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떨리는 마음으로 시청 앞 도너츠 가게에 들어섰다. 고등학교 단짝 숙이가 나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대학을 가고 새 친구들을 사귀면서 소원해졌다. 앳되고 고운 얼굴의 숙이는 어느새 이름을 바꿨고, 두 딸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그간 우리는 두어 번 각자의 결혼식에서 만난 적 있지만, 이런 진짜 만남은 꼭 20년만이었다.
“야, 너는 어째 똑같냐!”
“너도 그래!”
그렇게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전혀 낯설지 않았고 반갑기만 했다. 그런데 그 긴 세월을 어디서부터 이야기하면 좋을까,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가족의 안부를 물었다. 특히나 우리 집에 종종 놀러왔던 숙이는 우리 가족 하나하나에 대해서 기억하고 있는 것이 많았다.
“너희 집에 놀러 가면 참 재밌었는데. 아버지는 잘 계셔?”
“아빠는 돌아가셨어. 10년 전에.”
“그랬구나.” 하고 숙이가 말을 이었다.
“너희 아버지, 기억 나. 재밌고 착한 분이셨어. 너처럼.”
20년 만에 만난 친구에게서 우리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랬어?”
우리 아빠가 재밌는 사람이었냐고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럼, 우리가 놀러 가면, 너네 아빠가 재밌게 해 주셨어.”
눈물이 핑 돌았다.
숙이가 냅킨을 건네주며 빤히 바라보았다.
“10년 전이라며, 아직도 그렇게 슬퍼?”
나는 흐르는 눈물에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아빠가 돌아가신 뒤로 나의 기억은 왜곡되어 있었다. 아빠가 얼마나 명랑한 사람이었는지, 어린 두 딸을 데리고 얼마나 개구지게 장난을 치던 사람이었는지, 잊어 버렸다. 아빠와 함께 길을 걸을 때면, 아빠는 우리를 전봇대 쪽으로 이끌었다. 일부러 부딪치게 하려는 시늉을 하다가 우리가 알아채고 “아, 뭐야~” 하고 피하려고 하면, 신나서 껄껄껄껄 웃곤 했다. 아빠는 ‘웃으면 복이 와요’ 같은 코메디 프로그램에 나오는 유행어도 곧잘 흉내 내곤 했다.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말도 곧잘 흥얼거렸던 것 같다. 친척들이나 친구들과 함께 술 한 잔을 걸치고 흥이 오르면, 아빠의 애창곡이 흘러나왔다. “꼬불꼬불 첫째 고개 첫사랑을 못 잊어서 울고불고 넘던 고개~ 꼬불꼬불 둘째 고개~~” 손으로 꼬불꼬불 고개를 그려 보이며, 신나게 웃던 아빠의 환한 모습, 그 모습을 그간 잊고 있었다.
아빠가 나중에 내게 보여준 표정은 ‘귀찮음’이었다. 언젠가부터 아빠는 귀찮아 보였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있었고, 아빠의 포부와 달리 세상살이는 팍팍했다. 아빠의 그 귀찮아하는 표정이, 마지막으로 남아서, 그게 아빠의 본모습이라고 오랫동안 착각하고 있었다.
아빠는 사실 재미난 사람이었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말주변은 없었지만 특유의 천진난만함으로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아빠는 운전하는 것을 좋아했고, 우리를 태우고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아빠는 우리를 태우고 운전하다가 신이 나서 흥이 오르면, 양 손에 집게손가락을 치켜세우고 디스코를 추듯 들썩거렸다. 브레이크를 밟았다 떼며 흥을 돋우기도 했다. 우리가 원성을 높이면 신이 나서 더 장난을 치는, 아빠는 유쾌한 사람이었다.
- 2018년 어느날, 숙이를 만나고 써 둔 글이다. 숙이도 삶의 어려운 터널을 지나고 있었는데, 그때 내 생각이 났는지 연락한 것이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한참을 들어주고. 또 잘 살라며 서로 응원하고. 우리는 다시 연락하지는 않았다. 숙이가 왜 나를 갑자기 보자고 했을까? 왜 갑자기 나타나서 자기 이야기를 이렇게 한참을 하고 내 앞에서 울다 갔을까? 궁금해한 적이 있다. 그런데 사실 그날 그 만남이 내게 주는 의미도 있었던 것이었다. 그건 분명 귀한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