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 제2장 고독한 여정 - 유체이탈
어느 순간, 몸이 가볍게 흔들리더니 서서히 천장 높이로 떠올랐다. 발아래에는 여전히 반가부좌로 앉은 자신의 육신이 있었다. 천장 가까이에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순식간에 허공 깊숙이 치솟았다. 천장을 어떻게 벗어났는지는 몰랐다. 자신을 내려다본 기억은 찰나의 잔광처럼 스쳐 지나가고 눈앞에는 광막한 정적만이 펼쳐졌다. 마음이 고요했다.
이어서 섬세하면서도 강한 진동의 파장 속으로 녹아 들어가는 듯하였고, 얼마간 정신이 아득했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동지는 그 기이한 장면을 다시 보았다. 눈앞에 4년 전 그날의 재희와 동지가 보였다. 재희와 마지막 대화를 나누었던 4년 전 그날의 현장이었다.
‘결국 오빠의 마음은 그만큼이었구나.’ 그 말을 남기고 재희는 등을 돌려 방문을 열었다. 계단을 내려서고, 일묵서예의 현관을 나가고, 골목길 모퉁이를 돌아 인사동길로 접어들 때까지 그녀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동지는 가로등 높이쯤에 떠서 재희의 뒤를 따라갔다.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재희는 북인사마당에서 잠깐 망설이다가 왼쪽으로 방향을 꺾었다.
‘안 돼! 그쪽으로 가지 마! 그쪽은 안 돼!’
‘재희야! 왜 그쪽으로 가니? 안국역은 오른쪽이잖아!’
그의 절절한 외침은 공기조차 흔들지 못했다. 목소리는 제 귀에만 들릴 뿐 타인에게는 가청주파수 밖임이 분명했다.
동지는 손을 뻗어 재희의 팔을 잡았다. 하지만 허공만 갈랐다. 재희는 묵묵히 광화문 쪽을 향해 걸어가고, 바로 눈앞에 재희를 보면서도 그녀와 교감할 어떤 방법도 없었다.
그리고 또다시 모든 존재가 잠깐 흔들린 뒤에 강력한 회오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이상한 현상을 본 직후, 아니 그것과 거의 동시에 동지는 현실의 몸으로 돌아왔다. 수련실의 공기와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이 현실임을 일깨워 주었다.
동지는 벌떡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갔다. 밖은 조금 전 보았던 4년 전 그날의 봄비보다 더 많은 가을비가 내렸다. 인사동길에는 행인이 보이지 않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빗방울이 가로등 불빛 속에서 수많은 빗금을 그리며 떨어져 내리고, 마천석 포석 위로 빗물이 흘렀다.
북인사마당에서 왼쪽으로 꺾어 조금 전에 재희가 걸었던 길을 밟아갔다. 북인사마당에는 ‘예수 천국 전도회’라 쓴 플래카드가 비를 맞으며 펄럭였고, 오른쪽 길 건너에는 경복궁 담벼락을 보수하느라 철골 지지대를 얼기설기 세워놓았다. 조금 전에 보았던 4년 전과는 판이한 모습이었다.
자잘하게 부서져 암흑의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린 건물들과 아름드리 은행나무 가로수, 보도블록, 그리고 가로등 불빛들이 가을비에 젖고 있었다. 율곡로의 모습도 사뭇 달랐다. 4년 전 그날, 광우병 시위로 휑했던 도로에는 수많은 차들이 빗속을 질주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재희가 사라졌던 두 번째 건널목을 건넌 뒤, 돌아서서 건널목의 중간 지점을 살펴보았다. ‘하나, 둘, 셋···, 바로 세 번째 백색 선에서 재희는 사라졌다. 재희는 이 건널목을 지나, 아마도 옛 의정부터 코너를 돌아서 세종로를 건너 세종문화회관 옆 화단까지 갔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그가 본 단막극은 옛 의정부터 코너에도 못 미쳐서 중단되고 말았다.
동지의 홑겹 수련복은 비에 흥건히 젖었다. 북인사마당에 도착했을 때 우산 하나가 머리 위를 가렸다. 익숙한 향수 냄새와 함께 젖은 치맛자락과 슬리퍼만 신은 맨발이 눈에 들어왔다. 지선이었다. 우산을 받쳐 든 지선의 한쪽 어깨가 비에 노출되어 있었다. 동지는 우산을 잡아 그녀에게 씌워주려 했지만, 그녀는 완강히 버티며 우산을 내주지 않았다.
동지가 젖은 옷 그대로 옥상 쉼터로 올라가 앉았을 때 지선이 생강차 두 잔을 쟁반에 받쳐 들고 왔다. 조계사 기와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줄기가 도시의 불빛 속에서 연황색 빗금을 그리고, 탁자 위에 놓인 찻잔에서는 더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동지는 생각에 잠긴 채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열기를 바라보았다.
“선생님, 어디를 다녀오신 거예요?”
지선의 목소리는 사뭇 조심스러웠다. 그녀는 4년 전 그날에도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질문을 했었다. 4년 전에는,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세종대왕 동상 뒤에 서 있었던 황당한 사건이었지만, 오늘은 스스로 뛰어나갔다는 사실이 달랐다.
4년 전 그날처럼 동지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찻잔만 만지작거리는 사이, 숨죽여 바라보는 지선의 시선이 옆얼굴에 따갑게 와닿았다. 그녀는 동지에게 묻는 대신 스스로 그의 마음을 읽어내려고 애썼다. 그녀의 조심스러운 호흡과 가라앉은 시선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동지는 마음속으로 그녀가 마음 아프지 않기를 빌었다.
2008년 5월 31일 오후 10시 30분부터 11시 50분, 그 1시간 20분 사이에 운명의 신은 두 젊은이의 발 앞에 비운의 카드 한 장을 던져놓았고, 두 사람은 그 카드를 피해 가지 못했다.
그로부터 4년 후, 운명의 신은 한 가지 놀라운 일을 꾸미고 있다. 재희가 두 다리로 서서 걷는 모습을 동지에게 슬쩍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운명의 신은 그리 관대하지는 않은 것 같다. 매우 짧은 시간 은혜를 허락하고는 동지가 그 순간을 제대로 의식하기도 전에 은혜의 손길을 거둬들이고 만다. 그마저도 혼자서만 재희를 바라볼 뿐 서로 시선조차 마주칠 수가 없다.
두 번째로 4년 전의 재희를 본 동지는 그것이 꿈이 아닌 말로만 들었던 ‘유체 이탈’이란 것이며, 그것을 통해 시간의 경계를 넘어 과거로의 짧은 시간여행을 경험하였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두 번째도 첫 번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시간은 4년 전으로, 2008년 5월 31일 오후 10시 30분쯤이었고, 장소는 그가 사는 인사동 일묵서예였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시간여행이 중단된 장소였다. 첫 번째는 북인사마당을 지나 첫 건널목에서 중단되었으나, 두 번째는 대략 100미터쯤 더 가서 그다음 건널목에서 끝났다.
동지는 한 가지 희망을 품게 되었다. 언젠가는 세종문화회관 앞까지 재희를 따라가, 사 년 전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눈으로 볼지도 모른다는 희망이었다.
계절은 가을의 한가운데로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요양병원으로 가는 율곡로의 양쪽 인도에는 은행잎이 수북이 쌓였고, 바람에 흩어진 은행잎 위로 차들이 지나다녔다.
동지는 율곡로를 걸어서 재희의 요양병원을 오갔다. 재희가 뇌수술을 받았던 병원 뒤편의 창덕궁로를 5분쯤 더 걸으면 만나는 언덕길 모퉁이에 요양병원이 있었다. 인사동에서 걸어서 대략 15분 거리였다.
[요양병원]
‘재희야, 널 다시 봤어! 그건 꿈이 아니었어. 정말로 건강한 널 본 거야!’
(아, 오빠!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건 분명히 꿈이에요.)
‘넌 그날 밤 광화문광장엔 왜 갔었니?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한 거니? 도대체 누가 너를 해친 거니?’
(모르겠어요. 내 기억의 끝은 오빠의 방에서 계단을 내려와 서예 방의 현관을 나온 것이 다예요. 그 후는 아무런 기억이 없어요. 근데 내가 왜 광화문광장에 갔을까요? 그리고 오빠는 내가 광화문광장에 간 걸 어떻게 알았어요?)
‘어쩌면 너를 해친 범인의 얼굴을 보게 될지도 몰라.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경찰이 범인을 찾고 있어요? 꼭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동지는 시트 속에서 재희의 손을 끌어 잡았다.
‘재희야, 너 기억하지, 네가 처음으로 나에게 준 선물?’
(당연히 기억하지! 중학교 일 학년 겨울방학 때잖아. 내가 그 목도리를 얼마나 정성 들여 짰는데.)
‘주홍색 털목도리였지. 그걸 네가 내 목에 둘러줬을 때를 난 잊을 수가 없어. 목에 둘러준 뒤에 손으로 토닥토닥 매무새를 만져줄 때는 네가 꼭 누나 같았어. 그 순간, 네 눈이 커다랗게 확대되었는데 세상이 온통 네 눈동자밖에 보이지 않았어.’
(아유, 오빠는? 이상한 소리를 다 하네.)
‘주변의 색깔도 변한 것 같았어. 무슨 색깔인지 설명할 수도 없지만. 그리고 두 발이 공중에 뜬 것처럼 허둥댔던 기억이 나.’
(어릴 적 생각해 줘서 고마워요, 오빠! 나에게 가장 생생한 기억은 오빠가 팔을 휘둘러 내 머리 위로 떨어지는 솔방울을 쳐내 주던 장면이에요. 그때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오빠는 모를 거야. 그때 오빠와 나란히 걸으면서 내가 무슨 상상을 했는지 오빠가 알면 참, 후후. 참 별소리를 다 하네. 하지만 오빤 내 말을 못 들으니까 뭐!)
재희는 어느 틈엔가 초등학교 5학년 소녀로 돌아가 있었다.
(그해, 나의 5학년 여름방학 때 나는 엄마를 따라 진국 아저씨의 음성 농장에 갔었고, 거기서 중학교 1학년이던 오빠를 처음 보았어. 나는 커다란 적송의 밑동에 턱을 괴고 앉아 소년이 연출하는 신기한 동작을 지켜보았지. 참 아름답고 몽환적인 동작이었어.
오빠는 나의 시선이 거북했던지 수련을 마친 뒤 내게 다가와 그랬지.
“예, 너 왜 빤히 쳐다보니? 앞으로 여긴 오지 마! 알았어?”
그때 우리가 나눈 첫 대화들을 난 모두 기억하고 있어. 나는 묻고 오빠는 대답했지.
“오빠, 좀 전에 한 거, 그거 뭐 한 거야?”
“넌 몰라, 말해줘도.”
“말해 봐! 나 바보 아니야!”
“모른다니까! 넌 모르는 거야!”
오빠는 무척 퉁명스러웠어.
“매일 해? 안 하면 안 되는 거야?”
내가 다시 묻자, 오빠는 고개를 돌려 수련장 한쪽의 무덤을 바라보았지.
‘오빠가 슬픈가 봐.’ 나는 금방 오빠의 마음을 알아차렸어.
중학교 일 학년 여름방학은 나에게 특별해. 나는 언덕 위 소나무 뒤에 숨어서 오빠가 수련하는 모습을 지켜봤었지. 그날은 오빠가 내게 처음으로 다정하게 말을 걸어온 날이었어.
“너 오디 따 줄까? 먹을래?”
나는 고개만 까딱해 보였고.
오빠는 농장 언덕에 줄지어 선 뽕나무 사이를 원숭이처럼 날아다니며 오디를 따서 나에게 건네주었지. 어깨높이쯤 되는 뽕나무 가지를 한 손으로 잡고 훌쩍 뛰어오르기도 하고, 다른 나무로 옮겨갈 때는 작은 가지를 잡고 슬쩍 뛰어서 건넜어.
“오빠, 멋있어! 어떻게 하는 거야?”
“늘 하는 거라서 그렇지 뭐.”
놀라서 묻는 나에게, 오빠는 별거 아니란 듯이 대답했어.
그해 겨울방학은 나에게 좀 더 특별해. 수련장이 있는 소나무 숲으로 걸어갈 때 나의 심장은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뛰었지. 나는 수련을 마친 오빠에게 다가가 등 뒤에 감추고 있던 나의 첫 선물을 내밀었어.
“오빠, 이거. ···내 선물.”
오빠는 머뭇거렸고, 나는 내 손으로 포장지를 뜯어 직접 뜬 주홍색 털목도리를 오빠의 목에 둘러주었지. 그때 오빠에게서는 소나무 향내가 났었어.
둘이 함께 조락헌으로 돌아올 때였어. 바람이 언덕을 쓸고 지나갈 때마다 오빠는 내 머리 위로 팔을 휘저었고, 곁에서 무언가 툭툭 떨어졌었지.
“뭐해, 오빠?”
“솔방울이 떨어져서···”
역시 별일 아니란 듯한 말투였고.
‘어떻게 바람에 떨어지는 솔방울을 보지도 않고 손으로 쳐낼 수가 있지?’ 너무나도 놀라웠지만, 나는 말없이 걷기만 했어. 다른 때였다면 호기심 덩어리였던 내가 이것저것 물어봤겠지만, 난 그때 말을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었거든. 솔방울을 쳐내 주려고 팔을 휘두르는 오빠의 동작만이 나의 영혼을 움켜쥐고 있어서 다른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으니까. 만약 내가 입을 열었더라면 도중에 왕하고 울어버렸을지도 몰라.
중학교 일 학년이던 난 참 맹랑한 아이였나 봐. 그날 함께 조락헌으로 걸어오면서, 턱시도를 입은 오빠와 웨딩드레스를 입은 내가 나란히 걷는 장면을 상상했었으니까. 그날 이후, 난 그 상상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란 걸 의심한 적이 없었어. 언젠가는 턱시도를 근사하게 차려입은 오빠의 곁에서 하얀 웨딩드레스에 면사포를 쓰고 사뿐사뿐 걸을 거라고 믿었지. 그 꿈들이 이젠 물거품이 되고 말았지만.)
지선과 현서도 재희의 요양병원을 가끔 들렸다. 그녀들이 병원을 들를 때는 동지와 희경의 식사를 준비해 갔다.
(아! 오늘은 지선 언니와 현서 씨가 오셨네. 두 분도 여기를 가끔 오셨나 봐요. 그동안 난 몰랐지만, 고마워요! 우린 꽤 오랜만일 텐데 꼭 며칠 전에 본 것 같아요.)
재희는 두 사람을 번갈아 끌어안았다.
(오! 두 분이 내게 기적이 일어나라고 기도하시는군요. 하지만 기적이란 일어나기 어려워서 기적이라 하겠죠. 그래도 고마워요!)
(아! 두 분 모두 오빠를 존경하고 사랑하시는군요. 얼마나 행복할까요. 난 오빠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