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은데.'
'우린 아직 어리잖아? 지금 이 시간도 나중에는 되게 커다란 도움이 될 거야.'
항상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대비하는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좋은 일이 있으나 나쁜 일이 있으나 항상 불안 속에서 살았고 매일매일 자신에 대해 의심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최선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여자가 있었다. 여자는 일을 할 때도 쉴 때도 항상 모든 에너지를 쏟으면서 즐겼고 매사의 사건에 긍정적인 암시를 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두 남녀는 서로 정반대의 성향을 가졌으나 공통점이 있었다.
두 남녀 모두 앞을 향해 나아간다는 점
두 남녀 모두 매사에 항상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할 때의 그들의 표정은 정반대였다. 한 사람은 하기 싫은 일을 하듯 표정을 잔뜩 찡그린 채 해나갔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일 자체를 즐기며 해나갔다.
한 사람의 몸에는 상처가 가득했지만, 한 사람의 몸에 흉터 하나 없이 깔끔했다.
회사에서 기획자의 역할을 수행하던 나는 자연스럽게 디자이너인 그 사람과 자주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되었다. 다른 직업을 하다가 디자이너로 직군을 변경해서 온 그 사람은 이전 일이 자신과 너무 맞지 않았다고 말하며 지금 하고 있는 디자인 일에 너무 만족한다고 돈이 아닌 일 자체에 행복감을 느꼈다.
그 행복에는 또한 열의와 욕심이 담겨 있었다. 하나의 디자인 업무를 해도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했기에 그 사람에 작업에는 150만원 그 이상의 가치가 담겨져 있었다.
몰려있는 업무를 쳐내려고만 했던 나와는 다르게 말이다.
단순한 열정에는 기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그 기간이 다르겠지만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성과가 뒷받침되지 않는 열정은 최대 6개월이 넘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창단 멤버로 뛰어든 지 3개월 내 안에 쌓여 있던 열정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한 시점, 즐거움이라는 감정을 동력으로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새로운 종류의 인간을 만났을 때 난 다시 정신을 잡을 수 있었다.
비록 다시 채워진 열정이 몇 개월을 갈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간이 내 삶에 무엇인가를 달라지게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고 친구 따라 강남 갔던 따라쟁이 본능이 다시금 발현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이른 아침 달리기를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곤 했다.
군대에서나 달리기를 했던 내가 난생처음 내 의지로 달리기를 했던 순간이다. 이렇게 힘든 걸 하면 나도 그 사람처럼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질 수 있을까? 기대감을 가지고 시작한 취미다.
그리고 이 취미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10km까진 거뜬하게 뛸 정도로 달리기라는 운동에 매료되었다. 뛰기 전까진 이렇게 목적 없이 앞만 보고 달리기만 하는 운동이 이토록 커다란 성취감을 주는지 몰랐다. 해보니까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또 다른 색깔로 내 도화지를 색칠해 줄 사람을 찾은 순간이었다.
이번 색깔은 그 어떤 색보다 긍정적인 의미를 가장 많이 담은 색이었으며 그 어떤 색보다 진하게 내 도화지를 칠해나갔다. 무채색 속 드문 드문 빛을 냈던 내 도화지는 이제 누가 봐도 밝고 강한 색으로 가득 찼으며 기존에 내 색과도 잘 어울리게 조화되었다.
2020년 11월, 첫 사회생활을 한지 딱 1년이 되던 시점 나는 여전히 150만원 인생을 살고 있었지만 마음만은 그때와 전혀 달라진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