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먹울먹) 이게 뭐야아?"
목덜미 뒤에 커다란 반점 하나와 얼굴 주변에 얼룩덜룩 문신 여러 개가 생겼다.
"아... 미안해요."
싸늘하게 자기 방으로 가버리는 둘째의 뒤통수가 매우 민망했다.
우리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흰머리 파티
몇 달 전부터 부쩍 늘어버린 흰머리가 자꾸 눈에 거슬렸다. 남편은 새치라며 나를 위로했지만 동의보감에서도 여자 나이 42세, 남자 나이 48세가 되면 머리카락이 희게 변한다 하였다. 귀 밑부터 시작하여 관자놀이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흰머리 파티' 다!
40대 중반인 내게 이상할 일도 아니지만 거울을 볼 때마다 '요즘 힘들었나?', '스트레스가 심한가?' 자꾸 마음이 쓰였다. 세 아들 녀석들이 돌아가면서 속을 긁을 때면 흰머리가 한 가닥 쑤욱쑤욱 솟아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직장에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일을 당할 때면 정수리가 간질간질 검은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느낌이었으니까.
내 나이 33살인데 귀밑의 머리카락 두 올이 갑자기 세었다. 곁에 모시는 아이들이 놀라고 괴이하게 여기며 뽑고자 했다. 내가 말리며 말했다. 병이 많은 탓이니 뽑지 말라. 나의 체력 약화와 병이 전에 비하여 날마다 더욱 심해진다. <세종 13년 8월 18일>
세종대왕께서는 조금 더 빨리 흰머리가 생겼다. 왕자의 난, 형 양녕의 폐세자 등으로 어린 시절 대환장 파티였기에 흰마리파티는 당연한 이야기일 것이다. 1426년 2월에는 한양 대화재로 엄청난 피해를 수습해야 했고, 30대에는 각종 분야의 개발 사업에 매진하셨으니 정수리가 간질간질하지 않으셨을 리 없다.
세종대왕님을 보면 알 수 있다. 흰머리가 급증한 것은 노화의 이유만은 아니라는 것을. 늙는다는 것은 답이 없는데 스트레스를 줄일 수는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요맨치 희망적인 생각이 들었다.
# 백발마녀전
"(매우 속상해하며) 엄마, 머리 어떡해!"
MBTI 'F'가 그나마 한 번씩 발동해주는 둘째의 걱정 어린 말에 덜컥 염색 부탁을 해버렸다.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렸어야 했다. 아니 미용실을 갈걸.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
"어우우.. 엄마 머리숱이 왜 이렇게 많아요?"
시작은 꽤 화기애애했다.
"아아.. 어떡해에... 엄마 이마에! 으악.. 목에도, 옷에도..."
불안이 밀려왔지만 두 주먹을 꽉 쥐고 아들을 응원했다. 겨우 마친 아들의 염색 헤어쇼, 현장은 처참했고, 내 손톱 세 개는 '불가살' 손톱으로 변해버렸다.
보너스로 이마 주변에는 자연 쉐딩을 목덜미에는 커다란 섹시 반점을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희끗희끗 흰머리 파티는 잠시 소강 사태다.
#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
아들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당황한 나머지 짜증 섞인 백발마녀전을 찍고 있었던 것 같다. 덜덜덜 떨면서 숱도 많아 힘든 엄마 머리 검게 해 주려고 애쓴 아들한테 말이다.
"오오옹- 아들, 엄마 젊어졌어! 어때?"
없는 콧소리 삭삭 모아가며 애교를 부렸더니 작아졌던 아들의 눈이 반짝였다.
"다행이네요. 구석구석 잘 된 것 같... 으...(또 당황)"
"왜? 아... 왜?"
내 눈에는 안 보이지만 부분 부분 난리여서 당분간 나는 백발마녀전을 찍어야할 것 같다. 뭐 어쩌겠나, 면역력 증강을 위해 잘 먹고, 햇빛을 자주 쐬면 좋다고 하니 일단 시간 날 때마다 산책을 해야겠다. 잠도 잘 자고 말이다.
백발마녀전 (1993) 출처 : 네이버 영화
아들,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 엄마 생각해주는 네 마음이 엄마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