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유령

(12회) 제2장 고독한 여정 - 스승의 시선

by 해암

제2장 고독한 여정

스승의 시선/4년 후의 그날에 생긴 일/유체 이탈/시간여행/맹골수도/지선의 시간/

기억 채광/뱀의 꼬리를 보다/밝혀진 7년 전의 미스터리/눈 내린 날의 두 제자/

과거 수정을 꿈꾸다/이제 보내주렵니다/미여 스님/






스승의 시선






재희는 죽지 않았다. 그렇다고 살지도 않았다.

삶과 죽음의 중간 어디쯤에서 죽은 육신과 산 호흡이 가까스로 새끼손가락을 걸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새끼손가락이 풀리면 삶과 죽음은 각기 제 갈 길로 흩어져 갈 것이었다.


그렇게 1년이 훌쩍 건너뛰듯 지나갔다.

동지는 산 호흡을 붙잡고 1년을 놀았다. 슬프고도 고독한 놀음이었다. 여정의 끝은 언제인지, 종착지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외롭고 긴 여정이었다.


그 여정의 1년이 꽉 차고 난 어느 날 진국이 상경하여 요양병원 뒤뜰로 동지를 불렀다. 진국의 목소리는 단호하였고 눈빛은 엄혹했다. 동지에게 그런 아버지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네 스승님이 왜 휠체어를 타게 되었는지 기억하느냐?”


“그 일을 제가 어떻게 잊겠습니까?”


“네 스승님이 그 불량배들에게 당할 분이더냐? 스승님께서는 그들 수중에 있는 너를 무사히 구출해 내기 위해 단전에 비수가 박히는 걸 감내하셨다. 그리고 너의 기맥을 열어주려 무리하시다가 마침내 목숨까지 버리신 분이다.”


진국은 잠시 말을 쉬며 깊은숨을 불어냈다.

“네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재희는 네 삶의 절반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네가 스승의 유지를 버린다면 네게서 무엇이 남느냐? 그러고도 네가 살아갈 수 있겠느냐? 그리고 재희가 너의 그런 모습을 진정 원한다고 보느냐?”


목소리는 점점 호소하듯 안타까움으로 변해갔다. 진국은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아들의 얼굴에 시선을 못 박은 채 입을 닫았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눈빛 하나만으로도 사람을 주저앉힐 수 있는 동지였지만, 아버지 앞에서는 다만 아들이었다. 동지는 한동안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고, 두 부자는 어깨를 짓누르는 정적을 떠받치듯 견뎌내고 있었다.


동지가 띄엄띄엄 말했다.

“저에게 재희는 반이 아닌 전부란 걸 깨달았습니다. 재희가 없이는 다른 무엇도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말을 끝내기도 전에 동지는 고개를 떨구었고, 이내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두 팔로 아들의 어깨를 감싸안은 진국도 다문 턱을 떨고 있었다. 그는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울음을 삼키려 어금니를 깨물며 아들의 등을 쓸어내렸다. 무너진 둑처럼 두 사람에게 밀어닥친 격정은 쉬 가라앉지 않았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진국이 고개를 들었다.

“너는 그분의 뜻을 거슬러서는 안 되는 사람이다. 그리고 혹시 무극권을 깊이 수련한다면 재희를 구하는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더냐?”


동지 역시 그 생각을 안 해봤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눈앞의 재희가 급했다. 그것이 그가 일 년 넘게 수행을 멀리한 채 재희에게 매달려 온 이유였다.


그리고 또 한편, 재희의 부재라는 큰 상실과 심리적 결핍을 안은 채 수련에 몰입하기에는 무극권의 세계가 너무나도 깊은 정신 수련의 경계였다.

스승에 대한 마음의 빚, 무극권을 향한 미련, 무극권 계승자로서의 사명감이 끊임없이 그를 다그쳤지만, 재희가 없는 곳에서 그 심오한 세계를 헤쳐 들어가기란 지난한 일이었다.


동지가 다시 수련실로 돌아오기까지는 한 가지 계기가 더 있었다. 아버지가 다녀간 며칠 뒤였다.


늦은 오후에, 한 남자가 병실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동지는 언젠가 신문에서 본 사진을 떠올리고, 그가 이성학 박사임을 알아보았다.


“이성학 박사님이군요.”


“재희 씨의 그분이군요.”


성학이 손을 내밀고, 동지가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동지는 그에게 재희와 둘만의 시간을 주기 위해 병실 밖 복도 중앙의 휴게실로 나왔다. 가끔 자판기 커피를 뽑아 먹는 곳이었다.


성학은 한동안 재희의 변해버린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침대의 모서리를 잡고 무릎을 꿇었다.

"재희 씨, 저는 재희 씨와 함께하는 많은 꿈을 꾸었습니다. 물론 제멋대로 꾼 꿈이었지만, 이젠 그 꿈마저도 부질없는 일이 되고 말았군요."

그는 팔꿈치를 침대에 얹은 채 얼굴을 감쌌다. 어깨가 보일 듯 말 듯 흔들렸다.


동지가 커피 두 잔을 들고 들어와 성학에게 하나를 내밀었다.


성학이 커피를 받아 들며 말했다.

“하느님께서는 최고의 걸작품을 내시고, 너무나도 빨리 거둬가시는군요.”


동지의 미간에 노여움이 떠올랐다.

“박사, 말씀을 삼가세요! 재희는 다시 일어납니다!”


“2년이 가깝습니다. 그동안 저는 미국에서 여러 차례 재희 씨의 담당 의사와 전화를 통했습니다. 이젠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학은 잠시 입술을 꾹 말아 물었다가 말을 이었다.

“설마 제가 그쪽보다 덜 아프리라 단정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동지는 대답하지 않은 채 창문 쪽으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았다.


“가슴 아프지만 이제 두 사람 다 그녀를 잊을 때가 온 겁니다.”

재차 성학이 말했고, 동지는 대꾸하지 않았다. 이따금 신음 같은 짧은 음향만이 둘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그 사이에 간호사가 들어와 몇 가지 처치를 하고 나갔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간호사가 나가고, 이어서 성학도 일어났다.


성학이 요양병원의 현관문을 열 때 동지가 급히 뛰어와 그의 어깨를 낚아챘다.

“당신, 그렇게 포기할 거면 처음부터 껴들지를 말았어야 했소!”


“당신이야말로 진작에 놓아줬어야지! 당신은 진정으로 재희 씨를 책임질 마음이 있기나 한 거였소? 난 그것이 늘 의문이었소!”

성학도 마주 소리를 질렀다.


순간 동지의 미간이 꿈틀하였으나, 목소리는 낮았다.

“당신, 학교는 왜 찾아가서 소란을 피웠소?”


“화가 나서 그랬소. 참을 수가 없었단 말이오. 그러는 당신은 재희 씨가 그런 수모를 당할 때 뭘 했소?”


“난 그런 식의 유치한 난동을 부리지는 않소!”


“유치한 난동이라고? ···그날 그 정도로 끝내고만 걸 나는 지금도 후회하는 사람이오.”


성학은 눈을 부릅뜨고 동지를 노려보다가, 현관 앞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현대의학의 판단을 받아들입시다. 이제 인정할 때가 되었어요!”


“그래서 포기한단 말이오?”


“현실을 말하는 겁니다!”

그 말을 하고 성학은 벤치에서 일어나 지하 주차장 계단을 향해 걸어갔다.


그가 계단 입구에 도착할 때쯤, 동지가 그의 등을 향해 소리쳤다.

“한 가지 물어보겠소!”


성학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재희와 그 역사 선생 사이에 있었던 일을 박사는 어떻게, ···그러니까 누구에게 들어서 알게 된 거요?”

동지가 그에게로 다가가며 물었다.


“그게 왜 궁금한 거요?”

성학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동지에게 툭 던지듯 짧은 시선을 준 뒤, 대답하지 않은 채 등을 돌렸다.


동지는 주차장 계단을 내려가는 성학의 등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를 노려보았다.


"현실을 인정하자고 했소, 박사? 아니요, 난 당신처럼 포기하지 않소, 절대로!"

동지는 눈앞의 어느 공간에 ‘절대로’란 말을 걸어놓고 노려보는 사람처럼 눈을 부럽떴다. 그리고 성학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져 간 것처럼, 마음에서도 그의 잔상이 지워져 갔다.


동지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당신이 나만큼 아프다고 했소? 천만에 그건 아닐 거요, 박사! 당신이 지고 내가 이긴 거요!”

동지의 내면에서 새로운 무언가가 솟구쳐 올랐다. 그것은 새벽 산등성이를 넘어오는 여명처럼 밝고도 엄숙한 무엇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며 과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아르키메데스는 ‘여러분, 나에게 큰 지렛대를 하나 주시오, 그러면 내가 지구를 들어 올려 보이겠소!’라는 말을 남겼다. 이는 지렛대를 사용할 때 상상을 초월하는 큰 힘을 얻을 수 있음을 비유한 말이다.


성학을 향해 ‘당신이 지고, 내가 이긴 거요!’라고 말하는 순간 동지의 내면 어딘가에 아르키메데스의 큰 지렛대 하나가 장치되었는지도 몰랐다.


동지는 다시 수련에 몰입하였고, 머지않아 전과 같은 깊은 영적 경계를 경험하기에 이르렀다.


...............................................................................................



그리고 다시 2년이 흘렀다.

동지의 하루는 수련과 병원 둘뿐이었다.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동안 시간은 공약수로 약분되어 극히 축약되어 흘렀다. 2년의 세월이 그렇게,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무념무상의 마음으로 내리그은 선처럼 지나갔다.


동지가 자신을 지켜보는 스승의 시선을 처음 알게 된 것도 그때의 어느 날이었다.

동지는 제자들을 지도하던 중에 자신의 등 뒤에 머무는 야릇한 기운을 감지했다. 처음 그것의 느낌은 돋보기 렌즈로 빛을 모아 뒤 꼭지에 비추는 것 같았는데, 차츰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이 자신을 지켜보는 한 사람의 고요한 시선임을 알았다. 그 시선의 주인은 20년 전 마흔여덟에 제자의 곁을 떠난 스승이었다.

그 후부터 동지는 무시로 등 뒤에서 지켜보는 스승의 시선을 느꼈다. 그는 깨달았다. 열한 살 소년이 서른넷의 사부가 될 때까지 스승은 언제나 그의 등 뒤에 함께 있었다는 것을.


동지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자, 스승의 부재에도 수련실을 떠나지 않았던 제자들은 더욱 열심히 수련에 임했다. 현서는 자주 저녁 수련에까지 동참했다. 현서가 저녁 수련에 동참하는 날이면 용학은 혼자 인사동길을 걸어 나가야 했다.


수련의 방식은 스승이 제자의 본을 점검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그것이 끝나면 사제(師弟)가 함께 본을 시전하는 순서였다.

본의 동작은 깃털 하나만으로도 깨어지고 말 것 같은 극정(極靜)의 움직임이어서, 한순간도 정지함이 없음에도, 순간순간 정지한 것과도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마치 사람이 중력의 힘을 거슬러 반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스승의 수련과 제자의 수련은 겉보기는 같았지만, 보이지 않는 진면목은 크게 달랐다. 제자의 수련은 권(拳)에 머물렀고, 스승의 수련은 무(舞)에 속했다.

‘권’이 강과 유의 조화로 육신의 기량을 높이는 수련이라면, ‘무’란, 권이 삼성(三成)에 이른 뒤의 수련으로, 기(氣)의 흐름을 다듬어 단련하는 수련이었다. 그것은 무술의 경계를 넘어 도(道)에 이르는 길이기도 했다.


제자들의 수련이 무르익어갈 즈음 동지는 1년에 두 번씩 제자의 수련 성취도를 점검했다.

점검 방법은 작은 과녁에 핀을 날려 꽂는 것이었다. 과녁은 3cm 두께 다트판의 중앙에 지름 0.5cm 크기의 동그란 흑색점을 그렸다. 핀은 가느다란 철사를 집게손가락 하나쯤의 길이로 잘라 만들었는데, 다트핀과는 달리 날개가 없는 단순한 철사 핀이었다.

과녁판까지의 거리는 15m, 그 거리에서 지름 0.5cm의 검은 점은 맨눈으로 식별조차 어려운 데다, 짧은 철사 핀은 양모처럼 가늘어서 웬만해서는 과녁판까지 던져 보내기조차 쉽지 않았다. 하물며 그것을 과녁판에 꽂는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동지는 제자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과녁에 정확히 핀을 꽂으라고 요구했다. 마음으로 과녁을 확대해서 보라 하였고, 손끝에 기를 모아 튕기듯이 밀어내라고 했다.


제자들은 수련실 한쪽 벽에 붙여놓은 과녁을 향해 반대편 벽 앞에 나란히 섰다.

열한 살, 초등학교 4학년인 동해가 먼저 핀을 들고 투척 선에 섰다. 과녁을 향해 시선을 모았다가 팔을 뒤로 빼서 힘껏 앞으로 내뻗었다. 핀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과녁판의 가장자리에 잠시 꽂혔다가 힘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현서의 핀 역시 동해의 것과 비슷했다. 용학의 핀은 과녁판을 때리고는 바로 떨어졌다.


동지가 핀을 들었다. 고개를 위로 들어 올려 호흡을 들이마심과 동시에 뒤로 뺀 손목을 앞으로 쓱 내밀었다. 내민 손가락 끝에서, 철사의 굵기만큼 가늘고 예리한 파공음이 빠져나갔다.

동지의 핀은 정확히 검은 점의 중앙에 꽂혀 있었다. 제자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사이, 동지는 과녁판을 뒤집어 뒷면을 살폈다. 과녁판의 뒷면에는 별다른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결과는, 핀이 과녁판을 관통하여 벽에 자국을 남기는 것이었다. 하지만, 핀은 3cm의 과녁판을 뚫지 못하고 중간 어디쯤 멈춰 섰다.






2011년 12월 31일, 음력 섣달 초 이레, 그해의 마지막 날에 동지는 음성을 찾아가 부모님과 하룻밤을 보냈다. 재희가 사고를 당한 후 3년 반 만이었다.


상현달이 서쪽 하늘에 걸린 이슥한 밤, 동지는 목련당 뒤 스승의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스승님··· 스승님께서 제 곁을 떠나신 뒤로 20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저는 스승님께서 제게 남기신 사명을 어느 것 하나 이루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려보냈습니다!”

동지는 스승의 묘비를 끌어안고 이마를 비석 위에 얹었다. 입에서는 ‘죄송합니다’를 되뇌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스승의 목소리가 들렸다.

‘동지야! 동지야!’


“네, 스승님!”

동지는 흠칫 머리를 들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어린 네가 나의 뜻을 잊지 않고 잘 지켜 왔다. 고맙다, 동지야!"


"아, 스승님!"


동지가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들었을 때 달빛 속에서 ‘동지야, 장하다!’하는 스승의 목소리가 들리고, 스승의 모습은 달빛 속으로 스며들 듯 사라져 갔다.



작가의 이전글관악산 유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