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일간의 인도, 네팔 여행기
4년 전, 태국 한 시골 마을에서 오토바이 사고가 났다.
구불구불한 빗길 속, 내가 탄 오토바이가 반대편에서 달려온 흰색의 벤 차량에 부딪혔고, 나는 오토바이에서 튕겨 나가 땅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구급차가 오는 소리가 들렸고, 이내 나는 일행들과 들것에 실려 갔다. 난생처음 사고란 것을 당했는데, 들것에 실려 갈 당시 나는 속이 울렁거렸고 한쪽 팔이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무진장 아파 움직일 수 없었다. 더 심각한 건 눈앞이 깜빡깜빡, 정신의 스위치가 껐다, 켜졌다 했다. ‘아, 이게 죽는 기분인가 보다’ 싶었다.
도착한 곳은 병원이었다. 의사가 의식을 확인한 후 엑스레이를 찍으러 가자고 했다. 움직여지지 않는 고통스러운 몸을 간신히 움직여 촬영에 임했다. 나는 약간 살이 까진 것 외에 타박상이 크게 없었기 때문에 친구들이 앉은 의자로 바로 돌아갔다.
정신이 돌아온 나는 친구들과 시답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기까지 했다. 아마도 운 좋게 사고 직후 바로 구급차가 오고, 시골 마을인데도 불구하고 그나마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게 되어 내심 비교적 안정을 빨리 되찾은 것 같다. 엑스레이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생각했다.
‘고작 뼈만 부러진 거라면 태국에서 좀 더 며칠 시간을 보내다 보면 괜찮아지겠지. 뼈가 붙을 때쯤 다른 국가로 이동하자.’
안일하게 생각했던 내게 시골 마을의 여자 의사가 와 이렇게 말했다.
“귀국 일자가 언제야?”
“4개월 뒤인데요? 태국에서 네팔로 넘어갈 거예요.”
나는 호기롭게 말했고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 말을 받아쳤다.
“너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야 해.
“네 어깨 수술해야 해.”
눈앞이 캄캄했다. 장장 6개월의 여행이 2개월 만에 끝났다고 선고받는 순간이었다. 이 여행은 무려 1년 동안 야심 차게 준비한 내 인생의 거대한 프로젝트 같은 것이었다. 1년 동안 나는, 먹는 거 입는 거 아껴 가며 아등바등 돈을 모았는데, 복수전공에 쓰리잡 알바까지 병행하느냐 체력적 정신적으로 매우 소모됐었다.
그날 의사의 말에 1년 동안의 고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서러운 나머지 울음이 터져 나왔다. 1년 간 준비했던 여행이 두 달 만에 끝이 난 순간이었으니까. 친구들은 그런 나를 달래느냐 진땀을 뺐다.
한국에 돌아온 나는 휴학 기간 동안 사회생활 경험도 하고 복학해서 부지런히 남은 학교생활도 마쳤다. 1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어느새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취직하면 한동안 배낭여행은 상상도 못 할 텐데, 아니 상상만 하게 될 텐데…’
무엇보다 사고 나서 가지 못했던 인도와 네팔이 못내 아쉬웠다. 그 당시 여행을 계획하면서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이 인도였고 인도를 가기 위해서 그 여행을 계획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릴 적 세계지도와 지구본을 보며 나라 이름 외우기가 특기였던 꼬마는 스무 살이 되자 제 스스로 돈을 벌 수 있게 되자 방학이 든 기회가 될 때마다 저렴한 아시아 나라를 최대한 쏘다녔다. 가까운 일본부터 홍콩, 대만, 중국, 동남아 등지를.
대학시절, 여행은 내게 있어 인생의 돌파구이자 도피처였다. 단순한 호기심에서 여행을 시작했지만 빡빡한 현실에 지친 내게 여기 말고 다른 세상이 있다고 여기를 좀 훔쳐보고 냄새를 맡아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면 문득 정말로 새로운 삶을 살아갈 힘이 생기기도 하고 실제로 그 틈을 타 다른 기회나 길이 보이기도 했다.
이십 대 초반, 인생에 대한 열정과 회의를 반복하던 내게 인도는 혁명적인 곳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시끄러운 자동차 경적소리와 매연으로 가득 찬 복잡한 거리, 그 사이를 아무렇지 않게 지나다니는 소들, 기차역 아무 곳에나 자고 대소변을 누며, 때로는 맹목적으로 무언가를 기다리고 믿는 인도인들의 모습이 그랬다.
어떤 것이 선인지 악인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무질서로 뒤범벅인 혼돈의 도가니인 곳. 그 혼돈 속에 나를 내던지고 싶은 욕망이 부풀어 올랐다. 그곳에서 내 오감이 작동하는 것을 느끼며 내가 맞고 옳다고 생각했던 것을 전복시키고, 내가 경험한 세상에서는 보고 듣지 못한 것들을 온몸으로 통과시키고 싶었다. 그렇게 인도는 내게 영감을 줄 ‘별천지’, 나를 뒤흔들어 놓을 ‘역동의 천국’ 그리고 정복해야 할 ‘미지의 영역’과 같았다.