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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기린에게 15화

밤 산책을 하는 이유

by 곽기린

이유 없이 속이 답답해질 때가 있습니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속은 답답해지고 이대로는 잠이 오지 않을 거 같은 날이죠.


그럴 때면 일단은 방에서 나와 정처 없이 걷곤합니다.


밤 산책은 보통 10시 늦으면 11시에도 잠이 오지 않는 날이면 방문을 박차고 나옵니다. 반팔티에 편한 반바지, 최대한 편한 옷차림으로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차림으로요.


시간이 여유 있는 날에는 보통 공원을 돌 때도 있지만 보통은 집 주변, 똑같은 풍경을 둘러보며 걷습니다. 그러나 나의 상황은 항상 다르기 때문에 어떨 때는 그 풍경이 아름다워 보일 때도, 어떨 때는 서글퍼보일 때도 있습니다.


저는 그 똑같은 풍경 속에서 언제나 다른 고민에 대해 생각하며 걷습니다




사실 정처 없이 길을 걸으며 고민에 대해 생각해보면 그렇게 큰 해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동안 동네 곳곳을 다니며 생각을 정리해보면 확실히 방문을 나서기 전보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평소에 저는 항상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모든 일을 계획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조금이라도 불안한 마음을 다잡을 수 있더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행복한 순간이 오더라도 기대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그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을 생각하고 준비합니다.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지만 항상 마음속에는 불안함이 공존합니다.


최악의 상황이 닥쳤을 때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러한 극단적인 생각은 진짜 그 상황이 도래했을 땐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보통 일어나지도 않는 상황이기에 내 마음을 갉아먹곤 했습니다. 앞서 말한 이유 없는 답답한 불안감은 바로 이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었죠.


밤 산책은 그런 저에게 걱정에 대해 객관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습니다.


정처 없이 길을 걷다 보면, 밤 산책은 고민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도 주지만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시야도 줍니다. 길을 걷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보입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시며 걷는 어르신 부부, 반려 동물을 산책시키는 사람들, 그리고 가족들과 다 함께 걷는 사람들까지도요.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내 거창한 고민에 대해 생각하면서 걷다 보니 한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하는 고민들이 사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겠구나.


아무것도 아닌 고민 속에서 시간을 쓰느니 생각 말고 옆에 걷는 저 사람들처럼 걷고 있는 이 순간을 이 시간을 즐겨야 하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에도 자주 밤 산책을 합니다.


물론 속이 답답할 때도 하곤 하지만 걱정보단 앞으로의 기대와 긍정을 위해 방문을 나섭니다.

가장 편한 차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요.


다른 사람이 보기엔 별 시답잖은 일이라고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매일 걷던 이 길이 달라 보일 때 내가 이 길을 걸으면서 방문을 나서기 전과 들어온 후의 기분이 달라졌다고 느낄 때 비로소 밤 산책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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