화


아들,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 엄마 생각해주는 네 마음이 엄마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는 것을.

매거진의 이전글 역사 맛집 역사라면 개업 임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