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집은 언제나 즐거워

정선 채집여행

by 몽이맘


"담주에 연휴인데 뭐 할까?"


언니가 자매 단톡방에 글을 남겼다.


"추석 지나고 이제 좀 쉬어야지. 이번 추석은 너무 길었어."


"애들하고 강원도 가려고 했는데 **가 피가 비친다네."


**는 언니의 며느리다. 6살 4살 형제가 있는데 셋째를 가졌다. 피가 좀 비친다고 추석에도 오지 않았다. 언니는 손주들이 보고 싶지만 며느리의 눈치가 보여 가보지도 못한다. 언니는 아이들이 오지 않는 외로운 추석연휴였다.


"우리끼리 강원도 갈까?"


그렇게 나온 말이 씨가 되었다. 언니가 근무가 끝나는 토요일 막차를 타고 가서 월요일 막차를 타고 오는 2박 3일 아니 2박 2일 알찬 여행을 계획했다.


제천까지 버스 예약하고 저녁 8시에 동대구터미넣에서 언니를 만났다. 멀리 가는 것도 아닌데 기분이 들떴다. 강아지들은 남편에서 맡기고 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어딜 가려고 해도 강아지가 제일 걱정이고 하룻밤정도는 둘이 두고 갈 수 있는데 이틀은 무리다. 어쩐 일인지 남편이 산책은 못 시키고 약과 밥은 챙겨줄 수 있다고 한다.


애들은 챙겨주겠다는 데 말성일 이유가 없었다.


버스표를 예약이 여행의 시작이다. 동생이 정선 오면 해야 할 목록을 쭈ㅡ욱 올린다.


고구마 캐기

밤 줍기

보리수열매 따기

고추 따기




동생네 집에 밤은 집 뒤, 닭장 뒤에 두 군데가 있는데 집 뒤에 있는 밤나무는 동생이 거의 다 주웠다고 했다.

"고구마 캐고 보리수 따면 되겠네."

막상 도착하니 보리수는 익지 않았다. 고구마는 캘 수는 있지만 고구마와 들깨가 같이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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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메리골드가 한창이다.

"메리골드로 차 만들자."


들깨와 고구마를 수확하고 한숨 돌리고 메리골드를 땄다. 동생네는 약도 치지 않고 마을에서 제일 끝집이라 농약이 번지지도 않는 청청지역이다. 작년부터 심었다는 메리골드가 지천이다.


메리골드를 심은 데는 물론 밭 가운데 길 가운데 빼꼼한 데는 다 메리골드가 자란다.

똑똑 따는 재미도 있다.


한번 깨끗이 씻어 건조기에 9시간 동안 말렸다. 딸 때도 이쁘더니 차를 우릴 때도 너무 예쁘다.

"우리 메리골드차 만들고 있어."

남편에서 사진을 보내니 잘 만들어서 많이 가지고 오란다.


얼마 전에 남편이 메리골드차를 사달라고 했었다. 눈에 좋다고 사무실에 두고 마시고 싶단다. 사주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햇차가 나오지 않아 미루었다.


일요일 아침에 고구마 캐고

메리골드 따고

집 뒤에서 밤 줍고

보리수는 아직 안 익었단다.

보리수 따려고 왔는데 익지 않았다니 내일은 뭐 하지 할 게 없으면 놀지.


고구마는 네 가지 종류를 심었다고 했다. 밤고구마. 자색고구마, 호박고구마 한 가지는 모르겠단다. 자색고구마는 캘 때부터 징그러웠다. 너무 보라색이 강해서 손도 선뜻 가지 않는다. 호박고구마는 땅속에서 다 썩었다.

손가락보다 작은 것도 다 캤다.

삶아서 닭이라도 주면 좋다고 사료도 아끼고 닭도 먹고 개도 먹고. 하나도 버리지 않았다.

심은 양에 비해 얼마 캐지 못했다.

동생네 학교에서 애들이랑 같이 캔 고구마도 집에 있었다.

"고구마는 숙성을 시켜야 맛있대."


동생은 방금 캔 고구마를 삶기를 거부했다.

"그래도 상한 거 삶아보자. 오래 두면 더 상할 건데."

상한 거와 손가락만 한 고구마를 삶았다. 보관할 고구마보다 삶을 고구마가 훨씬 많다. 고구마 냄새가 나니 개들이 서성댔다.

"니들도 고구마 먹고 싶은 가보네."

"애들은 안 먹어. 학교 고구마를 주니까 안 먹더라. 친구네 작년 고구마는 잘 먹던데. 올해 고구마는 하나도 안 달아."

"개들이 코만 개코인 줄 알았는데 맛도 기가 막히게 아네."

그러는 동안 고구마가 익고 후후 불며 하나 먹었다.

"너무 맛있다. 너네 밭은 고구마가 맛있나 봐. 내년에도 많이 심어. 언니야 우리 내년에 고구마 심으러 오자. 우리 먹을 건 우리가 심자."

"우리 고구마는 맛있네. 학교 고구마는 왜 그리 맛이 없는지."


"맛있는 고구마가 되는 밭이 있어. 같은 모종이라도 밭에 따라 맛이 달라지더라. 예전에 우리 밭에는 고구마가 맛있었는데 순희네 밭 고구마는 무 맛이 났잖아."

"그러자. 내년에는 자주 오자. 달래도 캐러 봄에도 오고."

"우리 개들이 있으니 고구마 심지. 그전에는 어림도 없었어."

"하긴 보리 보면 멧돼지고 고라니고 절대로 못 오겠다."

고구마보다 더 따끈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같이 오지 못한 엄마가 더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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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장 뒤에 밤나무까지 길 좀 내줘."

동생이 제부에게 부탁했지만

"밤도 없고 있더라도 벌레 먹고 먹을 게 없어. 길 내기도 어렵고 덩굴이 너무 많아."

제부는 요리조리 핑계를 대고 길을 내주지 않는다. 아직 쏘가리 낚시철이라 저녁에는 낚싯대를 가지고 나갔다.

동생은 예초기를 메고 길을 냈다. 반정도 길을 내고 배터리가 다 되었다. 여분의 배터리도 충전이 되어 있지 않아 밤 줍기는 포기했다. 모든 상황이 닭장 뒤 밤은 줍지 말라고 하는 것 같다.


"우리 가래 주우러 갈까?"

동생 집 뒤에 조금 올라가면 오래된 가래나무가 있다. 거의 매년 오지만 가래열매를 크게 보지 않았다. 관심도 없었다.

"가래? 토종호두라고 하는 거."

"가래도 먹을 수 있어."

우리 자매들을 따고 캐고 줍고 잡는 거 아주 좋아한다.

언니는 큰 소쿠리를 들고 열심히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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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먹을 것도 없다는 가래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았다. 막상 가래나무 아래에 가니 욕심이 났다. 욕심이라기보다 줍는 재미가 쏠쏠했다. 껍질채로 떨어진 가래열매를 발로 살살 굴리면 저렇게 호두 같은 알맹이가 나온다. 알맹이와 껍질 사이에 심 같은 것도 많고 까만 즙도 나와 물로 여러 번 씻었다.


언니와 나 엄마 이렇게 셋집이 나눠가졌다.


아버지 더 좋아한다. 어떻게 먹는지 물어보고 동생에게 시간 나면 더 주워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산국이 지천이라 국화차도 만들기로 했다.

메리골드보다 작은 국화는 한참이나 따도 얼마 나오지 않았다. 향기는 메리골드를 능가했다. 메리골드차도 향이 좋지만 국화차는 향이 너무 진해서 조금만 넣어도 되었다.

"이게 괜찮은 거 같아. 우아하게 꽃도 따고 차도 마시고 살다 살다 꽃을 따보기는 처음이다."


언니가 말했다. 언니는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해서 기분이 너무 좋다고도 했다. 나는 주말농장을 할 때 국화차. 칡꽃차 등을 만들었었다. 그렇게 만들어도 조금만 유리병에 한통정도 일 년 동안 정말 아껴먹었다.


"우리 인도에 간 것 같아. 메리골드는 인도에서 많이 보이잖아. 환한 주황색. 메리골드 색이 이렇게 다양할 줄 몰랐어. 노란색 주황색 빨간색 섞여 있는 것도 있고 크기도 다양하고."


언니나 나나 제대로 된 여행을 왔다. 저녁에는 꽃차와 고구마를 먹고 제부에게도 차를 대접했다.

"내년에도 차 수확하러 오세요. 이 차 정말 좋네요."

제부도 동생이 집에서 수확한 걸 알뜰하게 먹는 걸 정말 좋아한다. 지천인 메리골드로 차를 만들어 달고 작년에도 말했다고 하는데 동생이 귀찮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쉬운 줄 알았다면 진작 만들걸. 이제 손님들 오면 꽃차 대접해야겠다."


다음날 아침에 고추를 따고 고구마줄기 거둬 닭에게 주고 배추벌레를 잡아 닭 간식으로 던져주었다. 농사지은 건 하나도 버릴 게 없었다. 상한 고추도 닭 주면 잘 먹는다고 한다. 닭이 아니라 돼지 같다.


집안에 꽃 향기로 진동한다.


"우리 오늘 밤 주워러 가볼까?"


제부가 낚시간 사이에 동생이 남은 길을 예초기로 내기로 했다. 제부가 낚시를 가지 않는다. 갈듯하다 비가 와서 포기했다. 우리도 밤 줍기를 포기했다.

소나기인지 비가 그치고 해가 난다.


"가보자!"


동생이 예초기를 메고 언니와 나는 집게와 봉지를 들고 따라나섰다. 강이만 따라오고 보리는 안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고양이 순이는 아침만 먹고 벌써 외출했다. 어디 따뜻한 데서 낮잠이라도 자는 건지. 보리는 예초기를 엄청 싫어한다고 한다. 하긴 우리 집 강아지들도 청소기를 많이 싫어하지.


길이 얼추 끝나가는데 울타리가 마지막 관문이다. 무거운 예초기를 메고 가지 못하고 예초기를 먼저 울타리 밖에 두고 넘어가서 예초기를 돌렸다. 예초기 때문에 가까이 가지 못한 언니와 나는 울타리 밖에서 대기 중이다.


"밤이 정말 많아."

동생이 예초를 하면서 소리쳤다.

우리는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어 울타리를 넘었다. 빨간 밤이 쫙 깔렸다. 줍느라 허리가 아픈지 다리가 아픈지 모르고 신나게 줍는다.

"밤이 정말 예쁘네. 크기도 하고 벌레가 먹기 했지만 단단해."

"청설모가 먹기도 했나 봐."

밤나무가 비탈에 있어 떨어진 밤들이 아래로 많이 굴러간 모양이다. 아래쪽에는 송이와 밤에 발을 디딜 데도 없었다. 언니가 지나간 자리에도 밤이 남아 있고 동생이 다 주웠다고 한 자리에도 밤이 보인다. 송이를 뒤집 어면 밤이 한두 개 꼭 나온다.

"이거 진짜 재미있다."


어릴 적에도 집에 밤농사를 지었다.

그때는 밤 줍기가 너무 싫었다. 고구마 캐기도 그렇고. 남부지방이었던 고향은 늦가을까지 모기가 많았다. 특히 밤나무 아래는 모기도 많고 뱀도 많았다. 한참 동안 밤나무를 털고 밤송이를 줍고 다녀도 똬리를 틀고 있던 뱀을 못 본 적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주위를 훑어보다 뱀과 눈이 딱 마주친 기억이 있다.

얼마나 오싹하든지.


그래서 밤나무 아래에 가면 뱀생각이 더 많이 난다. 동생에게 힘들지만 예초작업은 부탁하고 강아지를 앞세워 간 이유이기도 했다. 밤 농사를 크게 지어 밤송이채로 집에 가져갔다. 매일 떨어진 밤을 주울 수는 없기도 하고 오래 보관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장날 전날 헛간에 보관한 밤송이를 깐다. 할머니는 벌레 먹은 걸 골라내고 실한 것만 가져가 장에 갔다.

벌레 먹고 부실한 밤은 우리 차지다. 장에 가기 전에 가마솥에 삶아둔 밤은 겨우내 간식이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자매들에는 벌레 먹은 밤에 대한 거부감은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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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질반질한 밤을 보니 자꾸 손이 간다.

"기어이 닭장뒤에 갔다 왔네."

제부가 씻어놓은 밤을 보더니 한마디 거든다.

"엄청 실해. 굵기도 하고."

"맛있어요. 먹어보세요. 이것 봐요. 청설모가 이렇게 잘 깠어요."

"내년에는 소독을 좀 해야겠어요."

"연기로 소독한다고 해요. 여름에 모깃불 좀 태워봐요."


선인장 열매인 천년초도 수확했다. 나는 천년초를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아 수확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청을 만들거나 말려서 분말을 만들거나 요구르트랑 갈아먹는다고 하는데 나와 관련된 요리도 없다.


열매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가시가 있어 젓가락이나 집게로 따야 했다. 따다 보니 재미있었다. 생각보다 딱딱하지도 않고 잘 익을 건 집게만 대도 똑 따진다.


천년초요리를 계속 검색한다. 그냥 말려서 무화과처럼 먹으면 된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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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도 예쁘고 몽이도 좋아한다.

자매들의 힐링여행을 마치고 즐거운 기억만 머리에 담고 왔다. 내년에는 계절마다 가려고 한다.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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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길에 자면서도 밤을 줍고 고구마를 캔다. 신나는 원시채집활동은 언제나 즐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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